모건스탠리의 기우제는 통할까?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 2021.08.13 06:00

[선임기자가 판다]'악담' 같은 하반기와 내년 메모리반도체 시장 전망에 대해

모건스탠리 홈페이지 초기화면 캡쳐.

모건스탠리의 메모리반도체 리포트와 관련해 '그 후 1년, 모간스탠리(당시 표기)가 틀렸다'는 칼럼을 쓴 지도 벌써 2년여가 흘렀다.

2017년 11월 26일 모건스탠리는 메모리반도체 보고서에서 "메모리 사이클이 곧 정점을 찍을 것이다. 낸드플래시 가격하락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고, D램 공급과잉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며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낮췄다.

당시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290만원(현 주가 기준 5만 8000원)에서 280만원(현 주가기준 5만 6000원)으로 10만원 낮추고, 투자의견도 비중확대(Over weight)에서 중립(Equal weight)으로 하향조정했다. 2018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암울하게 전망한 것이다.

이 보고서가 나온 다음날 삼성전자 주가는 5% 넘게 빠지고 시가총액이 18조원 가량 순식간에 사라졌다. 코스피 전체적으로는 해당일 25조원의 시총이 날아갔다. 가히 충격이었다.



4년전의 기억…잘못된 전망




그 리포트를 낸 후 1년 가량 지난 시점에 실제 시장은 어땠을까? 모건스탠리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018년 반도체 부문에서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렸다.

SK하이닉스는 2018년 매출 40조 4451억원에, 영업이익 20조 8438억원으로 영업이익률 51.53%라는 사상최대의 실적을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두말 할 것도 없었다. 매출 243조 7714억원에 영업이익 58조 8867억원의 최고실적을 달성했다. 이익률도 24.15%에 달했다.

모건스탠리의 예상은 틀렸지만 그 전망을 믿고 주식을 판 투자자들은 수수료를 열심히 냈을 듯하다.

2018년 상반기 두 회사의 실적이 양호하자 머쓱해진 모건스탠리는 2018년 8월에는 "내년에는 진짜 안좋아질 것"이라며 SK하이닉스 투자의견 하향 리포트를 냈다. 2018년 8월 5일(현지시각) SK하이닉스 '비중 축소(매도)' 의견을 담아 목표 주가를 7만1000원으로 제시했다.
2018년 사상 최고 실적을 올린 메모리반도체 업체들은 2019년에는 2018년 사상 최고 실적의 풍선효과로 시황이 좋지 않아 악화된 실적을 보였다. 이를 두고 모건스탠리는 자신들의 전망이 옳았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듯하다.

외국계 증권사에 한 임원은 이런 것을 두고 "'인디언 기우제'식 전망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인디언 기우제'식 전망은 비가 올 때까지 계속 기우제를 지내다보면 비가 오고, 그러면 기우제가 성공했다고 믿는 것을 비꼬아 하는 표현이다. 전망은 정확한 타이밍이 중요한데 '사람은 언제가는 죽는다'는 식의 전망은 전망이 아니라는 얘기다.

과거 4년 정도의 호황과 불황의 실리콘 사이클이 있는 산업에서 2년 정도의 상승세 후 내년에 나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나빠지지 않으면 그 다음 해에 또 나빠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을 두고 '인디언 기우제'식 전망이라고 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모건스탠리의 주장처럼(?) 2019년 반짝 하락 이후 2020년에 이어 2021년에도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




다시 시작된 모건스탠리의 기우제


2년간의 호황이 이어진 시점에서 모건스탠리의 '기우제'가 다시 시작됐다.

2021년 8월 11일 모건스탠리는 '메모리, 겨울이 오고 있다'(Memory-Winter is coming)는 보고서를 내고 4년 전과 비슷한 한국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대한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특히 1주일 전만해도 긍정적일 것이라는 스스로의 진단을 뒤집은 것이다.

모건스탠리는 보고서에서 "2019년 이후 처음으로 경기확장 사이클의 후반기에 접어들었고 이같은 국면 변화는 역사적으로 '미래 이익의 상당한 감소'를 의미해왔다"며 "이익증가 기대감이 역전되고 30%에 가까운 PB(주가순자산가치) 밸류에이션 축소 등을 예상한다"고 했다. 내년 1분기부터 경기 하강 국면에 접어들고 내년 중 D램 수급구조도 재고축적에 따라 점차 공급과잉 상황이 악화돼 갈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도 9만8000원에서 8만9000원으로 9.2% 하향 조정했고, SK하이닉스도 15만 6000원에서 8만원으로 반토막 수준의 목표주가를 제시했다.

