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때리던 '그놈' 없는 교실…아이는 비로소 웃었다[남기자의 체헐리즘]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 2021.04.24 08:00

학교폭력 피해 아이들 상처 아물게 하는, 대전 '해맑음센터'서 보낸 하루…"새벽마다 악몽 꾸던 아이들이 변해갔다"

편집자주 |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안 보였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학교 폭력 피해를 입은 아이들이 갈 곳이 없었다. 학교에선 가해자가 오히려 어깨를 펴고 다니고, 피해자는 그만두는 일이 잦았다. 수업을 들으면서 치유하게 해달라고 피해자 부모들이 오랜 시간 싸웠다. 그리 힘들게 처음 만들어진 곳이, 대전에 있는 해맑음센터였다. /사진=남형도 기자
한바탕 뛰고 나니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서른아홉 아저씨가, 강당서 10대 아이들과 게임하려니 '헉헉', '끙끙', 그럴 수밖에. 발그레한 얼굴에 거친 숨소리, 둘러보니 그래도 다들 몸이 많이 풀린 모양이었다. 그 열기에 어색하고 쑥스럽던 공기도 데워질 때쯤, 각자 마음을 들여다보는 대화가 시작됐다.

반장인 이끔이(가명)가 카드를 들고 친구들에게 보여줬다. 거기엔 질문이 적혀 있었다. 그에 대한 대답을 들려주는 거였다. 동그랗게 선 친구들이, 이끔이의 대답을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웠다.

"당신도 모르게 잘하는 말이 있다면?(이게 질문) 음, '미안해'에요. 주로 어떤 상황에서 하냐면요. 싸웠을 때요. 그냥 막 미안한 감정이 들어서 그래요."

어쩐지 다 제 잘못인 것 같아 미안하단 말을 자주 건넸을 여린 아이. 어렵게 설명을 마치고 쑥스러워하는 이끔이에게, 선생님도 친구들도 큰 박수를 보냈다. "잘 들었어", "잘했어", "괜찮아", 그 외에 더 필요한 말은 없었다. 그제야 반응을 살피던 이끔이 표정도 다소 밝아졌다.

학교 폭력(이하 학폭) 피해를 입은, 그 많은 아이들은 상처를 대체 어찌 치유하고 있을까. 그게 궁금해서 그리 함께 수업을 듣고 있었다.

대전에 있는 해맑음센터, 학폭 피해 학생들만 모인 곳. 이곳이 필요한 이유는 이랬다. 학폭 가해자가 떵떵거리며 학교에 나올 때, 피해 학생은 두려워 학교를 안 나가다 유급당하거나(결석 60일 이상) 결국 그만두는 일이 잦았다. 참 억울하게도. 그러니 피해 학생들이 수업을 들으면서도 힐링할 곳이 절실했다. 가해자 면상(面相)을 안 보고 안심할 수 있는.

그러니 짧게는 2주, 길게는 1년까지 다닐 수 있다. 피가 멎고 새 살이 돋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니까. 2013년 7월부터 시작한 해맑음에 '센터'란 이름을 붙인 건, 피해 학생들이 '학교'란 단어에도 겁을 먹어서였다. 그 마음을 미술, 음악, 원예, 놀이로 치유하고, 심리상담도 해준다. 기본 교과(국영수과 등)도 함께 가르친다. 비용은 전액 무료고, 전국 어디서나 다 올 수 있다.



밤새 악몽을 꿔도…옆엔 든든한 '쌤'이


해맑음센터에 들어가며 찍은 전경. 파랗고 노란 색색의 페인트가 화사했다.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직접 칠했단다./사진=남형도 기자
조용하고 편안한 동네에 있는 소담한 1층짜리 학교. 푸르른 봄빛 나무들이 둘러싼 낮은 담벼락. 꼬릴 흔들고 짖는 강아지 두 마리(단비랑 비단이). 바람을 감싸 안고 돌아가던 색색의 바람개비들. 13일 아침 10시, 해맑음센터에 도착해 마주한 첫인상이 그랬다. 지어진 지 70년이 넘은 초등학교가 있었고, 폐교돼 안 쓰던 건물을 보수해 쓴 거라고 했다.

