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파운드리 분사' 지라시에 담긴 반도체 숙제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 2021.07.26 05:40

주말을 앞둔 지난 23일.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 분사설에 시장이 출렁였다. 증권가를 중심으로 퍼진 '지라시'의 내용은 2012년 삼성전자에서 분사해 나간 삼성디스플레이의 LCD(액정표시장치) 사업부와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를 합쳐 별도 회사를 세운다는 것. 삼성디스플레이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사업부는 삼성전자로 다시 흡수할 것이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삼성디스플레이까지 등장한 구체적인(?) 내용에 이어 직장인 익명 애플리케이션(앱) 블라인드의 삼성 게시판에 삼성디스플레이에서 관련 회의가 열렸다는 글까지 올라오면서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에는 이날 사실 여부를 확인하려는 문의 전화가 줄을 지었다.

양사가 '사실무근'이라는 답변을 내놓으면서 해프닝으로 일단락되는 분위기지만 업계에서는 사실 여부와 별도로 이번 사건이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의 현주소를 또 한번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얘기가 나온다. 반복되는 파운드리 분사설의 밑바탕에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의 근본적인 고민이 깔려있다는 얘기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분사설은 삼성이 파운드리 역량 강화를 말할 때마다 불거지는 단골 시나리오다. 삼성전자가 2018년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했을 때 시장에서 가장 먼저 나왔던 관측도 파운드리 분사 시나리오였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0년대 초중반에도 삼성 파운드리 분사설이 업계에 회자됐다. 당시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에서 파운드리 사업부(현 키파운드리)를 포함한 일부 사업부가 매그나칩반도체로 떨어져나오면서 삼성전자도 비슷한 길을 갈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분사설이 끊이지 않는 이유로 파운드리 고객사와의 신뢰 측면에서 삼성전자가 안고 있는 태생적인 약점을 꼽는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는 스마트폰용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를 포함해 시스템반도체 설계와 판매를 담당하는 시스템LSI사업부와 한지붕 아래 있다. 삼성전자와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 경쟁하는 애플이나 퀄컴 같은 고객사 입장에서 일을 맡기기가 부담스러울 수 있는 구조다.

전세계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의 절반을 차지하는 대만 TSMC의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모토에 빗대 '삼성전자는 고객과 경쟁한다'고 꼬집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 있다. 파운드리 시장에서는 이런 점 때문에 삼성전자가 기술력과 상관 없이 TSMC의 시장점유율을 따라잡기 힘들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도 상당하다.


업계 관계자는 "고객사와의 관계를 우선하면 파운드리 분사만한 해법이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부를 떼낼 경우 막대한 투자금을 감당하기 어렵게 된다는 점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 수익의 80~90%가 메모리반도체 사업에서 나오는 상황에서 파운드리 사업부가 독자 생존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올 2분기 영업이익은 2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파운드리 생산라인을 하나 짓는 데는 20조원가량이 든다.

당장 TSMC와 비교해도 현재 파운드리 투자 규모에서 TSMC는 매년 삼성전자를 3배가량 앞선다. 메모리반도체 사업부의 '지원'을 받는 상황에서도 TSMC에 뒤처지는 파운드리 사업부가 분사해 나간 뒤 TSMC를 뒤따라잡기는 더 쉽지 않다.

반도체업계에서는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구축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팹리스, 파운드리, 후공정(패키징) 등 각 분야의 국내 업체를 키워 '윈윈'하는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전략이다. TSMC도 대만 내 시스템반도체 생태계가 글로벌 시장을 석권하는 발판이 됐다.

업계 한 인사는 "삼성전자도 2~3년 전부터 생태계 구축의 필요성을 깨닫고 전후방 업체와의 협업을 강화하고 있다"며 "또 한번 불거진 파운드리 분사설을 마냥 해프닝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시장 1위를 향한 10년 계획의 나침반을 다잡는 계기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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