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측 한미훈련 중단 담화 이후 사흘만에 '신중한 협의'라는 구절로 대표되는 짤막한 지시를 내린 것을 두고 야권 일각에서 정부부처 혼선과 관련한 책임론을 제기했다. 군통수권자가 '북한 눈치보기'를 하며 지나치게 말을 아끼면서 국방부·국가정보원·통일부가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권도 당 차원에서 '훈련 실시'라는 방침을 밝혔지만 범여권 국회의원 74명은 '조건부 연기'를 제안했다.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 출신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5일자 입장문에서 "온 국민이 군 통수권자를 바라보고 있는 시국에 이런 애매모호한 입장을 밝혔다니 실망"이라며 "대통령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니 군은 처음에는 예정대로 진행할 계획이라더니 점점 코로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빠질 궁리를 찾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정원은 유연한 대응을, 통일부는 아예 훈련중단을 요구하고 대북지원을 승인하고, 민주당 대표는 훈련 진행을, 범여권 의원 수십 명은 훈련 연기를 주장하는 성명을 준비하는 등 갈팡질팡하고 있다"며 "우리 현실이 안타까웠는지 미국방부 대변인은 한국에서 아직도 훈련중단 요청이 없었다면서 '위협에 직면한 한반도에서 적절하게 훈련되고 대비 태세를 갖추는 것, 동맹인 한국과 긴밀한 협의를 지속하는 것은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고 먼저 치고 나왔다"고 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열린 '군 지휘관 보고' 행사에서 초미의 관심사인 훈련 연기, 축소설에 대한 군통수권장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대신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신중하게 협의하라"는 띄어쓰기를 제외하면 17글자 지시를 내렸다. 당일 청와대 관계자가 기자들에게 설명한 내용이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문 대통령을 향해 8월 한미훈련을 거론하며 '용단'을 촉구한 대남 담화문을 지난 1일 발표한 뒤 사흘이 지난 시점이었다.
다만 문 대통령의 발언과 청와대측 설명만으론 앞으로도 한미 훈련에 변화가 없을지 아니면 조정이 이뤄질지 명확치 않다. '한미훈련 연기'는 여권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할 만큼 논란이 많은 주제다. 범여권 의원들이 훈련 연기 연판장을 돌린 가운데 육군 대장 출신 의원(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훈련 연기 불가론으로 맞섰다. 민주당 지도부는 현재까지 한미연합훈련은 예정대로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낙연 캠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설훈 민주당 의원의 주도로 범여권에선 훈련 연기 서명 운동이 일었다.
반면 김병주 의원은 4일 저녁 민주당 의원 단체 채팅방에 "올림픽으로 따지면 이미 예선 경기가 시작된 건데 어떻게 본선 경기 일정을 취소하거나 연기할 수 있겠냐"며 "이미 훈련에 참석할 미군들도 대부분 입국했고 당장 이번 주에 지휘관 세미나와 전술 토의, 분야별 리허설 등이 진행되고 있다"고 썼다.
부승찬 국방부 대변인은 5일 정례브리핑에서 한미 훈련 관련 질의에 "누차 말씀드렸다시피 아직까지 시기나 규모, 방식은 확정되지 않았다"며 "한미는 이와 관련돼서 각종 여건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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