노오란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하늘에 닿은 듯, 푸른 빛 페인트로 칠한 출입문이 반겼다. 서글서글하고 선한 표정의 차용복 부장 선생님이 마중을 나왔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하루 신입생이 된단 마음으로, 해맑음센터에 그리 첫발을 떼었다.

24시간 함께하는 기숙형 학교, 월요일-금요일은 이곳에서 보내고, 주말엔 집으로 돌아간다. 밤에도 기숙사에서 함께 자는 당직 선생님이 있다. 안 보이는 마음 상처가, 아픈 신체 증상으로 나타날 때가 많아서다. 차 선생님은 "새벽 두 시에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응급실에 갔더니, 아무 이상이 없었다"고 했다. 꿈에서 가해자가 나올 때도 있단다. 무서워도 괜찮다. 든든한 쌤(선생님)이 곁에 있으니.

처음 센터에 들어왔으니 모르는 게 많았다. 알아가며 친해지는 'Hi, 해맑음' 시간을 가졌다. 다정한 상담팀 이선미 선생님이 차근차근 알려줬다. 개학은 3월 22일에 했고, 2주마다 학생이 들어온단다. 학교 폭력이 특정 기간만 생기는 게 아니니. 통상 3월엔 피해 학생들이 적다가, 4~5월부터 많아진다. 정원은 총 30명, 지금은 6명이 들어와 있다고 했다.

센터 규칙도 들었다. 대개 다른 학교와 비슷했는데, 핸드폰은 처음 들어올 때 걷는단다. 이유가 있었다. 차 선생님은 "괴롭혔던 애들한테도 연락이 오고, 자꾸 신경을 써서 핸드폰을 제출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대신 매일 30분 정도 센터 전화를 쓸 수 있다고.



여섯 명의 반 친구들


해맑음센터 아이들이 수업을 듣는 교실 모습.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칸막이가 다 되어 있었다. 칸막이 위쪽엔 BTS 글자도 붙어 있고,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도 있었다. 10대들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이 선생님을 따라 아이들이 있는 교실로 갔다. '남형도'라 쓰인 연두색 명찰도 목에 걸었다. 앞문으로 들어가니 묘하게 '두근두근'. 시선이 일제히 내게 쏠려 쑥스러웠다. "안녕하세요, 오늘 하루 함께 지낼 남형도라고 해요. 반가워요." 어색할 텐데도 열심히 손뼉 쳐주는 아이들이 고마웠다.

반 친구들의 자세한 얘긴 몰랐다. 학교 폭력을 겪었다는 것 외에는. 당연히 많이 힘들었으리라. 전혀 묻지 않을 생각이었다. 떠올리면 또 힘들 수 있으니. 취재보단 너희들 마음을 보호하는 게 더 중요했다. 여기서 치유하는 중이니까. 그저 함께하며 바라보고 느낀 걸 기록하려 했다.

사진 촬영도 조심스러웠다. 민감해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선생님과 바깥에 나갔을 때, 낯선 이의 핸드폰이 자기에게 향한 것 같다며, 골목으로 숨는 아이가 있었단다. 사이버 폭력을 겪은 아이였다. 두려웠으리라.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봤다. '섬세하게 잘 전할게.' 홀로, 속으로 그리 다짐했다.

칠판에 적힌 아이들 이름을 하나씩 읽어봤다. 겸손이, 끈기, 열림이, 고맙이, 지혜, 이끔이까지(전부 가명인데, 아이들이 자신의 강점이라 꼽은 것들이다). 그리고 뒤편에 있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급히 말을 걸지 않았다. 천천히 가까워지는 게 좋아서.

대신 쉬는 시간에 틈틈이 교실 창문에 붙은 자기소개를 보며 친구들을 알아갔다. 동물을 좋아하고 밝은 고맙이, 영화를 좋아하며 고민을 잘 들어준다는 열림이, 차분한 게 장점이라는 지혜, 운동을 좋아하고 키가 큰 끈기, 태권도를 잘한다는 이끔이, 트로트를 잘 부른다는 겸손이까지.

조용히 공부한 뒤 아이들을 찬찬히 보니, 어쩐지 더 반갑고 고운 얼굴들, 그런 마음이 들었다.



콩나물 수업, "목적지를 잃은 게 아니야"


콩나물을 키우기 위한 키트. 조그만 플라스틱 바가지로 물을 계속 부어줘야 한다고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첫 수업은 단편 영화 <콩나물>을 보며 시작했다. 생태 체험 시간이었다.

