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사면셈법과 아모르파티[오동희의 思見]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 2021.05.17 06:00
이건희 삼성 회장 타계 후 경영을 승계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재수감된 지 4개월 가량 지나면서 재계와 정치권,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사면론이 거론되고 있다.

이 부회장이 국정농단 수사 및 재판 과정이었던 2017년 2월 17일 구속돼 1년 가량의 수감생활을 한 후 2018년 2월 5일 풀려났다가 파기환송심에서 2년 6월의 형이 최종 확정되면서 다시 수감된 것이 지난 1월 18일이다. 총 수감생활의 절반을 넘은 1년 4개월이 된 셈이다.

그 사이 전세계는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팬데믹이 지속되고 생존을 위한 백신 확보 전쟁과 자동차용 반도체 확보전이 가속화됐고, 이 부회장의 역할론이 대두되면서 사면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사면론이 나오면서 정치권이나 재계, 시민단체는 계산기 두드리기에 바쁘다. 정치권은 내년 대선 등을 염두에 두고 이 부회장 사면이 자신들에게 가져다 줄 유불리를 계산하느라 분주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취임 4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사면질의 답변에서 "반도체의 경쟁력과 사법정의, 형평성, 국민 공감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대통령의 권능인 사면 시행의 부담을 피해가는 모양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의 사면카드보다는 정치적 부담이 적은 법무부의 '가석방' 제도 개선 카드를 꺼내들고 손익계산을 하고 있다. 일부의 비난을 무릎 쓰고 정치적 결단을 하겠다는 결연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재계는 재계대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일사분란하게 이 부회장 사면 이슈를 이끄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물밑에선 경제단체의 헤게모니 다툼이 치열하다. 이 부회장의 사면 이슈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재계의 맏형 자리를 차지하려는 경제단체들의 알력이 그것이다.

일부 진보 시민단체들은 경제논리와 법치주의를 바꾸려는 시도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이 부회장의 수감으로 잠시 '사냥 타깃'을 잃었던 이들은 사면론이 불거지자 때를 만난 듯 사면반대에 총 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렇듯 이미 그를 촛불혁명의 디딤돌로 한번 썼던 정치권이 다시 표밭갈이용으로 재사용할지, 시민단체의 사냥감으로 둘지, 경제전쟁의 선봉장으로 쓸지 고민하고 있다.


사실 이 부회장의 사면을 요구하는 사람도, 그를 가두라는 사람도 번듯하게 포장된 각자의 정의 위에 자신들의 이익을 올려놓고 경쟁하고 있을 뿐이다. 그 속에 이 부회장은 없다. 수감된 이 부회장을 제외하면 정치권도 경제계도 법조계도 모두 현상황에 큰 불만이 없을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이 부회장은 자신이 겪은 기업가로서의 고난과 역경을 자녀들에게는 물려주지 않기 위해 지난해 자녀들에게 경영권승계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그 스스로는 글로벌 경제 전쟁의 선봉장으로서의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했다.

그에게는 자신의 길을 선택하기도 전에 '기업가의 길'이 주어졌다. 기업가 가문에서 태어나 힘들어도 그 길을 갈 수밖에 없었고 지금 영어의 몸이 됐다.

사면과 관련해 이 부회장 개인으로 보면 더 이상 논란의 중심에 서지 않기 위해 1년여 남은 수형기간 그 어떤 혜택도 받지 않고 만기출소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얘기들도 있다. 이 부회장도 평생 따라 다닐 '주홍글씨'보다 그게 마음이 편할 수 있다.

하지만 엄중한 글로벌 경제상황에서 그것은 그에게 지어진 운명의 길을 피하는 사치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운명에 맞서는 '아모르파티'(Amor fati :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태도)다.

니체 철학의 핵심인 '아모르파티'는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고난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좌절이나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이를 극복하고 받아들이는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말한다.

그에게 기업가의 길은 받아들이고 극복해야 하는 아모르파티의 현장이다. 우리 사회는 그가 주어진 운명에 맞설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줘야 한다. 이 부회장도 정치적 영수증을 든 사람들의 손익계산서 셈법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만의 아모르파티를 가지고 그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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