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해체'에 사로 잡힌 LH 개혁안

머니투데이 김진형 건설부동산부장 | 2021.06.04 05:28
(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 =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이 2일 국회에서 열린 'LH개혁방안 당정협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1.6.2/뉴스1
# 진통을 겪고 있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 개혁안의 골자는 단일회사인 LH를 지주회사 체제로 바꾸는 것이다. 공공임대주택 기능을 담당하는 지주회사 밑에 현재의 택지개발, 주택건설, 도시재생 등을 담당하는 자회사를 두는 형태다. 과거처럼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로 수평분할하거나 주거복지만 따로 떼어내는 방안도 선택지에 포함돼 있지만 개혁안을 마련한 정부는 지주회사 체제의 수직분할 방안을 1순위로 제시했다.

하지만 2차례 열린 당정협의에도 LH 개혁안은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여당 내에서 다양한 말들이 나오지만 핵심적인 이유는 여당 국토교통위원회 간사인 조응천 의원의 이 멘트에 담겨 있다.

"LH 사태가 결국은 내부 정보를 이용한 투기다. 지주회사가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되느냐, LH 사태의 원인 그리고 진단과 해법으로서 이게 맞느냐에 대해 의견일치를 보지 못했다."

LH를 쪼개고, 분할하는 방안이 LH 사태의 재발을 막는 해법이 맞느냐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이 되지 못했다는 의미다.

당정협의에 참여했던 의원들만 갖는 의문이 아니다. 주진형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LH 개혁안은) 뭐라도 해야 되니까 막 던지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박근혜 때 세월호 터지니까 해경 없애는 거랑 크게 다르지 않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 문제가 터지면 정부는 늘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구조를 바꾸고 시스템을 확 뜯어 고치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사태에선 '해체 수준의 개혁'(정세균 전 국무총리)이란 표현이 등장했다.

LH 사태가 터졌을때 가장 놀라웠던 것은 '실명 투자'였다. LH 직원들의 땅투기를 처음 세상에 드러낸 곳이 수사기관이 아닌 시민단체였던 것도 그들의 투자가 전혀 은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여연대는 제보를 받고 하루 만에 LH 직원들의 땅 투기를 확인했다. 신도시로 지정된 광명시흥지구 등기부등본상 토지 소유주와 LH 직원의 이름을 대조하는 단순한 방법이었다.


그들이 이렇게 대놓고 투자한 것은 해선 안되는 행위라는 인식이 없었다는 의미다. 택지보상을 받을 수 있는 크기로 땅을 쪼개고, 보상금을 한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낯선 나무를 심어 놓은 수법에 일반인들은 혀를 내둘렀지만 토지보상 전문가였던 그들에겐 투자의 당연한 수순이었다.

# LH를 쪼개서 지주회사 체제로 바꾸면 이런 직원들의 투기행위가 사라질까. 선뜻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는 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가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LH 직원들 뿐만 아니라 개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던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 의원들 100여명도 수사를 받고 있다. 하지만 국회나 지방의회를 쪼개고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은 들리지 않는다. LH는 해체해도 되고, 의회는 해체할 수 없기 때문인가.

LH 개혁안을 보면서 우려스러운 것은 정부가 '해체 수준의 개혁'이란 선언에 너무 사로잡혀 있는게 아니냐는 점이다. '해체한다더니 겨우 이 정도냐'라는 비난이 두려워 내부통제와 처벌을 강화해 조직문화를 바꿔야 하는 문제에 지나치게 큰 칼을 꺼낸게 아닌지다.

LH를 해체하면 안된다는 얘기를 하는게 아니다. '해체'가 목표여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LH는 정부의 국토개발, 주거정책의 핵심 집행기구다. LH를 해체 수준으로 개혁한다면 정부의 국토, 주거정책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우선돼야 한다. 그리고 그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LH를 이렇게 바꾸겠다는 결론이 담겨야 한다. LH 개혁안에 대해 적자 나는 주거복지 사업만 떼어내도 되는지, 택지개발과 주택건설은 그대로 붙여놔도 되는지 질문만 이어지고 합의가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공공 디벨로퍼로서의 LH 역할은 이제 끝났다, 더 이상의 수도권 택지개발은 필요없다, 주택공급은 민간에 맡기고 LH는 장기공공임대만 해야 된다, 임대사업자제도가 폐지되면 LH 역할은 더 커져야 한다 등 국토개발과 주거정책의 큰 줄기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해체 수준의 개혁'이라면 최소한 이런 기초적인 논쟁이라도 한번 치열하게 해보고 내놔야 하지 않을까.

김진형 건설부동산부 부장 /사진=인트라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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