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 청구 전산화, 이미 다 하고 있다고요?"

머니투데이 전혜영 기자 | 2021.05.17 05:00

[우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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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이 지역구 의원을 한번씩 찾아가면 분위기가 싹 바뀐다고 하더라고요."(금융권 고위 관계자)

실손의료보험(이하 실손보험) 보험금 청구를 전산을 통해 쉽게 하자는 취지의 법안이 20대 국회에 이어 21대 국회에서도 5개 발의됐다. 보험회사라고 하면 '소비자 등치는 악덕기업'으로 여기는 소비자단체들도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에 대해서는 '보험사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닌 소비자의 편의를 위한 것'이라고 이례적으로 같은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이번에도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는 쉽지 않은 분위기라고 한다. 의료계의 반발이 여전히 거세서다.

얼마 전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공동 개최한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관련 입법 공청회에서 의료계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 했다. 의료계는 국민 상당수가 실손보험 보험금 청구의 불편을 호소하는 데 대해 "이미 청구 전산화를 다 시행하고 있어 입법화가 필요없다"고 주장했다. 실손보험 청구에 많은 의료기관이 자율적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청구 전산화를 강제하는 건 의료기관의 반감만 자극한다는 것이다. 의료계는 전산을 통한 청구량이 매년 수백%씩 증가하고 있다고도 했다.

실상은 어떨까. 지난해 전체 실손보험 보험금 청구(손해보험사 기준) 7944만4000건 중 전산청구가 이뤄진 건은 9만1000건으로 고작 0.11%였다. 나머지 7935만3000여건은 여전히 우편, 방문, 팩스 등 방법으로 종이서류를 발급받아 이뤄졌다.

의료기관은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관련, 올해 하반기에 민간 핀테크(금융기술) 기업을 중심으로 전국 의료기관을 커버하는 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 4년간 민간 핀테크 기업이 제휴를 체결한 곳은 전체 9만7000개 의료기관과 약국 중 약 145개 병원에 그친다.

의료계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반대하는 명분은 여러가지다. 우선 민간 보험에 대해 의료기관이 서류 전송 주체가 되는 자체가 부당하다고 한다. 실손보험은 민간 보험사가 파는 상품인데 의료기관이 왜 환자 대신 보험사에 서류 전송을 해줘야 하냐는 것이다. 현행 의료법 상에서도 요양기관은 환자가 요청하면 환자의 진료기록 사본을 환자가 지정하는 곳으로 즉시 전송해야 한다. 종이서류는 되지만 전자서류는 안 된다는 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로 비친다.


전자서류 전송과정에서 개인정보 유출도 우려한다. 환자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원하지 않는 정보까지 보험사로 무분별하게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험업계는 현재 의료기관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 전송하는 방식과 같이 전송하는 문서를 암호화하면 개인정보 누출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사실 환자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안전장치 문제는 필요할 경우 법률에 명확히 필요한 문서를 명기하고 문제가 발생할 경우 엄벌에 처하는 방식으로 규제하는 것이 가능하다.

가장 큰 벽은 심평원 위탁업무의 적법성이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의료계가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에 반대하는 실질적인 이유가 심평원이라고 본다. 이번 토론회에서도 의료계는 심평원을 전자서류 위탁기관으로 활용할 경우 비급여 진료내역에 대한 자료확보가 가능해져 결과적으로 정부가 비급여 통제를 강화할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실손보험금 지급액을 절감해 전체 의료비 절감이라는 정부의 목적 달성이 가능해지는데, 이는 소액 보험금 청구를 간편하도록 하려는 개정안 목적과 전혀 다른 정책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대한 다는 논리다.

의료계는 "이런 결과가 과연 국민, 특히 실손보험 가입자를 위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부가 천차만별인 비급여 진료를 통제해서 의료비가 절감되는 것이 국민, 특히 실손보험 가입자에게 나쁜 일인가. 보험금을 쉽게 청구할 수 있는데다 의료계의 주장처럼 보험료가 낮아질 수도 있는데 이게 실손보험 가입자를 위한 일이 아니라면 과연 누구를 위한 일인가. 의문이다.
머니투데이 금융부 차장 전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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