20분 분량의 영화 주인공은 7살 보리. 여름날, 제사 준비로 바쁜 엄마 대신, 딸 아이가 콩나물 심부름을 갔다. 공사로 막힌 길을 돌아가며 기나긴 여정이 시작된다. 낯선 아저씨를 만나 두려워하기도 하고, 놀이터에서 놀기도 하고, 할머니를 따라갔다가 무릎 상처를 치료받기도 하고, 어른들에게 막걸리 한 잔을 얻어 마시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겨우 시장에 도착한 보리는, 콩나물을 사러 왔단 걸 까먹는다.

영화가 끝나고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끝까지 보니 콩나물이 중요하지 않지? 목적지를 잃어버렸다 느낄 수 있지만, 모두가 목적지에 바로 가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거야. 콩나물을 사러 가는 과정들, 그걸로 우리가 성장할 수 있고 많은 걸 느끼는 거야."

이미 10대와 20대를 지나 30대의 끝자락에서 충분히 알게 된, 삶의 중요한 배움, 결국은 다 과정이란 것. 그걸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마음으로 전하고 있었다. 어쩌면 돌아가는 것 같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고, 그 안에서 무언가 배우고 자라는 거라고. 값진 콩나물 수업이었다.

그리고 살면서 도움을 받았던, 기억에 남는 이들을 서로 얘기했다. 겸손이는 "중학교 때 상담 선생님이 기억난다"고 했다. 해맑음센터에 올 수 있게 도와줬다고. 이끔이는 "엄청 힘들 때, 얘길 들어줬던 엄마"라고 했다. 선생님은 맞장구를 치며 공감해줬다. "진짜 그래. 이야기만 들어줘도 마음이 풀리지."

실제 콩나물 재배도 해보기로 했다. 검은색 통에, 노란색 콩을 가득 넣고 물을 뿌려주면 되는 거였다. 선생님은 "7~8일이면 다 자라는데, 생각나는 콩나물 음식 있어?"라고 물었다. 그러자 겸손이가 이렇게 답했다. "콩나물 곱창이요!" 그러자 교실이 웃음바다가 됐다.



그저 이런 아이들일 뿐인데


비누는 처음 만들어봤다. 미키 마우스 모양 비누와 장미 모양 비누. 나름 잘 만든 것 같아요. 향도 좋아요./사진=뿌듯한 남형도 기자
이어 비누를 만드는 체험 시간. 활발히 또 자유로이, 교실을 오가며 어떻게 만드는지 골똘히 배웠다. 비누 틀을 뭘로 할까 고민하는데, 고맙이가 "이게 예뻐요"하며 미키마우스 틀을 골라줬다. 고맙다며 웃었고, 조금 친해진 것 같아 좋았다.

아이들은 분주히 비누 색깔(분말 가루)을 고르고, 글리세린을 넣고, 포도씨유도 넣고, 로즈마리며 페퍼민트 향도 첨가하고, 신기하고 재밌는 듯 열심이었다. 어느새 교실은 왁자지껄 활기가 넘쳤다. 겸손이는 글쎄 흰 색깔을 먼저 넣고, 그 위에 다른 색깔을 입혀 두 가지 톤으로 만드는 게 아닌가(능력자).

냄새를 빼려 활짝 열린 창밖을 보다가, 교실을 널찍이 천천히 둘러보다가, 오래 잊고 살았던 교실 풍경이 겹쳐 상념에 잠겼다. "쌤, 이거 어떻게 해요?"하고 허겁지겁 외치는 소리. "짬뽕 국물 색깔이야", "아니야"라며 서로 토닥거리며 장난치는 아이들. 그러면서도 부단히 열중하는 눈망울들. "다 만들면 쌤한테 선물할게요"라는 말 한마디에 담긴 보드라운 마음들.

피해 학생이라 조용하고 우울할 거라 여겼던 편견들. 아니, 사실은 그저 이렇게 밝고 순수한 아이들일 뿐이었다. 불편하게 하는 가해자가 없고, 오롯이 내 맘을 알아주는 친구와 선생님이 있고, 잘하는 걸 맘껏 펼칠 이곳에서는. 그걸 어른들이 섬세히 헤아리지 않았을 뿐이라고.

