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국 위신''지정학적 상황'…강제징용 판결문에 이런 표현이 왜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 2021.06.08 11:37

[theL]

강제징용 피해자 故 임정규씨의 아들인 임철호씨(84)와 장덕환 일제 강제노역피해자 정의구현 전국연합회 회장이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1심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뉴스1

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나온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 각하' 판결이 논란이다. '안보', '국격' 등 이유를 들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논란의 주인공은 재판장인 김양호 부장판사다. 법관이 무조건 대법원 판결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김 부장판사의 판결은 법 테두리 밖에 있는 전제들을 끌어다 썼다는 점에서 법조계에서는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김 부장판사의 각하 판결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피해 회복이 우선한다는 판단과 함께 강제징용 사건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강제징용·일본군 위안부 사건에서 피해자 승소 판결이 이어질 것으로 보였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지난 4월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 민성철 부장판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했다. 사실상 원고 패소 판결한 것이다.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하지만 국제법과 국가면제 원칙을 무시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김 부장판사도 마찬가지로 피해 회복보다 국제법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지난 3월 있었던 위안부 사건 소송비용 추심사건에서 "현대 문명국가들 사이 국가적 위신과 관련되고 우리 사법부의 신뢰를 저해하는 등 중대한 결과에 이르게 된다"며 일본 정부에 대한 추심은 불가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법원이 추심을 허용한다면 일본 정부의 국내자산을 강제압류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국제법 위반이 되므로 허용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이번 강제징용 사건 판결문에서도 같은 논리가 담겼다. 김 부장판사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주장을 인용하는 것은 국제법상 금반언의 원칙에 위배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금반언의 원칙은 모순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 정부가 이제 와서 강제징용 피해자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 행사를 인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다면 모순 행위로 국제법을 위반하게 된다는 것이다.



"세계 10강 문명국 위신 추락" 판결문에 "판결에 나라 걱정?"


논란이 되는 내용은 그 다음부터다. 김 부장판사는 국격 훼손이 우려되므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주장을 받아줄수 없다는 내용을 판결문에 적었다.


김 부장판사는 "만약 국제재판소에서 패소할 경우 대한민국 사법부의 신뢰에 치명손상을 입게 되고 이제 막 세계 10강에 들어선 대한민국의 문명국으로서의 위신은 바닥으로 추락하게 된다"고 했다.

또 "여전히 분단국 현실과 세계 4강 강대국들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 상황에 있는 대한민국으로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적 가치를 공유하는 서방세력의 대표국가들 중 하나인 일본과의 관계가 훼손된다"며 "이는 결국 한미동맹으로 우리 안보와 직결돼 있는 미국과의 관계 훼손까지 이어진다"고 했다.

이런 내용이 알려지자 법 테두리 바깥에 있는 문제들을 판결 근거로 삼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이 "노골적으로 판결이 야기할 정치·사회적 효과 때문이라는 점을 고백했다"며 "사법부가 판단 근거로 삼을 영역이 아니"라는 비판 성명을 내기도 했다.



'김명수 대법원 판결, 판사 설득 실패' 분석도


법조계에서는 이 같은 혼란의 책임은 2018년 10월 전원합의체 판결에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 판결은 수많은 논쟁을 거쳤음에도 2012년 양승태 대법원의 판결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그쳐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었다. 또 2018년 10월 판결은 2012년과 달리 전원합의체 판결임에도 판결의 집행 가능성, 즉 실질적인 피해 구제라는 측면에 대해서는 거의 논증하지 않아 '현실적으로 집행 불가능한 판결'이라는 지적이 다수였다.

결국 2018년 10월 전원합의체 판결이 일선 판사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고, 일선에서 판결이 엇갈리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 분석의 요지다. 지방 지원의 한 판사는 "이번 사건도 대법원에서 한 번 더 정리를 해야 할 사안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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