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 줄일 줄 알았던 월가 은행들, 오히려 돈 더 쓴 이유

머니투데이 권다희 기자 | 2021.07.18 12:31
/사진=AFP
미국 대형 은행들이 비용을 아낄 것이란 예상과 다르게 지난 분기 오히려 더 많은 돈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인재 확보를 위해 급여를 인상하고 팬데믹 기간 빨라진 디지털 전환에 대응하기 위해 해당 분야 투자를 늘리면서다. 10여 년 전 금융위기 후 비용을 줄여 순이익을 늘렸던 전례와도 대조적이다.

1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JP모간체인스, 골드만삭스, 모간스탠리,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씨티그룹 등 월가 5대 은행은 올해 2분기 중 전년동기 대비 10% 많은 66억달러를 지출했다. 애널리스트들은 지난해 팬데믹과 관련해 추가로 들였던 비용이 제외되는 만큼 올해 은행들의 지출이 전년 대비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는데, 예상과 다른 '깜짝' 증가다.

비용 증가는 은행이 역대 최저 수준의 금리와 대출 증가율 둔화로 매출 증대에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이뤄졌다. 대부분의 미국 은행들에서 비용 증가율은 매출 성장률을 웃돈다. 5대 은행의 지난 2분기 지출은 팬데믹 발생 이전인 2019년 2분기와 비교할 때 21% 더 늘었지만, 같은 기간 매출액은 10% 증가했다.

지출 증가는 지난 금융위기 이후 은행들의 대응과도 대조적이다. 당시 많은 은행들은 비용 절감에 의존해 순이익을 늘렸다. 그러나 팬데믹 회복 국면에서는 달랐다. 미 정부 및 연방준비제도의 부양책은 팬데믹 관련 대출 손실을 당초 은행들의 예상보다 경감시켰다. 대손비용이 줄면서 은행들은 투자나 인건비에 쓸 현금을 더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지난주 2분기 실적을 발표한 월가 대형 은행들은 컨퍼런스콜을 통해 올해 전체 연간 지출을 더 늘릴 것이라고도 밝혔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꼽은 지출 증가 이유는 임금 인상 및 기술과 마케팅에 대한 대규모 투자다.

이런 공격적 투자 배경엔 은행 업황 전반의 변화가 있다. 금융권의 기술 관련 투자는 지난 수년간 꾸준히 늘어났지만 팬데믹으로 이른바 디지털 전환이 빨라지며 관련 투자에 대한 필요성이 더 높아졌다.

여기에 오랜 기간 은행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져 온 분야에서 은행 외 주체들과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사모펀드들은 은행 없이 대규모 딜을 수행할 자본을 갖고 있고, 핀테크 기업들은 웰스매니지먼트 사업 등에서 낮은 수수료를 무기로 은행들의 점유율을 빼앗고 있다.

지난 분기 비용을 7% 더 늘린 씨티그룹의 마크 메이슨 최고재무책임자는 지난주 컨퍼런스콜에서 "우리는 이 회복의 국면에서 지점들에 투자할 전략적 기회를 보고 있다"며 "기회의 창을 놓치지 않을 것"이라 했다.


JP모간도 지난주 실적발표에서 올해 지출액 가이던스를 이전보다 1% 늘린 710억달러로 제시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최고경영자(CEO)는 컨퍼런스 콜에서 "쓸 수 있는 좋은 자금이 있다면 우리는 이걸 쓰겠다"고 했다. 다이먼 CEO는 지난 4월 주주들에게 보낸 연례 서한에서 미국 금융시스템 내 은행업의 비중이 축소되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지난 분기 5대 은행이 임직원들에게 지급한 보수도 전년동기 대비 7% 더 늘었다. 통상 논란이 돼 온 월가 임원급의 막대한 보수만 더 늘어난 게 아니라 주니어 직원들에게 지급하는 급여도 인상됐다. 씨티그룹, JP모간은 팬데믹 기간 '번아웃'을 호소한 주니어 투자은행 직원들에게 급여를 인상했고 BoA는 최저임금을 시간 당 25달러로 인상하겠다고 약속했다.

동시에 투자은행 사업이 예상보다 호조를 보이며 관련 성과 관련 보수도 늘었다. 여기에 기술 관련 인재 채용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엔지니어, 데이터 전문가를 채용하기 위해 이들 직군에 제안하는 급여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5대 은행의 지난 분기 마케팅 지출도 전년동기 대비 46% 급증했다. 신용카드 판촉 등에 쓴 돈이 늘었다. 팬데믹 봉쇄가 풀리며 지출을 늘릴 가능성이 있는 고객들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마이크 마요 웰스파고 은행업 애널리스트는 "은행들이 성장을 위해 더 지출하려 하고 있다"고 했다.

그지출이러나 FT는 기술에 대한 은행들의 더 나은 결과를 꼭 담보하는 건 아니라도 전했다. 은행들은 지난 수년간 기술 부문에 투자해 왔지만 실제로 사업 비용을 의미 있게 줄이는 데엔 실패했다. 월가 은행들의 비용효율성(영업이익 대비 판매관리비)은 수년간 50%대에서 변화가 없다.

은행들이 돈을 벌기 어려운 환경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출도 늘려야 하는 추세는 은행에 투자하는 이들에겐 부담이 되는 대목이다. 비비안 머커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는 "투자자들이 지금 시점에서 기술에 대한 투자의 장기적 가치를 이해하기는 어렵다"며 "부분적으로는 이는 역사적으로 볼 때 공약 대비 실제로 이행된 게 적었기 때문이고, 부분적으로는 아무도 미래를 모르기 때문"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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