그런 여러 생각에, 시끌벅적한 교실 소리가 정말 듣기 좋았다. 비가 온 뒤라 흐렸던 날씨도, 어느새 쨍하니 맑아져 있었다.



아이들의 벗, 해맑음 동물들


단비(위쪽 리트리버)와 비단이(아래쪽 진돗개)를 산책시키는 지혜와 이끔이./사진=남형도 기자
소중한 점심시간. 배부름터(식당 이름)에서 맛난 점심을 먹었다. 김치전과 된장국, 연근 조림, 우유가 나왔다. 이성을 잃고 식판을 순식간에 다 비웠다. 한 그릇을 더 먹으려다 눈치껏 멈췄다.

쉬면서 해맑음센터에 있는 동물 친구들을 만났다. 병아리, 닭, 어슬렁거리는 자유로운 영혼의 멋진 고양이 코코(5살), 기운 넘치는 리트리버 단비(7살)와 늠름한 진돗개 비단이(7살)까지. 아이들의 좋은 친구란다. 차 선생님은 "예전에 충격으로 인해 말을 안 하던 아이가 있었는데, 쉬는 시간마다 개들을 쓰다듬었다"고 했다. 말없이 위로해주는 친구였으리라.

단비, 비단이 콧바람을 쐬어주러 산책을 나섰다. 지혜와 이끔이도 함께 갔다. 아이들에겐 아르바이트인데, 일정 시간을 채우면 '써니(센터서만 쓰는 화폐, 선생님 얼굴 그려져 있음 주의)'를 준단다. 써니를 모으면 매주 목요일 열리는 조그만 마트서 간식을 먹을 수도 있고, 핸드폰 30분 이용권 등으로 쓸 수도 있다고. 가장 인기가 좋은 건 선생님과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는, 데이트권(3만 써니)이란다.
코코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센터 어디든 다닌다. 표정 조금만 펴줄래 코코야./사진=남형도 기자
단비 목줄을 잡으니 똥꼬발랄하게 뛰쳐나갔다. 단비 실컷 뛰어보라고 운동장을 내질렀더니 숨이 턱턱 막혔다. 이를 보며 아이들이 깔깔 웃었다. 비단이도 뒤따라 산책하고, 단비는 풀을 뜯어 먹다가 교문으로 자꾸 나가려고 했다. 지혜는 "얘네 가끔씩 구멍으로 탈출하는데 조심해야 해요"라고 조언해줬다. 왕 발자국을 센터 곳곳에 남긴 단비는, 울타리 안으로 돌아와 물을 첨벙첨벙 많이도 마셨다(스트레스 풀렸지?).




댄스 심리 코칭, 지금 내 마음을 안다는 것



3교시는 댄스심리코칭 수업. 선생님 두 분과 스트레칭하며 몸을 풀고,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좌우로 웨이브를 할 땐 차마 거울 속 내 모습을 보지 못했다(이걸 뒤에서 본 끈기는 후에 "기자님과 함께 춤춰서 너무 신기했다"고 했다, 신기한 웨이브였니). 나처럼 다들 뻣뻣했으나, 열이 오르니 한결 동작이 부드러워졌다. 몸을 쓰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이제 본격적인 수업 시작. A팀과 B팀으로 나눠, 게임을 해서 점수를 많이 낸 팀이 이긴다고 했다. 서강준, 노홍철, 은지원, 배로나(펜트하우스 오윤희 딸 이름, 부활, TMI)처럼 각자 별명을 지어야 한단다. 열림이한테 "제 별명도 하나 지어줘요"라고 했더니 칠판에 '차은우'라고 적었다. 옆에 있던 이끔이가 "차은우?"라며 탄식했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게임이었다. 농구공을 통통 튀긴 뒤, 오늘 내 감정을 표현하는 카드 세 장을 가져오는 거였다. 난 '망설이는', '재미있는', '열중하는' 세 개를 뽑았다. 그리고 이렇게 설명했다. "오늘 처음 와서 망설였는데, 친구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재밌었고요. 게임하니까 이기고 싶어서 열중하게 돼요."
그리고 다른 친구들 얘기도 이어졌다.

이끔이 : "쌤들한테 고마웠고, 슬픈 건 오늘 기분이 좀 안 좋았는데 수업하며 다 풀어졌어요. 안심이 되는 건 이제 마음이 다스려져서요."

