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71년] 군번142952 신용범씨 "포위됐다, 가든 남든 알아서 하라 하더군"

머니투데이 뉴스1 제공  | 2021.06.25 06:06

부모 몰래 1948년 입대…1년 후 부모면회 때 펑펑 울어
"무질서 시기 꿈처럼 지나가…통일돼 평화 지켜야"

(수원=뉴스1) 유재규 기자
6.25전쟁 참전유공자 신용범씨가 24일 오전 경기 수원시 장안구 경기남부보훈지청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6.24/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수원=뉴스1) 유재규 기자 = "국군 사단작전참모가 '어차피 포위됐으니 집에 갈 사람은 가든, 남든 알아서 하라'고 하는데 이는 뭐랄까요…'무질서' 그 자체였습니다."

1950년 7월 중순, 경기 용인지역 일대 북한군(軍)의 기습공격에 대비해 야산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신용범씨(90)는 6·25 전쟁 발발 당시 역사의 한 장면을 이같이 회상했다.

1930년 8월5일 충남 온양지역에서 태어나 외아들로 자란 신 씨는 1948년 6월1일 대전에 있는 국방경비대 13연대에 군번 '142952'번과 함께 가슴에 새기고 입대했다.

친구의 말에 부모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무작정 군에 입대했다는 신 씨는 "철이 없었지 그때…"라며 온화한 실소(失笑)까지 보였다.

광복 이후, 할 것도 없고 배고픔이라도 달래볼 심정으로 군에 입대했지만 훈련의 강도가 너무 세, 1년 만에 만난 가족과의 면회에서 그렇게나 펑펑 울었다며 과거의 기억을 하나씩 끄집어냈다.

서울 용산구 육군본부(대전 계룡시 이전 전) 소속으로 전속발령 받아 병기부대(특별부대)에서 근무한 1949년부터 부산 육군병기학교에서 1955년 1월21일 소위계급으로 전역하는 그 순간까지 신씨는 조국을 위해 헌신했다.

친구들의 말에 무작정 군에 지원했던 철없던 18세, 어제까지 웃고 지냈던 전우가 오늘은 총탄에 맞아 사망, 남한의 부산으로부터 북한의 함경북도까지 올라가며 겪은 생사의 고비 등 그에게 6·25전쟁은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이 담겨있는 대서사시 그 자체였다.

그는 "1953년 7월, 휴전소식은 그야말로 기뻤다. 동족상잔의 비극, 한국전쟁은 더 이상 발발해서는 안된다"며 "한민족이 통일돼 평화롭게 사는 것이 너무 좋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신용범씨와의 일문일답.

-경기지역에서 6·25 관련,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생각나는 게 있는지.

▶1950년 7월 중순, 당시 수원지역에 사단사령부가 지금의 삼일중학교에 있었다. 그때 용인지역 일대 어떤 야산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데 나를 포함해 모두 총만 붙들고 졸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떤 두루마기 같은 긴옷을 입고 한 남자가 내 앞에 서있었다. 내가 너무 놀라 '너 누구야'라고 하니 그 사람이 '나 국군 사단작전참모다'라고 했다. 그러더니 '어차피 함락될테니 집에 갈 사람은 가고, 남든지 알아서들 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너무 무질서했던 시기였다. 나는 다른 전우 1명과 함께 경기 평택을 지나 충남 천안과 충북 청주를 거쳐 부산 낙동강까지 갔다.

6.25전쟁 참전유공자 신용범씨가 24일 오전 경기 수원시 장안구 경기남부보훈지청에서 뉴스1과 인터뷰에 앞서 참전용사증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2021.6.24/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함께 부산지역까지 내려온 전우와는 어떤 일화가 있었나.

▶총알의 무서움보다 더 두려운 것은 '굶주림'이었다. 내가 그 전우와 함께 총 한자루씩 서로 쥐고 터벅터벅 걷다 너무 배가 고파 어떤 허름한 초가집을 들렀다. 그때 밥 좀 달라고 소리가 들리든 말든, 외쳤는데 노인 한 분이 나왔다. 그 노인이 건네 준 밥은 새카만 보리밥이었다. 그것이 그때는 왜 이렇게 꿀맛 같았는지 지금 생각하면 참 감사한 분이다.

-군입대를 부모 몰래 했다는데 외아들인 만큼 부모님과의 첫 면회 때는 어땠는지.


▶솔직히 말하면 만나자마자 집 떠나서 개고생했다고, 또 너무 힘들다고 펑펑 울었다. 그러면서도 (군입대를)후회하지는 않았다.

-휴전소식은 언제, 어디서 접했고 그때 느낌이 어땠는지.

▶어느 날, 1사단 병기중대장이 내가 상사였을 때 부산에 내려가서 무슨 교육을 받으라고 했다. 내가 싫다고, 전역을 안하겠다고 하는데 그 병기중대장이 '그냥 전역할 때 소위면 더 좋지 않겠냐'고 했기 때문에 그래서 부산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휴전소식을 들었고 더이상 싸우지 않는다는 말에 너무 기뻤다.

-전역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그 자리로 바로 내 고향인 충남 온양으로 갔다. 거기서 부모님을 다시 만나고 수없이 울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의 도움으로 경기도청에서 일을 하게 됐고 그때부터 수원지역에서 줄곧 살았다.

6.25전쟁 참전유공자 신용범씨가 24일 오전 경기 수원시 장안구 경기남부보훈지청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6.24/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가장 힘들었던 것이 있었다면.

▶생활고였다.

-대한민국 정부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국가유공자를 위해 애쓴 사람들을 잘 고려했음 좋겠다. 최근 언론보도에서 약값이 없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는 것을 보고 너무 무관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군인에 대한, 참전 유공자에 대한 예우가 있어야 한다.

-끝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은.

▶한민족이 통일돼 평화롭게 사는 것이 좋다. 분쟁이 일어나면 그날로 큰일난다. 그때는 한국전쟁 당시 벌였던 전투 이상의 상황이 전개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질서의 혼돈은 이제 꿈처럼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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