목표주가를 반토막낸 '악담' 수준의 모건스탠리의 '바람'은 국내 증시에 여지없이 반향을 일으켰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한국 증시 체력의 부실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삼성전자는 11일 2.12% 하락에 이어 12일 1.91% 떨어져 8만원대가 깨져 7만 70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SK하이닉스의 낙폭은 더 컸다. 전일 6.22% 하락에 이어 12일 4.74% 하락한 10만 500원을 기록했다.


6거래일 연속 주가는 떨어져 장중 10만원이 깨졌고 3월 고점인 14만 7000원에 비해서는 28.6% 하락한 채 장을 끝냈다. 이틀새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 8조 7000억원이 사라졌다. 모건스탠리의 리포트는 3월 고점에서 나온 경고음이 아니라 이미 하락추세에 접어든 주가에 뒤늦게 기름을 부은 셈이다. 타이밍으로 치면 늦은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바보가 아니다


SK하이닉스 주가추이/사진제공=삼성증권 HTS

하반기와 내년의 우울한 전망에 대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고위 관계자들에게 물었다. "실제 올해 하반기와 내년에 실적이 나빠질 것으로 생각하느냐"고...

삼성전자 고위 임원은 이날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나빠지는 징후는 없다"며 "시장의 우려는 과도한 것 같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 최고위 임원도 "모건스탠리의 전망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내년 이맘쯤 되면 모건스탠리의 전망이 틀렸을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고 했다.

이는 2주전인 지난달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기업설명회 당시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진만 삼성전자 메모리 담당 부사장은 지난달 28일 "주요 고객사의 스마트폰 신제품 출시 등으로 서버·모바일 (반도체) 수요가 지속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박명수 SK하이닉스 D램 마케팅 담당 부사장도 지난달 27일 실적 콘퍼런스에서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시장 수요 회복이 내년 IT 산업 시계를 2~3년 앞당겼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요 임원들이 2주 후의 모건스탠리와 같은 전망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그게 오히려 뉴스다.

사실 모건스탠리가 '메모리의 겨울'의 전망하는데 인용한 대만 D램 시장 조사 업체인 트랜스포스에 대한 신뢰가 국내에선 많지 않다.

대만은 D램 생산업체가 경쟁력이 떨어져 거의 문을 닫았고, 현물가격의 변동에 따라 시장 전망을 하고 있다. 고정거래선 가격으로 세계 시장의 70%를 책임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전망하는데는 제한적이고 한계가 있는 업체다.

시장은 4차 산업혁명의 초입에서 코로나19라는 변수를 맞아 D램의 수요를 더욱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게 메모리 현업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메모리 업체의 한 관계자는 "누구나 예측은 할 수 있지만,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는 투자자들이 판단해야 할 것"이라며 메모리 업체의 발언에 더 관심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장기적으로 메모리 시장에는 문제가 없다!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이 지난 3월 IEEE(전기전자기술자협회) IRPS( International Reliability Physics Symposium) 컨퍼런스에서 '미래 정보통신기술(ICT) 세상을 향한 메모리반도체 기술의 여정'을 주제로 한 발표 중 데이터센터의 메모리 수요 증가에 대한 전망 자료/사진제공=SK하이닉스 유튜브 캡쳐.

모건스탠리가 4년전인 2017년 11월의 실수를 반복할 것인가. 사실 시장을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누가 코로나19를 예상했겠는가. 또 세상이 이렇게 빠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누가 예상했겠는가.

전세계 반도체 시장을 한 때 주름잡았던 전문가에게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의 리포트와 관련된 기사 내용을 전달하고, 누가 더 옳은 분석을 한 것인지를 물었다.

그의 답은 의외였다.

"모두 단기 관점으로 보는 것 같다. 일희일비할 필요 없이 장기적 관점으로 보면 메모리 산업에 문제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잘 준비한다는 가정 하에..."

큰 흐름에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성장세는 향후 수년간 꺾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까지 투자자들이 주식을 사거나 팔지 않고 보유하고 있다면, 증권사들은 매매 수수료 수입이 없어 힘든 날을 보낼지도 모른다.

없는 기우제라도 지내서 재물을 바치도록 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숙명이다. 모건스탠리의 기우제가 비를 내리게 했을지 1년 쯤 후에 다시 한번 점검해볼까 한다. 그 때는 틀리지 않았기를…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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