지혜 : "기자님 오셔서 조심스러웠는데, 같이 산책하다 보니까 편안한 마음을 느끼게 됐어요. 많이 움직이니 생기가 돌고요."

열림이 : "뿌듯한 건 의욕이 없었는데 운동을 하니까 뭔가 뿌듯하고요. 의기소침한 건 제가 낯을 늘 가려서요."

얘기가 끝날 때마다 '짝짝', 열렬히 박수가 쏟아졌다.



우린 다 '강점'이 있어요


각자의 강점을 춤으로 표현하는 댄스 심리 코칭 시간, 두 선생님이 공연하고 있다. 연말엔 아이들 모두 다 같이, 자신의 강점을 춤으로 공연까지 한단다(멋져). 지난해엔 환불원정대 춤까지 췄다고./사진=박수치는 몸치 남형도 기자
훌라후프를 하고, 고무공을 다리에 끼며 열심히 움직이는 다양한 게임들. 실은 그 안엔, 웅크린 아이들 마음을 꺼내어 주고 싶은 선생님 맘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게 다 보였다. 그리고 선생님은 아이들이 말할 때마다 귀 기울여주고 맞장구를 쳐줬다. 여기선 정답은 없고, 따스한 공감만 있었다.

겸손이는 최근 들은 칭찬이 뭐냐는 물음에 "착하다는 말"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칭찬을 들었을 땐 기분이 나빴다고 했다. 이유가 이랬다. "착하게 살면 제가 피곤해요. 나쁘게 살래요." 그러더니 아이는 다시 대답을 고쳤다. "아, 나쁘게는 말고 냉정하게요."

강점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시간은 참 좋았다. 우린 누구나 강점 하나씩은 있으니까.

'겸손'을 꼽은 겸손이는 "자랑을 숨길 때가 많아서"라고 했고, '감사'가 강점이라던 고맙이는 "감사를 잘하고 좋아해요"라며 활짝 웃었다. 끈기는 "좋아하는 운동, 복싱을 할 때 끈기 있게 하는 편"이라고 했다. 열림이는 '개방성'을 고르며 "평소 말을 잘 안 걸지만, 다른 사람이 다가오면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하려고요"라고 다짐했다. 지혜는 "제가 고민이나 생각이 많은데, 그러니 신중하게 좋은 선택을 해서요"라며 '지혜'가 강점이라 했다.

난 '낙관성'을 골랐다. 내 강점이기도 했지만, 실은 아이들한테 해주고 싶었던 얘기가 있었다.

"살면서 힘들고 우울한 일이 많았어요. 그때마다 별수 없이 힘들고 우울해했고요. 그래도 언젠가 잘 될 거란 생각은 잊지 않았어요. 그리고 살면서 지나고 보니, 실제 그랬던 것 같아요."



해 질 녘, 꿈은 크게 떠오르고


펭수 그림을 그리는 이끔이(왼쪽)와 디즈니 그림을 그리는 고맙이(오른쪽)./사진=남형도 기자
마지막 영어 수업까지 다 끝나고, 저녁 먹을 시간이 됐다. 배부름터 앞은 탁구 대결 얘기로 떠들썩했다. 지혜가 탁구를 제일 잘 친단 말에, 열림이도 "저도 잘 쳐요!"하며 자랑스레 말했다. 그러자 끈기가 장난치며 "거짓말이에요. 왼손으로 쳐도 제가 이겨요"라고 했다. 그러나 바로 "농담이야, 농담. 삐지면 안 돼"하며 풀어주던, 서로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착한 아이들.

