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윈도11이 36년만에 '시작' 버튼 옮긴 이유

머니투데이 원종태 에디터 | 2021.07.21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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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MS)가 지난달 공개한 윈도11(프리뷰 버전) 은 '시작' 버튼이 모니터 하단의 정 중앙에 있다. 윈도 1.0이 출시된 1985년 이래 시작 버튼은 늘 왼쪽 하단이었다. 이걸 정 중앙으로 옮기는 데 36년이 걸렸다. 20인치 모니터로 치면 1년에 0.7cm만 이동한 셈이다. 그만큼 '사용자 환경'(UI, User Interface)과 '사용자 경험'(UX, User Experience)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자칫 기업 생사를 좌우할 수도 있다. MS는 스마트폰처럼 시작 버튼을 정 중앙에 뒀으니 이제 마우스를 덜 움직여도 돼 고객들이 편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MS는 기업 문화 자체가 UI, UX 같은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개인용 컴퓨터 운영체제를 만들 경쟁사가 거의 없어 기술 개발에만 주력하면 된다고 봤다. 사용자가 좀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은 '감수하라'는 식이었다.

그런 MS가 시작 버튼 이동을 엄청나게 포장하고 나섰다. 사티아 나델라 대표는 지난달 말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에서 "(윈도11에서) 중요한 것은 이제 사용자가 중심이 된다는 점"이라며 "윈도11로 전 세계 디지털 라이프의 한 가운데에 설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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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델라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은 시작 버튼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윈도의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완전히 뒤바뀐다는 점이다. 인터페이스란 무엇인가. 사람과 사물이 상호 작용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장치나 형식, 공간이다. 그러니까 나델라는 시작 버튼 이동으로 윈도의 UX가 '고객 중심'으로 바뀔 것이라고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치 스마트폰 승리가 '터치스크린'이라는 인터페이스의 승리였던 것처럼.

일찍이 윈도95의 UX를 경험한 사람들은 더 이상 도스(Dos) 운영체제를 찾지 않았다. 텍스트 위주여서 불편한 도스보다 그래픽이 있어 한눈에 들어오는 윈도95가 훨씬 편했다. 이 UX 한방으로 승부는 끝났다.

페이스북보다 훨씬 일찍 서비스를 시작했고, 한 때 1억명 사용자를 보유했던 미국 최대 SNS '마이스페이스'가 실패한 것도 UI UX의 힘을 너무 얕봤기 때문이다. 마이스페이스는 2006년 구글과 9억 달러짜리 검색 광고 계약을 맺으며 승승장구 한다. 하지만 이 계약이 마이스페이스 경쟁력을 완전히 뒤바꿔 놓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구글로부터 광고비를 계속 받으려고 마이스페이스는 광고를 클릭한 다음에야 페이지를 넘어가도록 했다. 페이지뷰와 광고 클릭수를 유지하려면 그 방법 밖에 없다고 봤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갈수록 이를 불편해 했다. 그런데도 마이스페이스는 더 복잡한 기능들을 추가하며 최악의 인터페이스에 기름을 부었다. 사용자들은 더 편리하고, 더 간결한 페이스북으로 갈아탔고,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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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윈도11 시작 버튼을 눌러보자. 이전 윈도10에서 보였던 '생산성'이니 '탐색' 같은 알 수 없는 버튼은 사라졌다. 대신 아마존 안드로이드 앱스토어와 제휴해 모든 안드로이드 앱을 구현할 수 있게 하는 등 사용자 중심의 버튼들이 엿보인다. 자주 쓰는 프로그램과 최근 작업한 문서나 파일도 보여준다.

지금까지 MS를 비롯한 수많은 기술 기업은 기술에만 초점을 맞출 뿐 UI나 UX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기술 개발 속도는 이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고, 쉽게 모방이 가능해졌다. 작가 신성석은 저서 '인터페이스 혁명이 온다'에서 "예전처럼 뛰어난 기술이 기업에게 수 년 간 독보적 경쟁력을 가져다주던 시대는 끝났다"며 "디자인과 인터페이스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콘텐츠 시장은 두 말할 나위 없다. 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길은 오직 사용자에 집중하는 것이다. 36년 만에 윈도11의 시작 버튼이 바뀐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 사용자들이 이 변화를 냉정히 평가할 시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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