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윤석열과 이재명에게 열광하는가[광화문]

머니투데이 양영권 사회부장 | 2021.03.26 05:30
정치 지도자에 대한 인민의 마음이 얼마나 쉽게 바뀌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가 1494년부터 1498년까지 피렌체 공화정을 열었던 수도사 지롤라모 사보나롤라의 경우다.

사보나롤라는 이탈리아를 쳐들어온 프랑스 샤를8세를 설득해 피렌체에서 철수하게 했다. 시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이어 메디치 가문이 추방되고 무정부상태였던 피렌체에서 권력을 쥐었다. 하지만 종교적 도덕주의에 기초한 개혁들은 실패하고 불과 4년 만에 시민들에 의해 광장에서 화형을 당했다. 권불십년의 타산지석이다.

동시대를 산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사보나롤라의 영향력이 감소하고 그에 대한 비난이 증가한 계기를 자신이 만든 법을 준수하지 않은 데서 찾았다.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국사범들이 별도로 시민들에게 제소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사보나롤라 자신이 힘들게 통과시켰는데, 정작 자신의 정적들에 대한 처벌에는 그 법 적용을 꺼렸다. 한마디로 ‘공정’하지 못했다.

이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시민들의 경제적 열망을 충족시키지 못한 데 있다. 사보나롤라가 권력을 잡았을 때 피렌체는 프랑스에 지급한 부담 등으로 재정이 궁핍했다. 깊어진 불황과 가중된 세금으로 시민들의 불만도 컸다.

사보나롤라는 이런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종교에 기반한 도덕적 질서를 수립하는 데만 집중했다. 대표적인 이벤트가 ‘허영의 소각’이다. 그는 피렌체 시민들의 사치와 허영을 비판하며 사치스러운 예술품들과 이교도 상징물들을 불태우게 했다. 피렌체는 르네상스를 꽃피운 곳이다. 예술품이 주요 산업이었다. 사보나롤라의 금욕주의가 시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든 것이다.

사람들은 부족한 것에 더 열광한다. 차고 넘치는 것에는 값을 지불하지 않으며 지키는 데도 소홀하다. 더 부족한 것을 얻기 위해 더 높은 값을 치를 용의가 있다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생각하면 된다.

정치 지도자에 대한 지지에도 그 결핍이 투영된다. 시민들은 사보나롤라가 메디치가문의 참주정보다 더 공정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유능하지 않다는 점을 알아챘고, 결핍을 해소하지못하자 바로 지지를 철회했다.

현대 정치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검찰 조직을 앞장서 옹호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유력한 대선주자로 호명된 이유를 찾으려면 사람의 됨됨이보다 배경을 봐야 한다.


가장 공정할 것 같았던 문재인정부다. 하지만 조국·윤미향 사태,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논란 등을 겪으면서 시민들은 공정의 결핍을 느꼈다. 그리고 여든 야든 가리지 않고 칼을 들이대는 검찰주의자를 그 갈증을 달래줄 대안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여권 유력 주자로 떠오른 이재명 지사의 경우도 그 배경에는 결핍이 있다. 소주성 정책과 각종 부동산 대책이 실패하면서 정부의 무능이 드러났다. 적자에 허덕이던 지자체 재정을 흑자로 돌려놓고, 무허가 계곡 시설을 말끔히 정비해 내고, 반도체 클러스터를 유치한 이재명의 실사구시적인 유능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LH 직원들의 투기 사태는 불공정과 무능을 함께 드러낸 사례다. 현재와 미래의 먹거리에 영향을 주는 탈원전과 각종 반기업 정책은 어쩌면 현대판 ‘허영의 소각’이다. 결국 현재의 대권주자 지형을 만들어낸 것은 현 정부의 불공정과 무능인 것이다.

여론은 콘크리트같은 고체도 아니고 신기루를 보여주는 기체도 아니다. 민심은 물과 같아서 배를 띄우기도, 침몰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새로운 기회를 도모할 수 있다. 현재의 대선주자 지지율 역시 수없이 많은 변화를 겪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도 당선되는 과정에는 각각 안철수와 반기문이라는 스타가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은 김종인 비대위원을 영입하면서 경제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욕구를 충족시켰고, 문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에 참배함으로써 중도층을 끌어안았다. 그래서 반전이 가능했다.

독재정권이 아닌 이상 공화국의 지도자는 항상 마키아벨리가 사보나롤라를 예시로 든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일 수밖에 없다.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다. 15세기 피렌체 공화정의 역사가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되풀이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상황을 바꾸려면 상대방의 약점을 찾는 것보다 국민이 결핍을 느끼는 게 무엇인지 먼저 파악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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