저녁밥은 여전히 맛있었다. 창밖은 어둑어둑해지고, 농구대 앞으론 초록빛 나무가 든든히 버티고 서 있었다. 식당 안엔 잔잔한 발라드 음악이 흘러나왔다. 아이유의 <봄 다시 봄>이었다. 가사가 좋았다. '봄, 그대가 내게 봄이 되어 왔나 봐. 아무 말 없이 그 품을 내어주던 지난날처럼 더 잘 지내라는 다정한 인사인가 봐.' 치유하는 이곳과 잘 어울리던 안온한 가사랄까.
겸손이(오른쪽)는 트로트 가수라 불러도 될만큼, 노래 실력이 장난이 아녔다. 제일 좋아하는 곡은 울엄마(가수 진성)라고 했다. 옆에서 장단 맞춰주는 조정실 센터장(왼쪽). 센터 선생님들은 전부 친구 같다./사진=남형도 기자
저녁 시간엔 자율 활동을 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재능을 찾아주는 시간. 강당에서 노래가 들리기에 들어갔더니, 겸손이가 트로트를 부르고 있었다(정말 잘 불렀다!). "모십니다아~ 모십니다아~ 춤추시고, 풀어주시고~ 신나게 한 판 놀아봅시다아~" 노래가 끝난 뒤 환호성을 지르며 겸손이에게 "음원 틀어놓은줄 알았어요. 대박 잘하네요"라고 칭찬했다. 겸손이는 쑥스러워하며 감사하다고 했다.

운동을 좋아하는 끈기는 선생님과 탁구를, 이끔이와 고맙이는 그림을 그렸다. 재능을 찾고, 적성을 발견하는 시간. 그건 꿈이 되기도 한다. 강아지를 보다 애견학과에 가는 친구도 있고, 네일아트를 하다 미용학과에 가는 아이도 있다. 사회복지학과에 가는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제가 곧 돌아올테니 얼른 자리 비워주세요(해맑음센터 선생님이 되고 싶단 꿈)"라며 대견한 협박(?)을 한다.

조정실 센터장은 "친구가 없는 게 고통이었던 아이들에게 친구가 생기는 것도 좋지만, 가장 필요한 게 자기 재능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 거기에 몰입하고 빠지면, 친구에 대한 외로움조차 없어지더라고. 자기도 놀란다고 했다. '내가 이런 걸 할 수 있구나' 싶어서. 그는 "이런 아이들을 보니 얼마나 행복하겠어요"라며 활짝 웃었다. 정말 행복해보여 좋았다.



해맑음센터는, 전국에 고작 한 곳


학교폭력 피해가족들의 집회 현장. 이들은 오랜 시간 피나게 외쳐야 했다. 피부에 와닿는 실질적인 대책을 세워달라고. 정부 역할이 그건데, 왜 그리 힘든 거였을까./사진=뉴시스
그러나 해맑음센터가 자리 잡기까지, 힘든 시간도 참 많았다. 피해당하는 것도 억울한데, 피해 학생이 가해자 때문에 학교까지 그만둬야 했다. 게다가 아이들 치유는, 오롯이 개인 몫이었다. 아이들은 아이들 속에서 커야 하는데, 병원 말곤 갈 곳이 없었다. 실제 학교 폭력 피해자 부모인 조 센터장은, 같은 아픔을 가진 이들과 6년간 거리에서 캠페인을 했다. 국정감사 땐 머리도 못 감고, 밤새 신문지를 덮고 자며 국회의원들에게 호소했다.

2011년, 대구서 한 학생이 학교폭력 피해로 숨졌다. 이를 계기로 피해 학생들을 위한 시설이 처음 마련됐다. 그게 해맑음센터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매우 열악했다. 일반 회계도 아닌, 특별 교부금으로 예산을 편성해 불안정했다. 그것도 17개 시도 교육청 예산을 일일이 끌어모아야 했다. 학교 평균 예산의 3분의 1 수준을 던져주고, 그걸로 시설 공사, 운영비, 인건비까지 다 쓰라고 했단다. 조 센터장과 차 선생님, 다른 선생님들이 새벽부터 밤까지 지게로 나르고, 페인트를 얼룩덜룩 칠해가며 기틀을 잡아갔다.

