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라 실종 아닌 가출…한해 1700명이 시신으로 돌아왔다

머니투데이 김주현 기자, 홍순빈 기자, 오진영 기자 | 2021.05.29 05:52

[사라진 어른들①]

편집자주 | 한국에 실종된 어른은 없다. 만 18세 이상의 어른은 범죄 혐의가 없다면 실종 신고 대신 가출 신고가 된다. 지난 5년간 가출인으로 신고된 어른 중 1만여명이 아직 행방을 알 수 없거나 숨진 채 발견됐다. 일부에서는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어른들의 실종을 수사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사라진 어른들…年 2000명이 돌아오지 못한다


/사진 = 이지혜 디자인기자

# 지난해 12월 고(故) 강지훈씨(가명·당시 30세)는 서울의 집 근처에서 사라졌다. 당시 경찰은 강씨가 우울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던 중 가출한 것으로 추정했다. 강씨의 아버지는 서울경찰청에 아들을 '가출인'이 아닌 '실종인'으로 전환해달라고 민원을 넣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범죄혐의가 없는 성인은 가출인으로 신고된다.

가족들은 강씨의 카드 내역 조회를 요구했지만 이조차 불가능했다. 강씨가 범죄를 저질렀거나, 반대로 범죄를 당했다는 근거가 없어서다. 강씨가 사라진 지 3주가 지날 때까지 가족들이 확인한 건 강씨가 실종 당일 편의점을 들렸다는 CCTV(폐쇄회로TV) 화면이 유일했다. 사라진 강씨는 40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한강 실종' 고(故) 손정민씨도 성인 실종 신고 이후 사망한 사례다. 정민씨는 지난달 24일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 근처에서 늦은 밤까지 친구와 술을 마시다 실종됐다. 가족들이 실종 신고를 했으나 접수는 가출신고로 됐다. 범죄 혐의는 없었고, 경찰은 강제수사를 할 수 없었다. 경찰과 가족이 수색 작업을 벌였지만 정민씨는 닷새 뒤 한강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어른들이 사라진다. 지난해에만 1700여명의 성인이 실종(가출)신고 후 숨진 채 발견됐고, 925명은 아직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5년간 1만여명의 어른이 실종 뒤 행방을 알 수 없거나 사망한 채 발견됐지만 경찰의 수사에는 한계가 있다. 어른의 경우 '실종'은 없고, '가출'만 있어서다.

◇지난해 가출인 사망자 1710명…실종아동 사망자는 21명

28일 경찰청과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실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경찰에 접수된 가출인(18세 이상 실종신고) 신고건수는 6만7612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지난달 30일 기준으로 사망자는 1710건, 미발견자는 925명이다. 매일 5명꼴로 가출인 사망자가 나오는 셈이다.

최근 5년 가출인 사망자 건수는 △2016년 1285명 △2017년 1404명 △2018년 1773명 △2019년 1695명 △2020년 1710명 등이다. 미발견자까지 더하면 해마다 2000명이 넘는 성인이 사라진 채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가출인에는 자발적 가출과 실종, 자살의심, 연락두절 등이 모두 포함된다.

같은 기간 18세 미만 실종아동 신고건수는 1만9146건 접수됐다.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아동은 36건, 사망 확인이 된 건 21건이다. 사망자 통계는 가출인이 실종아동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가 적지 않지만 빨리 발견했다면 이를 막을 수도 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경찰청 관계자는 "실종아동은 국가가 법으로 보호하기 때문에 발견율이 99% 정도이지만 성인은 다르다"며 "가출인은 자살 의심으로 사라진 경우가 많고 법으로 보호받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성인은 자유의지로 움직이는 것으로 판단해 자발적으로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자신의 소재를 밝히고 싶지 않아하는 사람도 많아 가출인 건수가 통계상 많은 것"이라며 "성인은 가정문제로 가출한 경우가 가장 많다"고 했다.

◇실종아동은 99% 돌아오는데…'가출인'은 사고 위험있어도 수색 한계

한강에서 실종된 뒤 숨진 채 발견된 의대생 故 손정민 씨 사건 관련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28일 오후 서울 반포한강공원 수상택시 승강장 인근에서 수색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2021.5.28/사진 = 뉴스1
실종아동법에서는 18세 미만 아동이나 지적·자폐성·정신장애인, 치매환자 등을 포함해 '실종아동 등'이라고 통칭한다. 그외 일반 성인은 가출인으로 분류한다.

현행법상 실종 신고를 하면 즉각적인 수색에 나서는 '실종아동 등'과 달리 성인은 강제 수사가 불가능하다. 수사 기관이 위치추적이나 카드사용내역을 조회할 수 없다보니 사고가 의심되는 상황에서도 발견이 지체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실종 아동의 경우에도 카드 내역 조회에는 영장이 필요하지만, 위치추적은 관련법에 따라 가능하다.

