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웅전 불에 탄 천년고찰 내장사…석탄일 행사 없이 조용히 참회기도만

머니투데이 뉴스1 제공  | 2021.05.19 12:06

주지 "천막 법당이 정식 법당 되도록 참회하겠다"
정읍시민, 신도 등 수십명 조용히 기도

불기 2565년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한 19일 오전 전북 정읍시 대한불교 조계종 제24교구 내장사에서 승려들이 신도들에게 대웅전 화재에 대한 참회의 의미를 담아 절을 올리고 있다.2021.5.19/© 뉴스1 이지선기자
(정읍=뉴스1) 이지선 기자 = "부처님을 지켜 드리지 못한 죄 엎드려 손모아 눈물로 참회합니다."

석가탄신일인 19일 오전 전북 정읍시 대한불교 조계종 제24교구 내장사. 불기 2565년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한 사찰에는 화려한 봉축법요식 대신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주차장부터 내장사 내부까지 곳곳에 내걸린 하얀색 배경의 현수막에는 검정색 궁서체 글씨로 '내장사 대웅전 화재로 국민과 불자 여러분께 심려 끼쳐드려 참회드린다'는 문구가 선명하게 적혀있었다. 조금씩 내용은 달랐지만 모든 현수막에는 참회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앞선 3월5일 내장사에서는 잠시 머물던 한 승려가 대웅전에 인화물질을 붓고 불을 질렀다. 이 불로 목재로 지어진 대웅전 건물이 밤새 불에 타다 결국 무너져 내렸다.

올해 내장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대웅전 소실로 인한 참회를 이유로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 행사를 열지 않기로했다. 내장사를 찾은 이들을 위해 매년 준비해왔던 비빔밥 등 점심도 올해는 제공하지 않기로했다.

다만 오전 10시 법당에서 참회기도를 주제로하는 예불을 하고, 혹시 오는 불자들이 이를 함께 할 수 있도록 바깥에 띄엄띄엄 좌석을 준비했다.

165.84㎡ 규모의 대웅전 건물이 새까맣게 타버린 자리는 텅 비어있었다. 자갈 바닥에 간혹 눈에 띄는 깨진 기와조각만이 당시 화재 현장을 짐작케했다.

불기 2565년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한 19일 오전 전북 정읍시 대한불교 조계종 제24교구 내장사에서 신도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2021.5.19/© 뉴스1 이지선기자

예불이 시작되고 스피커에서 목탁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불경 소리가 나즈막히 흘러나오자 신도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잡고 앉기 시작했다.

불교에서 가장 큰 행사로 꼽히는 석가탄신일인만큼 평소 같으면 각양각색의 연등과 화려한 장식 아래 인파가 몰려들어 시끌벅적 했을테지만, 이날은 신도 수십명이 침울한 표정으로 조용히 개인 기도를 할 뿐이었다.

대웅전이 있던 자리에는 의자가 널찍하게 일정한 간격을 두고 놓여져 있었다. 이날 20도를 넘나드는 완연한 봄 날씨에 시민들은 입고온 겉옷을 벗어두고 조용히 예불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마스크를 쓴 채 손을 모으고 조용히 기도하는 이들 사이에서 이따금씩 흐느끼는 소리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이날 내장사를 찾은 김순영씨는 "부처님 오신날인데 이렇게 불상 모실 대웅전도 없으니 얼마나 죄송한 마음이 드는지 모른다"며 "스님들 마음은 더욱 심란할테니 응원하는 마음으로 왔다"고 말했다.

한 정읍시민은 "어머니와 함께 다니던 절이라 가끔 이곳을 찾는다"며 "대웅전 건립할 때 나도 돈을 냈는데 뉴스에서 불이 났다는 것을 보고 신도들과 전화하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회상했다.

불기 2565년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한 19일 오전 전북 정읍시 대한불교 조계종 제24교구 내장사에서 승려들이 신도들에게 대웅전 화재에 대한 참회의 의미를 담은 시를 낭독하고 있다.2021.5.19/© 뉴스1 이지선기자

내장사는 지난 4월 중순께 가건물 식으로 된 '큰 법당'을 지었다. 이날 석가탄신일 봉축 예불도 이곳에서 진행됐다. 예불을 마친 뒤 대우 스님이 '참회합니다'라는 제목의 시를 신도들 앞에서 낭독했다.

새로 부임한 내장사 대원 주지스님은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말이 차마 없다"며 "지금 이 천막 법당이 나중에 정식 법당으로 세워질때까지 진심으로 참회하는 모습 앞으로 지켜봐달라"고 말한 뒤 다른 승려들과 함께 시민들에게 참회의 절을했다.

내장사 관계자는 대웅전 복원계획을 묻는 질문에 "현재 대웅전 화재에 대한 참회와 사죄의 의미를 담아 1000일 기도를 시작했다"며 "재건 논의는 1000일 기도가 끝난 3년 뒤에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내장사 신도는 물론 대웅전 건립에 도움을 준 정읍시민들에게 충분한 사과를 드린 뒤 복원에 대한 의논을 해도 늦지 않다는 의미다.

앞서 내장사 대웅전 건립에 20억원의 예산을 지원한 정읍시 역시 아직까지 복원에 대한 지원 계획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조계종 24교구 선운사 말사인 내장사는 백제 무왕 37년(636년) 창건된 천년고찰이다. 그동안 수차례 걸친 화재로 소실과 중창을 거듭했다. 한국전쟁 때인 1951년 1월25일 방화로 전소돼 복원된 바 있다. 지난 2012년 10월에도 누전으로 발생한 화재로 모두 불 타 붕괴됐다가 2015년 7월 정읍시민의 성금과 시 예산 일부를 더해 복원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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