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톨스토이 교훈에서 찾는 '한·러 수교' 30주년 의미

머니투데이 이석배 주 러시아 한국대사  | 2021.03.25 05:30
2021년 3월 24일, 한국과 러시아 수교 30주년을 기념하는 '2020-21 한-러 상호교류의 해' 개막식이 철저한 방역 조치 하 양국 외교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에서 개최됐다. 전세계적인 팬데믹 상황 속에서 양국 정부가 당초 준비했던 300여개의 수교 30주년 기념행사를 주로 온라인 상에서 개최해오던 중 어렵사리 대면으로 개막식을 개최하게 돼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1990년 9월 30일, 한국과 러시아(당시 소련)는 반세기에 걸쳐 지속된 냉전을 극복하고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그 이래 양국은 정치·경제·문화·과학기술 등 전 분야에서 협력해 나가며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뤄냈다.

양국은 32회의 정상회담을 비롯해 정부 및 의회 지도부 간 교류·협력을 꾸준히 이어왔고, 1994년 건설적 동반자관계, 2004년 포괄적 동반자관계, 2008년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양자 관계의 틀을 발전시켜 나갔다. 교역액은 1992년 2억 달러에서 2019년 223억 달러로 110배 증가했다. 1990년 1만 명도 채 되지 않았던 상호 방문객 수가 2014년 비자면제협정 발효에 힘입어 2019년엔 80만명에 이르렀다. 코로나19 확산 이후에도 2020년 6월 양국 총리간 통화, 9월 양국 정상간 통화, 2021년 2월 외교장관간 통화 등 고위급 협의채널을 유지해왔다.

한국과 러시아 양국은 수교 이래 에너지와 수산·농업·조선·우주·극동개발 등 다방면에 걸쳐 경제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왔다. 2017년 9월 블라디보스톡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9개다리’ 협력 분야를 제시했고, 그간의 이행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해 10월 마련한 ‘9개다리 행동계획 2.0’은 한-러 간 실질협력 강화를 위한 플랫폼이 되고 있다. 아울러 양국은 이러한 토대 위에서 연해주 산업단지 조성, 서비스.투자 FTA 협상, 공동투자펀드 논의, 지방협력포럼 정례화 등 협력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지속 노력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러시아는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있어 우리의 중요한 협력 파트너다.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도 2020년 9월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건설적 역할을 지속할 것이라고 했다. 분단으로 인해 대륙과 연결되지 못하고 섬 아닌 섬에 살고 있는 우리가 유라시아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선 러시아와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도 남북한 대화와 협력 재개 등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진전과 더 나아가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위해 러시아 정부와 긴밀히 협의해 나갈 것이다.

한국과 러시아가 지난 30년간 내실 있게 다져온 양국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지속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분야에서의 협력에 더욱 주안점을 둬야한다.


한국과 러시아는 그간 양국 실질협력의 든든한 축이 되어온 에너지와 수산, 조선, 제조업 등의 전통적 협력 분야에 더해 혁신·보건의료·에너지전환 시대 유망 분야로 협력의 외연을 확대해 미래 성장 동력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ICT와 디지털, AI, 바이오 등 분야에서 러시아의 우수한 인재 및 원천기술과 우리의 상용화 능력을 접목하고, 우리 의료기관의 러시아 진출을 도모하는 한편, 러시아의 풍부한 재생에너지.수소 생산 잠재력을 활용한 유망사업을 발굴해 앞으로의 30년 간에도 양국 실질협력의 폭과 깊이를 더해 나갈 계획이다.

또 국가 간 관계를 안정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데 필수적인 국민 간 상호 이해를 더욱 심화할 필요가 있다. '2020-21 한-러 상호교류의 해'기념행사 이후에도 문화교류 행사를 지속시켜 나갈 것이다. 아울러 한러대화(Korea-Russia Dialogue)를 비롯한 각급의 민간분야 협의체가 미래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양국 미래 세대들 간의 교류를 강조하고 싶다. 한-러 관계를 미래지향적인 파트너십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양국 차세대 간 우의를 쌓는 것이 긴요하다. 현재 양국 내 상호 유학생이 3000명 가량 이르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이 안정화된 이후 상호 유학생 수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이들이 미래에 양국을 이어주는 소중한 가교가 될 것으로 믿는다.

“다정한 벗을 찾기 위해서라면 천 리 길도 멀지 않다”는 톨스토이의 말과 같이, 엄중한 방역 체제 하에서도 '2020-21 한-러 상호교류의 해'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러시아 대표단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금번 개막식을 계기로 양국이 코로나19로 인해 다소 주춤해왔던 교류를 확대해 나가며 더욱 포괄적이고 성숙한 파트너십을 발전시켜 나가기를 기원한다.

이석배 주러시아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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