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물가는 경제의 체온계다. 경제가 과열로 치달으면 그 증상으로 인플레이션이 나타난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과열을 탓하기 어렵다. 겨우 코로나19 충격을 수습하고 조금씩 정상화 수순을 밟기 시작했을 뿐이다. 오히려 그동안 방출된 막대한 유동성과 대규모 재정지원에다 대내외 생산 및 수송 병목현상이 맞물리면서 물가 측면에서 이상징후가 나타난다. 대규모 부양책에 경제는 일시 회복되고 있지만 여전히 중기적 차원의 성장력이 의문시되면서 물가 불안만 커진 것이다. 1970년대 세계 경제를 위협한 성장정체와 인플레이션의 조합, 곧 '스태그플레이션' 악몽이 연상된다.
격세지감이랄까, 얼마 전만 해도 디플레이션 위험이 파국의 그림자로 어른거렸는데 이제는 인플레이션이라니…. 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이상에 걸쳐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경제는 만성적인 수요결핍에 따른 장기정체와 디플레이션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만성 저혈압과 그에 따른 뇌졸중 위험이 컸던 셈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물가 상승은 도리어 환영할 일 아닌가. 사실 적절한 수준의 물가 상승은 경제활력 제고라는 측면에서 원하던 바다. 미국의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2016년 연방준비제도 총재 취임일성으로 내뱉은 '고압경제'가 바로 이를 겨냥한 정책처방이었다.
물론 인플레이션은 비선형성으로 악명 높다. 한번 오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치솟는 경향이 있다. 특히 옐런의 고압경제를 필두로 미국 등 주요국에서는 임금이나 소득, 고용지원에 초점을 둔 인플레이션 정책이 점차 본격화하고 있다. 나아가 무역을 넘어 안보와 기술 패권전쟁으로 치닫는 '미중 분쟁 2.0'도 세계화의 순풍을 되돌리며 물가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처럼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는 '두툼한 꼬리위험'(fat tail risk)을 관리하는데 섬세한 주의가 요구된다.
하지만 경기회복의 기대가 커진 지금도 장기정체의 그림자는 전혀 불식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부문별·지역별·계층별로 회복력이 불균등한 것은 물론 그 격차가 더욱 확대되며 취약성을 가중시킨다. 코로나19 시대 뉴노멀, 즉 '코로노말'(Coronormal)의 실체다. 아마도 코로나19 위기는 우리의 신체적 건강만이 아니라 세계 경제의 건강 자체를 위협하는지도 모른다. 사실 다보스포럼은 올해의 주제로 '위대한 리셋'을 제안하며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보기 드문 기회"에 주의를 촉구했다. 섣부른 인플레이션 위험보다 오히려 경제 내 원활한 혈액순환을 보장하고 만성적인 저혈압의 굴레를 탈피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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