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시간, 꼬인 실타래의 묘수 찾기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 2021.05.14 05:17

[우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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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24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반도체· 희토류 ·배터리 등 핵심 품목의 공급망을 확보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을 하기 전에 반도체 칩을 들고 연설을 하고 있다. /AFP=뉴스1

"공식 입장은 '정해진 게 없다', 속내는 아마 '충분히 검토할 수 있도록 좀 내버려뒀으면 좋겠다' 정도 아닐까요."

13일 삼성전자의 미국 현지 반도체 투자를 두고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반도체업계 관계자의 분석은 삼성의 고민을 고스란히 대변했다. 그의 분석대로 최근 미국 투자 계획은 삼성 내부에서 금기어 중 하나다. 미국 현지 투자안이 마치 한미동맹의 상징처럼 흘러가는 분위기 때문이다. 기업이 최적의 투자 전략을 고민하고 실행하기에 버거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삼성의 미국 현지 반도체 공장 신·증설 문제는 사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공식화하기 전부터 삼성 내부에서 먼저 고민했던 사안이다. 삼성 미국법인이 텍사스주 오스틴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생산라인 인근 부지를 매입했다는 얘기가 지난해부터 돌았다. 당시에 이미 삼성이 2021년 하반기에 미국 투자를 공식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스텝'이 꼬인 것은 바이든 행정부가 올 2월 반도체 패권경쟁을 표면화하면서부터였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땡큐 삼성" 트윗 못지않은 바이든 정부의 압박이 이어지면서 미국 현지 반도체 투자안은 더 이상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게 됐다. 삼성이 지난달 백악관이 호출한 글로벌 반도체 대책회의에 참석하기 전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 등 청와대 핵심라인과 비공개로 회동한 게 이런 배경에서다.

바이든 정부가 집권 초기부터 반도체에 매달리는 것은 반도체 패권을 확보하지 않고선 세계 1위의 리더십을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중국과의 'G2' 경쟁에서 반도체 굴기(일어섬)를 내세운 중국몽을 견제하지 않으면 1등 국가의 타이틀을 중국에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백악관을 뒤덮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이후 틈날 때마다 "반도체는 21세기 편자의 못"이라고 말했다. 파운드리 시장 1위인 대만 TSMC와 함께 메모리 시장 1위, 파운드리 시장 2위의 삼성은 백악관으로선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최적의 '대장간'인 셈이다.


삼성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업 전략이 국제정치 이슈로 확대되면서 운신의 폭이 대폭 좁아졌기 때문이다. 눈치를 봐야 할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당장 미국 현지 지방정부와 진행하던 투자 혜택 협상부터 이전과는 기류가 확연히 달라졌다는 후문이다. '밀당'(밀고 당기기)으로 최대한 혜택을 얻어내야 할 문제가 '안 하면 안 될 듯한' 문제가 됐다.

TSMC와 인텔의 미국 현지 투자 계획 발표이 잇따르면서 일각에서는 그나마 삼성이니까 지금껏 버텼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오는 21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 하루 전 미국 상무부가 주최하는 반도체 대책 2차 회의에 삼성이 다시 불려간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엔 미국 현지 투자 계획 발표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글로벌시장을 무대로 누비는 삼성에 미국시장은 물론, 국제질서를 좌우하는 바이든 정부와의 관계 설정은 피할 수 없는 숙제다. 기업이 외부의 난관과 맞부딪혀 최선의 방책을 찾아가는 과정을 전쟁에 비유한다면 삼성은 지금 전장의 포화 한가운데를 지나는 중이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그동안 반도체 산업은 대기업이 알아서 할 분야라고 거리를 뒀던 우리 정부가 작금의 글로벌 반도체 대전을 목도한 뒤 참전에 나섰다는 점이다. 오랜만의 민관 합동 작전이 꼬여버린 투자 계획의 실타래를 푸는 단초가 되길 바란다. 1나노를 다투는 반도체 산업에서 1분 1초도 너무나 아쉬운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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