심지어 5~6년 전엔 대전 교육청서 '국제학교'를 세운다며 해맑음센터를 허물겠단 얘기까지 돌았다. 동네 어르신들이 국회의원실에 쫓아가 "해맑음은 우리가 지킨다"고 했다. 해맑음 학생들과 어르신들이 평소 유대 관계가 좋아서였다. 가서 염색과 파마도 해드리고, 밤에 위험하다고 야광 조끼도 드리고, 영정 사진도 직접 찍어드렸다고. 조 센터장은 "동네 희망이고 꿈이 된 것"이라고 했다. 그 덕분에 계획은 없던 일이 됐다.
교우 관계와 부모님과 불화 문제로 등교를 거부했던 지완이는, 해맑음센터에 온 뒤 마음이 이렇게나 성장했다. 실제 검사한 뒤 수치도 이렇게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사진=해맑음센터 사례집 3
그러나 해맑음센터는 여전히 전국에 한 곳밖에 없다. 예산이 있어도, 교육부에선 "지방자치 시대라,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서 신청해야 만들 수 있다"는 말만 한단다. 그러니 경남, 부산, 강원도 등 멀리서 대전까지 와야 한다. 기숙형 학교여도 주말엔 집에 돌아가는데, 월요일에 다시 오려면 새벽 5시에 출발해야 한단다. 아이들이 통학할 수 있는 치유기관을 전국 시도마다 하나씩 만들겠다고 했지만, 약속은 지금껏 지켜지지 않았다.



"산속에 천사가 숨어 있었다"는 아이 말에, 눈물바다


해맑음센터서 학교로 돌아간 뒤 선생님께 연락하는 아이들. 그 행복이 가장 크다고 했다./사진=해맑음센터
그럼에도 조 센터장, 차 선생님,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 헌신으로 피해 학생들이 참 많이 변했다.

특히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위해 물불을 안 가린단다. 한 번은 가해자에게 끌려가 협박당하고 감금당한 아이(해맑음센터에 다녔던)가 있었다. 아이는 틈을 타 선생님들에게 몰래 연락을 했다. 작전을 짜서 아이를 구출해 왔다. 한 종교 집단에서 아이를 이용해 후원 모금을 한 적도 있었다. 아이가 떠나고 싶어도 못하게 했다. 선생님들이 가서 막 싸워서, 아이를 센터에 데리고 왔다. 후원자들을 연결해주고, 그룹홈에 보냈다. 아이는 나중에 대학에 가서 사회복지를 전공했단다.

처음 들어올 때만 해도 상처를 받고, 사람에 대한 신뢰가 없던 아이들이 변해간다. 조 센터장은 "얼굴에 빛이 없고, 동공이 멍한 상태로 들어온다"고 했다. 선생님에 대한 실망,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 못 어울린단 생각으로 인한 자존감이 떨어져서다. 하루, 이틀이 지나며 고개가 펴진단다. 서로에 대한 그리움이 있는 아이들이, 말을 걸어주고 대답해준다. 그러니 살아나는 게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그대로 인정해준다. 그러니 가까워질 수 있다. 복도서 만나도 스스럼없이, 아이들과 춤추고 노래하는 걸 봤다. 정말 그랬다.
해맑음센터 아이가 남긴 후기. 마음이 단단해진 게 느껴진다./사진=해맑음센터 사례집
해맑음센터 선생님들을 꽤나 힘들게 하던 아이가 있었다. 센터를 떠나던 날, 그 아이는 이렇게 적었다.

"저는 지금까지 만나온 어른들에게 크게 실망했었습니다. 믿을 수 없었어요. 그런데 해맑음센터에 와서 선생님들을 만나며 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천사가 이렇게 산속에 들어와 있으니, 제가 못 만났던 거였어요."

그 말에 그 자리에 있었던 선생님들도, 동네 어르신들도, 부모님들도, 다 같이 펑펑 울었다.
콩나물에 물을 주는 기자./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에필로그(epilogue).

콩나물 수업 때 받은 콩나물을 집에 고이 모시고 왔다.

처음엔 정말 콩알만 있었다. 콩알만 했다. 이게 정말 자랄까 싶었다.

1~2시간 간격으로 물을 부어줬다. 까먹지 않게 알람을 맞춰줬다. 천천히 골고루 시원스레 부었다. 어둡게 둬야 먹을 수 있다고 해서, 뚜껑도 잊지 않고 꼭꼭 닫았다.

그러면서 매일 "무럭무럭 자랐으면 좋겠다"고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싹이 움텄다. "와!"하고 탄성을 질렀다. 그 뒤론 믿기 힘들 만큼 쑥쑥 자랐다. 매일 콩나물이 자라는 걸 보는 게 낙이 됐다.

마침내 콩나물이 다 자랐을 때, 비로소 어둠에서 나와 밝은 빛을 볼 수 있었다.

실은 그게 정말 좋았던 이유는 이랬다. 상처 입은 아이들도 그리 애틋하게 돌보다 보면 쑥쑥 클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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