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글로벌 탑 나이키도 넘지 못한 일본의 '女子力'

머니투데이 김인권 J트렌드 칼럼니스트 | 2021.06.25 05:33
김인권 칼럼리스트
'요리가 특기. 체질량지수 21 이하. 좋은 화장품 사용. 예쁜 손톱. 마르고 싶다는 트윗. 예쁜 미소. 응석부리고 싶음…'등 총 25개 항목이 각각의 박스에 들어 있는 빙고용지. 바로 일본의 여자력(女子力)테스트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일본의 디지털사전에는 '女子力'을 '빛나는 생활방식을 가지는 여성이 지닌 힘. 자신들의 아름다운 센스를 주목시켜 존재를 나타냄으로써 인기를 갖게 하는 힘'으로 정의했으나 현실적으로는 '외모를 아름답게 가꾸는 자세' '귀엽고 앙증맞은 말투' '요리솜씨' 등 남성이 좋아하는 여성을 묘사하는 의미로 주로 사용된다.

여성지 'VOCE'가 처음 사용한 이 단어는 2009년 '올해의 유행어' 대상 후보에도 올라갈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지금까지도 젊은 여성층을 중심으로 폭넓게 받아들여진다.

일본에서만 통용될 것 같던 이 '여자력'은 구직활동이나 결혼 상대를 찾을 때를 위한 서적과 강좌들은 물론 교육기관의 팸플릿에도 활용될 정도로 일반 '현상'이자 중요한 '덕목'이다.

성차별 연관 단어가 살짝 등장만 해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국의 정서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지난해 11월 나이키재팬은 'The Future Isn't Waiting'이라는 광고를 공개했다. 일본 내 인종차별과 '자이니치'로 대표되는 한국인 차별, 이지메 등을 주제로 제작된 이 광고는 스포츠 브랜드가 현지 국가의 사회적 치부를 건드린 데 대한 반감은 큰 편이었지만 '좋아요' '싫어요' 클릭이 각각 10만건 안팎으로 나올 정도로 인지도 확산에는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 캠페인이었다. 이 회사는 이에 더 나가 지난 5월 말 일본 내 여성에 대한 차별의식을 테마로 담은 'New Girl-Play New'라는 제목의 광고를 공개한다.


동영상은 한 부부가 초음파검사를 받고 의사에게 "여자일 겁니다"라는 말을 듣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두 사람은 기쁜 표정을 짓자마자 곧바로 얼굴이 흐려진다. 그리고 "협의는 해보겠지만, 발언은 좀…"이라는 말과 함께 회의실에서 남성들에게 둘러싸여 주눅 든 여성의 모습. 뒤를 보며 밤길을 걷는 불안한 여성의 모습. 태아가 여자라는 소식을 듣고 표정이 바뀌는 친척들의 모습이 이어진다. 그리고 출산 전 축하파티 장면에서는 케이크에 장식된 인형이 "일본 남녀는 43.7%의 소득 격차가 있대"라고 말을 하고 친구가 "진짜예요. 여자아이는 힘들어요"라고 하자 산모는 큰 소리로 "적당히 해! 여자도 뭐든지 할 수 있어"라고 분노한다. 이후 남성 투수의 공을 힘차게 치는 여성 타자, 여성 스모선수, 여성 럭비선수들의 경기장면, 여성 총리의 연설장면, 여성 피겨스케이팅 선수 등이 연속적으로 겹친다. 그리고 무사히 출산한 여성이 아기를 향해 "너 뭐가 되고 싶어?"라고 얘기하는 장면과 함께 막을 내린다.

나이키재팬은 이 동영상에 꽤 심혈을 기울였으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실제로 현역으로 뛰고 있는 여성 선수들을 기용, 남성 위주 사회에서 여성도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강력한 방법으로 전달했고 론칭 직후 약 1100만명이 시청하며 관심은 끌었으나 "여성스럽고 싶은 여성을 부정하는 느낌" "위화감밖에 없다" 등의 안티성 댓글이 주를 이루면서 1편보다 현저히 낮은 총 5000여건의 호불호 클릭이 있었고 '싫어요'가 '좋아요'의 2배 이상 점한 것이다.

'여자력'과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제대로 깨부수는 모습을 보여주며 큰 반향을 노렸으나 그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을 제대로 넘지 못한 것이다. 지난 4월에는 마리에라는 유명 연예인이 18세 당시 연예계 거물에게 성상납을 강요받았고 이를 거부하자 프로그램에서 하차당했다고 폭로했지만 1주일도 못 넘기고 이슈가 수그러들었다. 확실한 증거도 없고 내용이 점잖지 못하다는 이유로 기성언론들이 게재를 기피한 것이다. 미투(나도 고발한다)도 '여자력'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한국과 일본은 여러 분야에서 경쟁과 벤치마크를 통해 다양한 '힘'을 키우지만 위에 언급된 '力'은 예외여야지 않을까.

베스트 클릭

  1. 1 차 빼달라는 여성 폭행한 보디빌더…탄원서 75장 내며 "한 번만 기회를"
  2. 2 "390만 가구, 평균 109만원 줍니다"…자녀장려금 신청하세요
  3. 3 "욕하고 때리고, 다른 여자까지…" 프로야구 선수 폭로글 또 터졌다
  4. 4 동창에 2억 뜯은 20대, 피해자 모친 숨져…"최악" 판사도 질타했다
  5. 5 "6000만원 부족해서 못 가" 한소희, 프랑스 미대 준비는 맞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