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금 천만원…수리비 400만원…임대차법이 만든 '팍팍한 인심'

머니투데이 유엄식 기자 | 2021.05.23 09:26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계약 만료인 6월 중 이사를 요구하니 이사비와 복비를 달래서 700만원을 드린다고 했더니 1050만원을 주면 7월 중 나가겠다고 한다"

"3년 전세 살다가 나가는데 집주인이 바닥과 벽지 등이 훼손됐다며 원상복구 비용 400만원을 요구한다"

한 부동산 커뮤니티에 같은 날 올라온 피해 호소 글이다. '임차인 보호'를 위해 지난해부터 시행된 임대차법으로 인한 집주인과 세입자간 갈등이 여전하다. 이전까지 서로 양해하면서 넘어갔던 사소한 일조차 돈 문제가 얽히며 분쟁거리가 된다.

23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이후 임대차 분쟁 관련 상담 건수가 이전보다 대폭 증가했다. 7월 425건이었던 전체 상담 건수는 8월 8180건으로 급증했고, 올해 4월까지 월평균 7500여 건이 접수됐다.

임차보증금 반환을 비롯해 임대차기간, 대항력, 임차보증금·차임 증감, 임차주택 유지·수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상담 건수가 이전보다 크게 늘었는데, 모두 임대차법이 시행된 지난해 7월 이후 급증한 경향이 뚜렷하다.
서울 여의도 63스퀘어에서 바라본 서울 아파트의 모습.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계약갱신권 주장하며 '이사비+복비' 1000만원 요구한 세입자


특히 계약갱신청구권을 기존 계약으로 소급 적용한 탓에 세입자가 마음을 바꿔 더 살겠다고 버티기에 나서면서 분쟁이 발생한 사례가 적지 않다.

이날 커뮤니티에 '임차인들 임대인한테 왜 돈요구하세요?'란 글을 올린 A씨는 "6월 말 계약 만료인데 6개월 전부터 꾸준히 통보했고 내용 증명을 발송했는데 그 사이 집을 구하겠다고 답변한 세입자가 몇주 후 이사비와 복비를 요구했다"며 "700만원을 드린다고 하니 며칠 잠수하다가 1050만원을 주면 만기 다음달인 7월 나가겠다고 해서 확약서를 쓰자고 하니 만나기로 한 날 연락도 없다"고 썼다.

이어 "만기일에 나가지 않으면 저희는 어쩌냐고 하니 똑같이 지금 (게시자가) 살고있는 집주인들한테 협의를 요구하라고 한다"며 "어떻게 그런 요구를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전세를 끼고 산 집에 1~2년 뒤 실입주하려는 소유자들도 이와 비슷한 고충을 토로한다. 기존 세입자와 입주 시점을 놓고 분쟁이 생길 것에 대비해 6개월 전부터 실입주 의사를 밝히는 게 보편화됐다.

갱신권 청구 분쟁과 관련해 엇갈린 법원 판결이 나온 것도 시장에선 혼선을 부추길 소지가 있다. 최근 서울중앙지법 민사40단독 재판부는 강남구 일원동 아파트 집주인이 임차인을 상대로 제기한 건물인도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지난 3월 수원지법 민사2단독 재판부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한 세입자의 손을 들어줬는데 같은 임대차법 규정을 놓고 서로 다른 방향의 판결이 나온 것이다.


"매매 체결 시 집주인들이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원 행사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은 정부는 올해 1월엔 매매 계약서에 세입자 의사를 표시토록 하는 규정도 새로 도입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분쟁의 소지가 있는 전세 낀 매물 거래를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실입주를 위해 집을 사려는 수요자들의 불안감도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집주인이 전세 기간 집안 내부 경미한 파손을 이유로 수리비 400만원을 요구했다는 세입자가 올린 사진. /출처=부동산 커뮤니티


바닥 찍힘, 못 자국 도배 등 수리비 400만원 요구한 집주인


팍팍해진 인심은 다른 측면에서도 나타난다. 이날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전세 세입자 B씨는 집주인이 주방등, 화장실 타일, 못자국, 바닥 긁힘 등을 이유로 400만원의 원상복구 비용을 청구한 게 합리적 요구인지 의견을 물었다.

전세 세입자에 원상복구 의무가 없고, 파손 정도가 경미해 수리비를 줄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전등 교체를 비롯해 훼손도가 높은 부분은 일부 보상해줘야 한다는 입장을 낸 사람도 있었다.

한편으론 임대차법 개정으로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에 불필요한 분쟁 요인이 생겨 이런 문제까지 세세하게 비용을 청구하는 문화가 형성된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대법원 판결(94다34692)에 따르면 전등 교체 등 일생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작은 수선의무는 임차인에게 있고 전기배선, 보일러, 상하수도 배관 교체 등은 규모가 큰 수선 문제는 임대인이 책임져야 한다.

결국 재판까지 가야 구체적인 배상액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까지 법의 영역으로 끌고가는 것은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에게 득이 될 것이 없다는 게 법률 전문가의 조언이다.

엄정숙 부동산 전문 변호사(법도 종합법률사무소)는 "소송 비용을 고려하면 소액 수리비 사건 등은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 실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먼저 원만하게 합의를 보는 것이 합리적 해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집주인과 세입자 사정은 저마다 다르고 법으로 모두 아우를 수 없는데 획일적인 법규정으로 강요하고 통제하려다 보니 분쟁이 많다"고 임대차법의 부작용을 지적했다.

이에 업계 안팎에선 임대차법 개정 논의가 꾸준히 제기된다. 하지만 정부는 법개정엔 신중한 입장이다.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달 초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답변자료에서 "임대차 3법으로 계약 갱신율이 높아지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며 "제도의 안정적 정착을 위한 개선사항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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