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네"[우보세]

머니투데이 세종=민동훈 기자 | 2021.04.2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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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황기선 기자 =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4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반도체공동연구소에서 열린 '반도체 인력양성 간담회'에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1.4.14/뉴스1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네." 청운의 꿈을 안고 행정고시를 준비하던 서울대 경제학과 82학번 청년 성윤모는 매일 밤 도서관을 나서며 이렇게 혼잣말을 되뇌였다. 순박하지만 똑똑하고 성실하던 이 청년은 훗날 문재인 정부의 2번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된다.

공직 입문 후 연일 야근을 하면서도 행복했다. 5급 사무관으로 처음 정책을 기획하며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과 민간기업인들과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는게 가장 좋았다고 했다.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하고 국가의 백년대계를 그리는 보람이 컸다. 동료들은 그를 '산업부 3대 천재'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 이상의 노력과 열정, 성실함이 오늘의 성 장관을 있게 했다. 그는 천상 공무원이다. 공직생활 중 한순간도 다른 곳에 기웃대지 않았다. 지난 21대 총선에 출마하라는 외부의 부추김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뚜벅뚜벅 그렇게 34년을 걸었다.

어찌보면 성 장관의 공직생활 최대 위기는 장관 시절일지도 모른다. 처음엔 순탄했다. 집권 2년차 문재인 정부에 대한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수소경제 로드맵을 내놓고 제조업 르네상스 청사진을 그렸다. 핵심 국정과제인 혁신성장을 본궤도에 올리기 위한 기반 마련 작업을 착착 진행했다.

그러다 2019년 7월 일본의 수출규제 사태가 터졌다. 일본은 자신들이 수출하지 않으면 한국이 꼼짝 못할 급소를 노렸다. 하지만 성 장관은 허둥대지 않았다. 일찌감치 국내 소재·부품·장비 밸류체인의 문제점을 절감하고 대책을 준비하고 있던 터였다. 2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일본이 규제한 3대 품목 가운데 단 한건의 차질도 빚어지지 않았다.

코로나19(COVID-19)까지 겹쳤다. 수출은 곤두박질쳤고 방역 필수품인 마스크 조달이 문제가 생기면서 전 국민이 마스크를 찾아 헤맸다. 성 장관은 열일 제쳐두고 마스크 국내 생산을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산업부 장관이 마스크 장관이냐'는 비아냥도 들렸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았다. 전세계를 뒤져 방역마스크 원료인 MB(멜트블로운) 필터를 들여왔고 국산 MB필터 생산을 위한 강도높은 정책지원도 폈다. 전 세계가 극찬한 'K방역'의 시작점이었다.


최근 한국경제가 강한 회복세를 보일 수 있었던 건 임기중 끊김없이 내놓은 산업정책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코로나19로 전세계 경제가 멈춰설 때도 그는 '수소경제 생태계 경쟁력 강화 방안'을 내놨다. 당장 먹고살기가 급한시기에 '수소가 웬말이냐'는 말이 나왔지만 국가경제의 미래를 위해선 미룰 수 없었다. '현대자동차만 위한 정책이냐'던 비웃음은 이제 산업전반의 새로운 먹거리로 인정받으며 각계의 환호로 돌아온다. 포스코, SK그룹 등 대기업들의 10년내 수소투자 계획만 43조원이 넘는다. 실체가 없는 곳에 수십조원의 돈이 몰릴 이유가 없다.
덕분에 한국은 유사 이래 처음으로 '글로벌 퍼스트 무버'가 될 기회를 잡았다. 산업 강국 독일의 페터 알트마이어 경제에너지부 장관은 2019년말 성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수소는 한국이 세계 최고라고 하더라"며 극찬했다. 한국판뉴딜 정책, 소부장 2.0 전략, 미래차 확산 로드맵 등 산업 진흥 노력도 이어졌다. 이는 코로나19 방역과 경제가 함께 갈 수 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됐다.

이변이 없다면 다음달 후임자에게 바통이 넘어간다. 끝내지 못한 숙제가 한가득이다. 문승욱 산업부 장관 후보자의 어깨가 무겁다. 당장 한국판뉴딜의 차질없는 이행을 독려해야 한다. 이제 막 싹이 튼 수소경제가 제대로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도 필수다. 특히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방안 마련이야 말로 절대로 늦어져서는 안될 과제다. 전세계가 겪고 있는 자동차용 반도체 수급 위기에서 보여지듯 산업의 대전환 과정을 위한 체계적인 대비책도 준비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 유럽 등 전세계가 무한경쟁의 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다. 자칫 한발 뒤쳐지면 영영 따라잡을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문 후보자는 1년짜리 순장조가 아니다. 흔들리지 않는 산업강국의 초석을 더욱 굳건히 다져가야 한다. 전임자 못지 않은 노력과 열정, 성실함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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