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닭' 구본준의 LX홀딩스[오동희의 思見]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 2021.03.27 06:00
구본준 LG 고문.

“싸움닭 같은 투지만 있다면 어떤 승부도 이길 수 있다.”

구본준 LG 고문(당시 LG전자 부회장)이 2011년 5월 27일 LG전자의 노동조합 창립 48주년 노조간부 체육대회에서 임직원들에게 던진 인사말이다.

그는 당시 인사말에서 "(LG전자에) 긍정적인 신호가 보이지만 더욱 더 독하게 실행해 진정한 승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다 같이 뛰자”며 LG전자 구성원들에게 싸움닭의 투지를 요구했다.

그런 그가 26일 몸담았던 LG를 떠나 'LX'라는 이름으로 독립에 나섰다. 1978년 한국개발연구원과 미국 AT&T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LG가 반도체 사업을 시작하면서 LG에 발을 들여놓은 지 36년만이다.

지금까지 여의도 LG트윈타워 동관 사무실로 출근하던 구 고문은 오는 5월1일 LX 법인설립이 완료되면 광화문 사옥에 새 둥지를 튼다. 그가 LX홀딩스를 설립하고 함께 끌고 나갈 기업들은 LG상사를 필두로 LG MMA·LG하우시스·실리콘웍스 등이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기에는 적지 않은 나이인 고희(古稀: 1951년생)에 녹록지 않은 글로벌 경쟁의 한 가운데 놓이게 된 것이다.

다른 이들 같으면 지나온 시간을 정리할 시기이지만, 40여년을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수양'과 같은 위치의 삶을 살아온 그에게 분가는 또 하나의 도전이다. 그에게는 아직 기업을 물려주기에는 수업이 더 필요한 장남 구형모 LG전자 책임(1987년 생, 34세)과 딸(1990년생, 구연제)이 있다.


고희에도 아직 그의 역할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치열한 투계와 같은 삶을 살았다. 그것도 가까운 사돈가와의 싸움이 가장 치열했다. LG의 전신인 금성사는 우리 전자산업사의 맏형이었다. 구인회 LG 창업주와 이병철 삼성 창업주간 사돈을 맺었지만, 삼성이 1969년 금성사가 진출해 있던 전자 산업에 뛰어들면서 관계가 서먹해졌고, 그 이후는 치열한 경쟁의 역사였다.

그 경쟁 관계에서 싸움닭 역할을 한 게 구본준 고문이다. 고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4남 2녀 중 가장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졸업한 그는 미국 유학 후 LG에 입사하지 않고 7년간을 외부 연구원과 미국계 전자회사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처음 발을 들여놓은 곳이 반도체였다. 1998년 IMF 상황에서 빅딜로 반도체를 뺐긴 후에는 반도체와 공정이 같은 LCD에 매진해 성과를 올렸다. LG필립스디스플레이의 경영을 맡았을 때는 '보스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삼성에게 밀렸던 LCD를 세계 1위로 올려놓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다. 그 와중에 거침없는 발언으로 '설화'를 적잖이 겪었다.

2003년 4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디스플레이 전문 전시회 'edex 2003'에서 LG에 1위를 내준 삼성전자 LCD 부문 임원들을 '2차 대전의 전범'과 비교해 논란을 일으켰다. 또 2004년 11월 5일 연세대 강연에서는 일본 전자기업 소니를 향해 '삼성전자와 바람난 소니'라고 공격해 형인 구본무 회장이 함구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후 LG상사와 LG전자 대표 이사, LG 신성장추진단장 등을 맡아 LG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지만 거친 입담으로 여전했다. 구자경 명예회장의 4남 중 장남인 구본무 회장과 함께 LG에 몸담았던 그는 조카인 구광모 LG 회장에게 그룹을 넘기고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여전히 건강을 자랑하는 구 고문이 36년간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 LG상사 등에서 쌓은 노하우를 새롭게 분가한 LX홀딩스에 어떻게 접목할지 기대가 모아진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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