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R&D' 패러독스 [광화문]

머니투데이 임상연 미래산업부장 | 2021.07.15 05:30
'스웨덴 패러독스'(Swedish Paradox). 적극적인 R&D(연구·개발) 투자에도 기업의 실적이나 경제성장세가 시원치 않은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노벨상의 나라, 스웨덴은 1990년대 세계 1위 R&D 투자국가였지만 산업적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면서 경제력이 후퇴하는 쓰라린 경험을 했다. 전문가들은 R&D 사업화 전략 부재를 스웨덴 패러독스의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산업현장과 동떨어진 기초과학 연구에 몰두하면서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스웨덴 패러독스가 본격적으로 회자된 것은 2010년대 초반이다. 당시 R&D 혁신을 주제로 한 각종 포럼과 강연에서 반면교사의 사례로 스웨덴 패러독스가 단골메뉴처럼 등장했다. 진단은 달라도 처방은 늘 같았다. 우리나라가 스웨덴의 전철을 밝지 않으려면 R&D체계를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연구 중심에서 사업화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약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R&D의 현주소는 어떨까.

과학기술계에서는 "패러독스의 간판이 스웨덴에서 코리아로 바뀐 지 오래"라는 자조섞인 한탄이 나온다. 이미 '코리아 패러독스'의 늪에 빠져 R&D가 제역할을 못한다는 지적이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R&D 투자 세계 1위' '인구 대비 특허출원 세계 1위'라는 화려한 수사는 '빚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로 국가 R&D 사업의 중추 역할을 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성적표는 낙제점에 가깝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5개 전체 출연연이 지난해 기술이전·양도·출자 등으로 벌어들인 기술료 수입은 1215억원이다. 연간 5조원에 육박하는 혈세를 투입하지만 기술료 수입은 예산의 2% 수준에 불과하다. 성과가 부진한 것은 민간에서 혹할 만한 돈이 되는 특허가 별로 없어서다. 전체 출연연이 보유한 특허 수는 4만4922건이지만 이중 기술실시 등에 활용된 특허는 1만6410건으로 36.1%에 그친다. 나머지는 미활용 특허(4655건, 10.2%)거나 사실상 활용 가능성이 희박한 특허(2만4574건, 53.7%)다. 보유특허 10개 중 6개 이상이 쓸모없는 특허이거나 장롱특허인 셈이다.

더 큰 문제는 특허의 질이 갈수록 나빠진다는 점이다. 기술보증기금이 19개 출연연의 특허에 대해 기술성 평가를 실시한 결과 보증지원이 불가능한 C등급 이하가 지난해 기준 전체의 53.9%에 달했다. 특허 둘 중 하나 이상은 기술성이 떨어져 정부보증기관조차 보증을 서주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들 출연연의 전체 특허 중 C등급 이하는 2014년 16.9%에서 해마다 증가해 2019년 50%를 넘어섰다. 매년 막대한 혈세가 R&D 사업에 투입되지만 생산성은 갈수록 악화하는 것이다.


코리아 패러톡스에는 복합적인 원인이 있다. △단기성과에 급급한 R&D정책 △부처간 나눠먹기식 예산집행 △공무원의 비전문성과 책임회피 △R&D 예산을 좀먹는 연고주의 등 과거의 낡은 관행과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R&D의 실효성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선 무늬만 특허를 양산하는 '국가 R&D 성과관리시스템'을 수요자와 사업화 중심으로 조속히 개편해야 한다고 진단한다.

선택과 집중으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극일(克日)을 이뤄낸 것처럼 R&D과제 선정 때부터 민관연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연구 성과물의 사업화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교수 겸직 제한 등 규제개선으로 기술을 가장 잘 아는 교수·연구원들의 직접 창업도 활성화해야 한다. 출연연이나 대학이 기술요람에서 창업요람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얘기다. 이제 양적 성장보다 질적 성장 중심으로 R&D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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