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판기가 뉴딜정책?…공공기관 경영평가의 민낯

머니투데이 김민우 기자 | 2021.07.15 15:00

[MT리포트]공공기관의 저승사자, 경영평가의 속살③

편집자주 | 땅투기 사태를 빚은 LH가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선 줄곧 최상위 점수를 받았다가 결국 토해내게 됐다. 코로나 비상경영을 한 코레일은 경영관리 부문 최저등급을 받고 사장이 사표를 냈지만 공정한 평가를 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이 와중에 경영평가 오류로 10개 공공기관의 평가등급이 뒤바뀌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경영평가제도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다. 정부는 다음달까지 개선안을 내놓기로 했다. 38년간 이어져 오면서 공공기관 종사자 수십만명의 성과급을 쥐락펴락하는 경영평가 제도의 실태를 들여다 봤다.


#기타공공기관인 A기관은 지난해 7월 하겐다X 아이스크림 자판기 확대를 한국판 뉴딜 과제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정부가 지난해 한국판뉴딜을 주요 정책목표로 내세우며 공공기관 경영평가 지표와 연계하겠다고 하자 새로운 신기술도 아닌 자동판매기가 '뉴딜정책'으로 둔갑한 것이다. 그해 국정감사에서 '아이스크림 자판기를 왜 뉴딜사업으로 포장했느냐'는 지적을 받자 A기관장은 "인력투입 없이 공적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허점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기타공공기관은 주무부처가 경영평가를 하고,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은 기획재정부에서 경영평가위원회에서 꾸려 평가한다는 점에서 평가주체의 차이는 있지만 제도가 가진 결은 같다. 기타공공기관의 경영평가 제도 역시 기재부의 경영평가제도에 기반하고 있다.

공공기관들이 이같은 '꼼수'를 쓰면서까지 경영평가 지표를 신경쓰는 이유는 '돈'이다. S등급을 받을 경우 일반 직원은 월급여의 250%를, 기관장은 연봉의 120% 를 성과급으로 받는다. 2019년 A등급(당해년도 S등급 없음)을 받은 한국도로공사 직원들은 1인당 1040만원씩 성과급을 지급받았다. 도로공사 사장은 1억1340만원을 성과급으로 받았다. 직원들에게는 수천만원, 경영진에게는 억대가 넘는 돈이 경영평가에 따라 좌우된다.

반면 D등급 이하를 받으면 한푼도 받지 못한다. 기관장도 낙제점을 받으면 원칙적으로 퇴출 대상이 된다. 이렇다보니 공공기관들은 기를 쓰고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노력한다.

애초부터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그 결과를 임원인사와 직원의 성과급과 연계해 공공기관의 경영효율성과 책임경영을 유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실제 '당근'과 '채찍'을 통해 경영개선을 유도하고 공공기관의 경영 투명성 등을 높이는 등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 세계은행보고서에 우리나라 공공기관 경영평가 제도가 우수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책임경영'이라는 정책목표는 사라지고 좋은 점수를 받기위한 기관들의 몸부림만 남았다는 지적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2019년 경영평가 점수를 잘 받기 위해 고객만족도 평가를 조작한 것이 대표적이다. 코레일은 그해 경영평가에서 D등급(미흡)을 받고 경영평가에 따른 성과급을 단 한푼도 받지 못했다. 코레일은 내부평가에 따른 성과급을 총 736억원을 과다 지급했다가 올해 감사원에 적발되기도 했다.

현직인 B공공기관장은 "경영평가가 구성원들의 성과급과 연계되다보니 경영평가를 잘 받지 못하면 내부 구성원들이 잘 따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토로했다. 직원들은 물론 기관장까지 경영평가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문제의 원인은 경영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공공기관에만 있지는 않다. 공공기관의 특성이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획일화된 평가체계와 지표가 수단과 목적을 바꿔버리는 결과를 낳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부의 경영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공공기관 10곳 중 8곳이 별도의 전담 조직을 운영하기까지 한다. 경영평가를 위한 한시 조직이 아니라 1년 내내 경영평가 준비만하는 상설조직이다.

B 기관장은 "내부에 공공기관평가 전담부서를 통해 해마다 바뀌는 평가항목을 분석하고 거기에 맞게 각 사업부의 사업을 전담하는 역할만 한다"며 "그러다보니 공공기관의 본래 운영 목적이 뒷전으로 밀리더라도 평가를 잘받는 쪽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부 공공기관은 연구용역 몰아주기, 내부강연 초청 등을 통해 경영평가 위원들을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016년 발간한 '공기업·준정부기관 경영평가단 관리 강화방안' 보고서를 보면 2009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공공기관 경영평가단에 참여한 전문가 중 117명이 공공기관으로부터 270건의 연구용역을 수주했다.

이해관계로 얽매이면 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같은 지적이 나오자 기재부는 2016년부터 경영평가 대상 기관으로부터 최근 5년사이 연구용역, 프로젝트, 정책위원, 자문위원 등의 대가로 받은 합계액이 1억원 이상이면 평가위원으로 선임할 수 없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최근까지 C공공기관의 경영평가 전담팀장을 지낸 D씨는 "정부의 제도개선 이후 경영평가위원을 하려는 교수들의 경우 공공기관이 의뢰하는 연구용역을 맡지 않으려고 하기도 한다"며 "과거 처럼 '용역몰아주기' 등의 관행은 거의 사라졌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여전히 암암리에 경영평가 위원들에 대한 관리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평가 위원들의 교체율이 40~50%에 그친다는 점을 이용해 합계액을 1억원 미만으로 맞추는 식이다. E공공기관 관계자는 "전국에 지사가 분포해 있는 전국단위 공공기관일 수록 경영평가위원에 대한 관리가 쉽다"며 "전담인원을 배정해 지속적으로 경영평가 위원들과 만나 식사를 하거나 친분을 맺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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