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욱 금메달·우상혁 한국新 뒤엔…'운사모' 키다리 아저씨 있었다

머니투데이 오진영 기자 | 2021.08.03 15:04
펜싱 남자 사브르 결승에서 금메달을 따낸 오상욱 선수(25·왼쪽)와 높이뛰기 한국 신기록을 쓴 우상혁 선수(25·오른쪽)/사진 = 뉴시스
"우와, 됐다. 됐어!"

지난달 28일 대전의 한 가정집. TV로 올림픽 경기를 시청하던 이건표씨(69)가 눈물을 흘리며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이날은 오상욱 선수(25·성남시청)와 구본길, 김정환, 김준호 등이 속한 '펜싱 드림팀'이 남자 사브르 단체전 결승에서 이탈리아를 꺾고 금메달을 획득한 날이다. 이씨는 오 선수가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에도 펜싱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운 '운사모'(운동을 사랑하는 모임)의 창립자다.

도쿄올림픽 높이뛰기 결선에서 한국신기록을 24년 만에 경신한 우상혁(25·국군체육부대)도 대전의 체육 유망주 후원회인 '운사모' 장학생 출신이다. 체육 지도자들이 모여 만든 단체 운사모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수많은 운동선수들을 도왔다. 이 단체를 창립해 13년째 회장직을 맡고 있는 이씨를 3일 머니투데이가 전화로 만났다.


어려운 학생 위해 시작한 운사모, 500여명 참여하는 단체로…오상욱·우상혁도 '운사모 장학생'



2013년 '운사모'(운동을 사랑하는 모임) 장학생으로 선정돼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는 이건표씨(제일 왼쪽)와 오상욱 선수(왼쪽에서 세번째), 우상혁 선수(왼쪽에서 네번째) / 사진 = 이건표씨 제공
체육 교사 출신인 이씨는 교편을 잡으면서 늘 재능이 있는데도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2008년 대전시교육청 소년체전 담당 장학사를 지내면서 '이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고, 사비를 털어 지인 5명과 함께 운사모를 창립했다.

"운동부에 가입한 학생 중에는 운동화나 운동복 등 기본적인 용품도 사지 못해 운동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았어요. 이들에게 조금의 도움이라도 주고자 모임을 만들어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이씨는 "우리가 보기에는 작은 금액의 후원금이라도 어려운 환경의 학생들에게는 정말 큰 도움이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운사모의 회원은 계속 늘어 올해 매월 회비를 내는 회원만 473명이 됐다.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어려운 형편의 유망주를 돕겠다는 마음과 매월 회비 1만원이 필요하다. 이렇게 모인 돈은 체육 유망주들에게 매월 20만원씩 '체육 장학금'으로 지급된다. 이제까지 모두 54명의 유망주들이 3억 5000만원이 넘는 장학금을 받았다.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활약한 오 선수와 우 선수가 장학생 시절 운사모 홈페이지에 올린 '도움을 주셔서 고맙다'는 글이 이목을 끌기도 했다. 오 선수는 지난달 29일 귀국하자마자 이씨에게 전화를 걸어 "그동안 도와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며 "'2024 파리 올림픽'에서는 더 좋은 성과를 거두겠다"고 말했다.

남자 탁구 올림픽 국가대표 안재현 선수(22·삼성생명), 핸드볼 국가대표 박재용 선수(24·하남시청)도 운사모 장학생 출신의 운동선수다. 성적이 좋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운 선수들이 장학생에 우선 선발되지만, 성적에 관계없이 어려운 선수들을 장학생으로 뽑기도 한다. 어떤 선수는 보육원에서 자라다 운사모의 후원으로 성적이 쑥쑥 올라 실업팀 선수로 선발됐다.

이씨는 "보육원에서 운동을 하는 학생들은 18세가 지나면 보육원을 나와야 해 앞길이 막막한 경우가 많다"며 "이들을 도와 프로 운동선수가 될 수 있게 한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행히 상욱이나 상혁이같이 훌륭한 선수들이 계속 나와 줘서 너무 고맙고 감격스러운 마음"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아직도 체전 경기장 찾는 '키다리 아저씨'…"대를 이어서라도 계속할 것"


13년째 '운사모' 회장을 맡고 있는 이건표씨(69) / 사진 = 이건표씨 제공

장학사와 초등학교 교장을 지냈던 이씨는 퇴직해 5년째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전국체전·소년체전이 있는 날이면 옷을 챙겨입고 경기장을 찾는다. 자신이 일을 그만두면 어려운 유망주들이 견디지 못해 꿈을 접는 일이 한 명이라도 나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체전을 거른 적이 없다.

이씨가 지금껏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데에는 든든한 회원들의 후원이 있다. 개인 사비로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거나 용돈을 주는 회원도 크게 늘었으며 가입 문의도 잇따르고 있다. 오 선수는 후원을 받던 장학생에서 후원을 하는 회원이 됐다. 500여명의 회원을 보유한 운사모는 1000명 회원을 목표로 오늘도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이씨는 "회장직을 맡은 지 13년이 넘어 이제는 그만 쉬고 싶지만 아직 마땅한 적임자가 없어 계속 하고 있다"며 "회원들끼리 '우리가 죽더라도 대를 이어서 계속하자'고 하는데 어려운 형편의 유망주들이 없어지는 그날까지 절대로 그만두지 않겠다"고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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