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법률 칼럼]역세권 농지 행위제한, 보호해야 하는 것들

머니투데이 중기&창업팀 허남이 기자 | 2021.05.17 16:47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업무상 정보를 이용하여 투기를 한 정황이 포착되고 있어 많은 사회적 공분을 사고 있다. 작금의 사태를 얼핏 보면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최소한의 직업적 양심도 없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스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이면에는 이를 방치하고 심지어는 방조한, 뿌리 깊은 조직적 무능(無能)이 있다. 많은 사례가 있지만 그 중 하나를 소개한다.

역세권의 농지, 이렇게 탄생하다
역세권의 농지, 조금 어색하게 들리기도 하나 실제로 경상북도 경산시에는 임당역 바로 앞에는 광활한 농지들이 있다. 농지 인근에는 고층 신축 아파트들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역세권의 농지가 탄생하게 된 배경은 매우 특이하다. 경산시는 2011. 4. 25. 대평, 임당, 중방, 대동 일원을 개발행위허가제한지역으로 지정했다. 녹지지역 내 우량농지를 보전하고 난개발과 장차 예정된 도시관리계획(도로)상 지장을 방지하기 위한 시 차원의 큰 그림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위 농지의 6년 8개월 간 긴 행위제한의 시작이었다. 경북 경산시 농지가 행위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던 사이, 농지 옆으로는 지하철역이 개통되고 신축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역세권의 농지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위법을 무릅쓴 6년 8개월 간의 행위제한, 보호해야 할 것은 무엇이었나
국토계획법상 행위제한의 최장 기한은 5년이다. 따라서 위 농지들은 2016. 4. 25. 행위제한이 종료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경산시는 위 5년간의 행위제한 종기를 약 10일 앞둔 2016. 4. 14. 다시 한 번 특단의 결정을 한다. 생산녹지를 보호하고 난개발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지방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도 거치지 않고, 법률에 근거도 없이 행위제한 기한을 1년 8개월 추가 연장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는 분명 위법한 결정이었고, 이렇게 위 역세권의 농지들은 2017. 12. 31. 까지 '보전이 필요한 농지'로 강제되어 왔다. 그 과정에서 농민들은 포도밭 옆에 조그마한 오두막을 짓거나, 조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초가집을 개량하여 여생을 보내고 싶은 소박한 꿈을 모두 포기해야 했다. 물론 동사무소나 시청을 찾아 이의를 제기한 농민들도 있었다. 그 때마다 농민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시청이 할 만 하니까 했지. 저기 뒷 동산을 파면 문화재가 있다더라. 조선시대 유물이 한가득이라더라."

갑자기 들이닥친 LH, 평생 일군 농지는 평당 140만원 짜리가 되다
경북 경산에서 그동안 절대적인 보호가치가 있다는냥 보전되던 역세권의 농지들이 갑자기 개발 대상이 된 것은 위법한 위 행위제한이 끝날 무렵부터였다. 2017. 9. 갑자기 위 농지들이 공공주택지구로 지정 제안이 되었고, 2017. 11. 29. 공공주택지구 지정을 위한 주민 의견청취절차가 시작되었다. 2018. 1.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위 미개발 농지들을 경산대임공공주택지구로 명명하고 개발사업을 위한 전략환경평가서를 작성한다.

LH주도 공공주택 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국토교통부는 2018. 7. 2. 위 경산시 대평동, 임당동 일대의 약 50만평의 농지를 공공주택지구로 지정하였으며 이를 '경산대임 공공주택지구'로 명명했다. 동시에 국토교통부 장관은 해당 사업의 시행자로 한국토지주택공사를 지정했다.

한국토지공사는 2019. 12. 농민들에게 토지 수용 협의보상가격으로 평당 140만원을 제시했다. 이는 위법한 6년 8개월간의 행위 제한 기간 동안 억눌려있던 공시지가를 토대로 형성된 가격이었으며 바로 옆에 위치한 일반 토지 가격의 1/10에도 못 미치는 가격이었다.


이수희 변호사/사진제공=법무법인 센트로
시청은 누르고 LH는 빼앗는 강제수용, 누군가는 웃고 있다
2019. 경상북도청은 잇따른 농민들의 민원에 자체 감사를 실시했고, 경산시청의 6년 8개월 행위제한은 위법하다는 점을 사후적으로 인정했다.

실제로 업무에 관여한 경산시청 담당자는 훈계처분을 받았고 그렇게 사건은 종결되었다. 참고로 훈계처분은 단순 내부적 경고일 뿐 징계처분과는 다르며 불이익도 없다.

감사 결과와 무관하게 LH의 농지수용 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6년 8개월 동안 행위제한이 있었으니, 공시지가도 저렴했을 뿐 아니라 농지 위에는 보상 대상이 될 만한 마땅한 지장물도 없었다. 토지 위에 집도 없고 아무것도 없으니 이주의 문제도 없었다. 그야말로 '강제 수용하기 딱 좋은 땅'이었다.

그래서였을까. 2021. 4. 경북경찰청 부동산투기 전담수사팀은 경산시청과 한국토지주택공사 대구경북본부에 대한 압수수색을 개시했다.강제수용이 용이한 사업성 좋은 농지들에 대하여 '지분 쪼개기' 등 불법 투기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행위제한으로 6년 8개월간 묶여있던 역세권의 저렴한 농지는 아파트 짓기에 용이할 뿐 아니라 매우 좋은 투자처기도 했다.

2020년 1월 LH 대구경북지역본부 보상관리부장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농민들에게 "여기서 나가는 보상금은 국민의 세금입니다" 라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굳이 농민들을 기만할 의도로 한 말은 아닐 것이다. 한 여름 경북 경산의 뜨거운 햇살 아래서, 포도나무 한 그루라도 더 보상대상으로 넣어 주기 위해 몇 시간을 고생하던 LH 직원들에게 설마 어떠한 악의라도 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LH 사태를 소수의 비행으로 치부할 수 없는 까닭은 그 이면에 매우 조직적이고 뿌리 깊게 퍼져있는 무능이 있기 때문이다. 불의의 씨앗은 무능 위에 자리 잡는다. 소수의 비행이 있기 전에 이를 방치하고 방조한 조직이 있는 것이다. LH 사태는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글 이수희 법무법인 센트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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