이 때문에 실종아동법 대상에 18세 이상 성인을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된다. 서기원 실종아동찾기협회 대표는 "성인실종 관련 법이 없어 초동수사부터 난항을 겪는다"며 "'손정민 사건'도 실종된 이후 곧바로 초동수사를 했다면 현재 경찰 수사권 논란이나 여론 과열 등 불편한 문제들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은 성인 실종에 대한 관심도가 낮았지만 앞으로는 아동 실종사건과 동일하게 의심 정황을 포착한 후 바로 현장에서 증거를 확보하도록 법이 개정돼야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성인 실종 시 범죄 피해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면서 인권침해를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실종법이 개정돼야한다고 조언했다.

박순진 대구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실종자와 유가족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관련법이 개정이 필요하다는 취지는 공감한다"면서도 "자발적 의지가 있는 성인은 공권력 개입과 개인정보보호 문제가 충돌할 수 있다"고 했다.

또 "관련법이 개정될 필요는 있지만 국가가 공적으로 개입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사생활침해나 개인정보보호 문제 등을 신중하게 검토한 다음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김주현 기자, 홍순빈 기자




'포항 실종 간호사' 50일째…초기 대응 늦을 수밖에 없었다



"다 큰 아이라고 해도 아버지 눈에는 항상 어린 자식입니다."

포항에서 실종된 간호사 윤모씨(28) 행방이 50여일째 묘연하다. 경찰은 그동안 8차례에 걸쳐 윤씨를 수색했다. 지난 22~23일 수색견 5마리와 인력 100여명을 투입해 다시 한 번 수색작업을 벌였으나 찾지 못했다. 윤씨는 지난달 7일 오후 3시쯤 기숙사에서 나온 뒤 인근 주유소 CCTV에 포착된 걸 마지막으로 실종됐다.

윤씨의 아버지 윤희종씨(61)는 최근 머니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아들이 사라진 이후 초기 대처가 다소 아쉽다"며 "고생하시는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조금 더 빨리 대처했으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윤씨는 한 달이 넘도록 생업을 미뤄 가며 아들의 친구들과 실종 지점을 수색하고 있다.

◇"초기 대처 빨랐으면 어땠을까, 통신·계좌 못보니 시간 지연돼"

실종 직전 윤씨의 모습이 담긴 CCTV. /사진 = 윤희종씨 제공

경찰청 '실종아동등 및 가출인 업무처리 규칙'에 따르면 실종인이 18세 미만이거나 지적 장애인, 치매 환자의 경우 '실종아동등'으로 구분한다. 윤씨 사례처럼 일반 성인의 행방이 묘연해진 경우에는 '가출인'으로 분류된다.

윤희종씨는 "경찰에서는 '실종이나 가출인이나 똑같은 절차에 따라 수색이 진행된다'고 하지만 초기 대처가 좀 더 빨랐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며 "통신 내역이나 계좌 등 가족이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에서 시간이 소요되다 보니 수색 기간이 길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윤씨의 실종을 가장 먼저 인지한 건 친구들이다. 한 친구가 윤씨의 직장인 병원을 방문했다가 '3일간 윤씨가 출근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들은 본격적인 경찰 수사가 개시되기 이전 실종 지점 차량 블랙박스를 찾아다녔다. 또 일대 모텔과 편의점을 수색했다.

경찰 관계자는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수색 작업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지만 가족들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윤씨 가족과 친구들은 생업도 미뤄두고 사비로 전단지와 현수막을 배포했다. 실종아동의 경우처럼 정부 기관이 제공하는 제도적 지원이 없어서다.

윤희종씨는 "아들이 없어진 지 50일이 넘었는데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조차도 모르니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것 같다"며 "다 큰 아들이라고 해서 어린 아이들보다 걱정이 덜 되는 것은 아니다"고 울먹였다.

◇성인 실종은 증거 찾기도 어려워…"인지하자마자 즉각 수사해야"

22일 경북 포항남부소방서 119구조대와 의용소방대원들이 포항공대 인근에서 지난달 7일 실종된 윤 모씨(28)의 수색작업을 앞두고 회의를 하고 있다. 2021.5.22/사진 = 뉴스1

성인 실종은 대부분 증거나 흔적을 남기지 않아 초동 수사에 어려움이 있다. 윤씨도 검정 모자와 운동복을 입고 기숙사 근처 도로를 따라 800여m를 걷는 모습이 주유소 CCTV에 찍힌 것이 마지막이다. 이곳은 근처에 고등학교가 있고 등산객들이 오가는 산길이 있지만 아직까지 목격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윤씨의 수색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고모 A씨는 "경찰 쪽에서도 조카가 어느 방향으로 이동했는지조차도 단서가 없다고 한다"며 "차를 타고 이동했는지 산으로 올라갔는지도 몰라 한 달 넘도록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있다"고 했다. A씨는 "경찰한테는 조카가 찍힌 영상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보려면 경찰서를 직접 방문해야 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익명을 요구한 윤씨의 한 지인은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이후 뒤늦게 수사기관이 움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실종을 인지한 것도 3일이 지난 이후인데 이미 무슨 일이 생겼을 수도 있는 시간"이라고 했다.

오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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