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해볼래?" 뭉클... 집으로 돌아가서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스타뉴스 인천=심혜진 기자 | 2021.06.24 11:01
투수로 나선 김강민./사진=SSG랜더스
2001년 당시 투수로 나섰던 김강민./사진=SSG랜더스(당시 SK 팬북)

SSG 최고령 야수 김강민(39)은 새롭게 야구 전성기를 맞는 듯 하다.

김강민은 23일 인천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리는 LG전을 앞두고 취재진과 만나 "마운드에 올라갔을 때 많이 긴장됐다. 감독님이 불펜에서 몸 풀고 올라가라고 해서 더 긴장됐던 거 같다. 더그아웃에서 나갔으면 긴장 덜 됐을 것이다"고 투수 데뷔전을 되돌아봤다.

1-13으로 패색이 짙은 9회초 김강민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승부는 이미 LG쪽으로 기울었고, 더 이상 투수 소모를 하지 않기 위해 SSG가 내린 결단이었다. 당초 SSG는 서동민과 하재훈으로 경기를 끝내려고 했다. 하지만 서동민이 8회 이형종에게 헤드샷을 던져 갑작스럽게 퇴장을 당하면서 계획이 꼬였다. 하재훈이 2이닝을 소화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 김강민에게 의사를 물어봤고,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했다. 그렇게 1사에서 하재훈의 뒤를 이어 김강민이 마운드에 오른 것이다. 2001년 입단한 김강민이 투수로 등판한 것은 데뷔 이후 처음이다.

첫 타자 정주현에게 137km 직구를 통타 당해 솔로 홈런을 맞긴 했지만 최고 구속 145km의 공을 뿌려 팬들과 동료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김강민은 ⅔이닝 1실점을 기록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총 투구수는 20개.

김강민은 "이 정도 구속까지 나올줄은 몰랐다. 마운드에 올라갈 때 두 가지만 생각했다. '빨리 끝내자', '다치지 말자'였다. 감독님께서도 조절해가면서 던지라고 하셔서 처음에는 가볍게 던졌다. 그러다가 홈런을 맞았고, 그 이후부터는 흥분도 되고, 지기도 싫고, 약간 승부욕이 올라 세게 던졌다. 전력으로 던진 것이 3개 밖에 되지 않는다. 그 중 하나가 걸린 것 같다"고 웃어보였다.

이날 김강민은 신인 투수로 데뷔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로써 그는 '꿈'을 이뤘다고 했다. 내야수로 입단한 김강민은 데뷔 시즌 때 투수를 해보겠다고 구단에 간청했고, 그렇게 1년간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이후 외야수로 포지션 변경을 했고,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김강민은 "마운드에 서는 게 꿈이었다. 실력이 나오지 않아 팀이 원하는대로 포지션 변경을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계속 공을 던졌을 것이다"면서 "집에 가서도 잠을 잘 못잤다. 돌이켜 보면 야구 생활 중 이렇게 많이 흥분된 상태에서 경기가 끝난건 오랜만인 것 같다. 나에게는 좋은 경험이었고, 못 잊을 경기인 거 같다"며 여전히 여운이 남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어 "일방적으로 진 경기에서 웃기가 쉽지 않다. 하나 기분 좋은 건 그렇게 지고 난 뒤에 웃을 수 있었다는 게 좋았던 거 같다"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팀 동료들은 어떤 반응이었을까. 농담과 진담이 오고 갔다. 김강민이 공개한 바에 따르면 대부분의 동료들은 장난식의 문자를 보냈다고. 하지만 최정(33)은 달랐다. 김강민은 "최정이 진지하게 볼 좋은 거 같다고 말해주더라. 진심이었던 같다. 그래서 뿌듯했다"고 너털 웃음을 지어보였다.


가족들도 '투수 김강민'을 축하했다. 그는 "집에 가니 와이프가 고생했다, 수고했다고 말해줬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더라(웃음). 밥이 차려져 있었는데, 고기만 먹고 밥은 먹지 않았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김강민의 첫 투수 등판 기념공./사진=SSG랜더스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다음날이 밝았다. SSG는 LG를 상대로 전날 대패를 설욕했다. 0-4로 끌려가던 5회말 공격에서 대거 6득점을 뽑아내는 빅이닝을 만들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그렇게 짜릿한 역전승으로 마무리했다.

김강민도 경기 중반 출전해 팀 승리에 힘을 보탰다. 빅이닝이 되는 과정에서다. 정의윤이 1사 1, 3루에서 3루 땅볼을 쳤는데, 1루 주자 최주환만 아웃되고, 정의윤은 1루에서 세이프됐다. 그 사이 3루 주자 김찬형이 홈을 밟아 5-4로 역전에 성공했다. 여기서 벤치가 움직였다. 정의윤 대신 대주자 김강민을 투입한 것이다. 추가점을 뽑기 위한 선택이다.

그런데 마흔살의 대주자라니. 보통 대주자는 젊고 빠른 선수가 맡는다. 하지만 SSG에서는 다르다. 대주자 요원 중 김강민보다 빠른 발을 가진 선수는 없었다. 투입 가능한 자원은 한유섬, 오태곤 정도였는데, 한유섬은 느리고 오태곤은 고종욱 대신 대수비로 들어가게 돼 김강민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전날 투수, 다음날엔 대주자였다. 그에게 바쁜 이틀이었다.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고종욱의 2루타가 나오면서 전속력으로 뛰어야 했다. 2루와 3루를 밟고 홈으로 질주했다. 무난하게 득점에 성공한 김강민이다. 홈으로 들어온 김강민은 가쁜 숨을 내쉬었다. 또 한번 팬들의 박수를 받는 김강민이다. 팀 동료들은 최선을 다해 질주한 김강민을 뜨겁게 반겼다.

고종욱의 적시 2루타 때 홈으로 들어오는 김강민./사진=SSG랜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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