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피터팬과 송골매

머니투데이 김우호 인사혁신처장 | 2021.04.13 05:30
김우호 인사혁신처장
'우리동네 피터팬'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네버랜드에 갇힌 피터팬처럼 세상의 편견 때문에 밖으로 나오지 못했던 장애인들이 주인공이 되어 새로운 도전을 펼치는 휴먼다큐이다. 흔히 말하는 ‘억지 감동’이나 신파 코드는 쏙 빼고 장애의 여부를 떠나 평범한 사람들이 가질 만한 고민을 담담하게 조명하는 담백한 프로그램이다.

내레이션은 선 굵은 목소리가 매력적인 배철수 씨가 담당한다. 젊은 친구들은 그를 라디오 DJ로만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필자는 ‘배철수’ 하면 80년대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록밴드 ‘송골매’를 떠올리게 된다. ‘TMI(too much information)를 하나 덧붙이면 조선 전기의 명재상으로 유명했던 허조(1369~1439)의 별명이 송골매였다.

세종의 치세를 이야기할 때 황희나 맹사성만큼이나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허조인데, 그는 날 때부터 등이 굽은 척추장애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쪽 같은 성품과 등이 굽은 겉모습이 마치 매를 닮았다 하여 사람들은 그를 수응재상(瘦鷹宰相), 즉 ‘송골매 재상’이라 불렀다고 한다. 철저한 청백리였던 허조는 세종의 총애를 받아 예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거쳐 좌의정의 직위에까지 올랐다. 조선시대 피터팬의 활약이랄까.

우리나라의 등록장애인 숫자는 2019년 기준 약 262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5.1% 수준에 이른다. 등록장애인은 2007년 처음으로 200만명을 넘었고, 이후 추세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등록장애인 중 후천적 요인으로 장애를 갖게 된 사람의 비율이 70%를 넘는데 이는 사고, 병환 등 예기치 못한 요인으로 인해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2019년 한 해에만 9만7000명이 새롭게 장애인으로 등록했다. 송골매 재상을 아꼈던 세종 역시 노안과 당뇨합병증으로 인해 말년에는 거의 앞을 보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는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인 장애인들이 편견에서 벗어나 공직에서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장애인 공무원 채용을 확대하고 있다. 장애인들의 공직 진출이 확대될수록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시각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장애의 유무와 상관없이 동등하고 공평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마련하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책무이다.

인사혁신처는 1989년 9급 공무원 채용시험에 장애인 구분모집제도를 처음 도입했고, 1996년에는 이를 7급 공채시험까지 확대했다. 2008년부터는 상대적으로 고용여건이 열악한 중증장애인만을 위한 경력채용시험을 별도로 신설해 운영해 오고 있다. 현재 정부 부처에서 근무하는 장애인공무원은 2019년 기준 5697명에 달하며 올해도 400여명의 장애인을 신규로 채용할 계획이다.

장애인은 '불쌍한 사람'도 '불쌍하지만 엄청난 의지로 극복한 대단한 사람'도 아니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저 한 명의 사람이면서 똑같은 이웃이다. 장애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한 개인을 설명하는 여러 가지 특징 중 하나일 뿐이다. 장애와 비장애라는 이분법의 렌즈를 벗고 각각의 개인의 가치를 존중하는 ‘다초점 감수성의 렌즈’로 세상을 바라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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