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목(同想異目)]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이유?

머니투데이 이진우 더벨 편집국장 | 2021.08.13 02:29
이진우 국장
'상대방이 나를 이유 없이 싫어한다면 나를 싫어할 만한 이유를 한 가지 만들어줘라.' 언젠가 '웃긴 명언'이라며 지인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린 문구인데 별로 웃기지 않았다. 본인만 모르지 싫어할 이유가 당연히 있겠지, 아니 이유가 짐작은 가지만 모른다고 할 거야, 이유를 알고 싶지 않은 거야 등의 생각이 스쳤다.

곰곰이 돌이켜보니 비슷한 경험들은 있다. 분명히 관계가 괜찮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싸한 눈빛을 접하고 당황한 적이 있다. 관계가 썩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적대적인 눈빛의 묘한 공격을 당한 적도 있다. 나도 모르는 (또는 짐작은 가는) 실수 내지는 오해가 있었을 듯한데 그렇다고 대놓고 물어보기 뭐해 찜찜하지만 그냥 넘어가기도 했다.

문득 이 별로 웃기지 않은 웃긴 명언이 떠오른 건 요즘 세태를 이처럼 잘 반영하는 말이 있을까 싶어서다. 어차피 내 편이 아니면 적이고 남의 편에게 잘해줘봐야 싫어하는 건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갈수록 굳어진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평행선을 달리는 호불호가 좁혀지기는커녕 부채꼴 와이파이처럼 퍼져간다.

내년 대선을 앞둔 정치의 계절. '나를 싫어할 이유 만들기 경쟁'의 향연이다. 내로남불, 말꼬리 잡기, 내 얼굴에 침 뱉기 등 꼴불견이 난무한다. 말실수 안 하는 대선후보 없고 과거 흠결 하나 없는 정치인 역시 없건만 우리 편 흠결은 안 보거나 못 보고 모른 척하고 감싸고 심지어 가엾어한다. 대신 상대방 들보에는 현미경을 들이댄다.

집권세력은 어차피 진영이 다른 쪽 얘기를 들어줘봐야 우리 편 들어줄 리 없다는 확고한 신념 때문인지 대놓고 야당 시절에 한 말을 뒤집고도 부끄러움이 없다. 아이돌 광팬보다 더 열성인 '광적인 팬덤'의 무리 속에 숨는다. 야권이라고 다를 바 없다. 정치는 어차피 마이웨이라지만 진영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차이가 없다. '거기서 거긴데.' 이게 정치에 대한 혐오감의 원천이다.


경제로 눈을 돌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을 둘러싼 논란도 극단을 달려왔다. 이재용 없어도 삼성이 잘나간다는 말도, 이재용이 없어서 삼성이 힘들어질 것이란 말도 각자의 진영에선 확고한 신념이다. 공정도 나한테 유리해야 공정이고 불리하면 다 불공정이다. 삼성을 싫어하면서도 삼성에 취직했다고 하면 부러워하고 축하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이 부회장이 풀려난 뒤 임시로 풀어주는 가석방이 아닌 '완전한 경영복귀'를 원하는 여론에 대해서도 또다시 지지와 공격이 치열하게 맞서면서 '서로 싫다고' 할 것이고 이런 분위기에선 회장직 승계나 등기이사 등재 등은 섣불리 꺼내기 어려운 카드다. 교도소 밖에만 있을 뿐 상당기간 '논란에 휩싸이지 않는' 방어적인 경영행보에 그칠 수도 있다. '가석방 효과'의 반감이다.

가끔은 상대방 의견에 수긍하면서도 그래봐야 나한테 돌아오는 게 없으니 차라리 '싫어할 이유나 하나 만들자'는 식의 연속이다. "솔직히 네가 맞지만 그래봐야 어차피 나를 싫어할 이유를 찾아서 또 싫다고 할 텐데 뭐하러 맞장구를 치나." 이런 말장난 같은 돌림노래처럼 들려 안타깝다.

베스트 클릭

  1. 1 "나랑 안 닮았어" 아이 분유 먹이던 남편의 촉…혼인 취소한 충격 사연
  2. 2 "역시 싸고 좋아" 중국산으로 부활한 쏘나타…출시하자마자 판매 '쑥'
  3. 3 "파리 반값, 화장품 너무 싸"…중국인 북적대던 명동, 확 달라졌다[르포]
  4. 4 "이대로면 수도권도 소멸"…저출산 계속되면 10년 뒤 벌어질 일
  5. 5 김정은 위해 매년 숫처녀 25명 선발… 탈북자 폭로한 '기쁨조' 실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