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는 있고 '코인'은 없다 [광화문]

머니투데이 김주동 국제부장 | 2021.03.18 04:00
/사진=AFP
"지금 돈이 없는데 혹시 갖고 있는 커피 교환권으로 계산해도 될까요?"

듣는 입장에선 당황스러울 것이다. 진짜 교환권인지부터 궁금하고, 맞다 해도 가치가 충분하다는 확신이 안 선다. 무엇보다 현금화 할 수 있는 돈으로 느껴지지가 않는다. 물물교환은 쉬운 거래 방식이 아니다. 사람들은 편한 거래를 위해 화폐를 만들었다. 안심되는 쪽은 현금이다.

이제는 그저 종이 쪼가리(지폐)나 찍힌 숫자(계좌 잔금 표시)에 불과할지라도 사람들은 현금의 가치를 믿는다. 국가가 인정해주니 국내 어디서나 쓸 수 있다는 믿음, 나라가 망하지 않는 이상 가치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교환성'과 '가치 안정성'은 화폐가 가져야 하는 2가지 요소다.

이런 조건이 흔들리면 대중들의 행동은 달라진다. 나이지리아는 지난해 자국 화폐(나이라) 가치를 두 차례 절하했다. 24% 가치가 깎였다. 올해도 절하 가능성이 있다.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물가는 솟았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화를 찾곤 했다. 가만히 있어도 가치가 쪼그라드는 자신의 돈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현지의 한 30대는 수년 전부터 비트코인에 투자해왔으며 "현재는 (번 돈으로) 집을 짓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은 해외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하기도 편해서 비트코인을 쓴다고 했다. 수수료가 싸기 때문이다. 최근 BBC에 소개된 얘기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나이지리아에서 비트코인 사용률(갖고 있거나 사용한 비율)은 32%로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 물론 비트코인 가격이 자국 화폐보다 더 내렸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1년 사이 가격이 10배가량 뛰면서 국내에서도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하루 거래액이 코스피 시장을 제쳤을 정도다. 가격이 폭등하니 논란도 크다. 물론 거품이냐 더 오르냐가 가장 큰 관심사지만, 이름이 적절한지부터 논란거리다.

비트코인은 흔히 가상화폐나 암호화폐로 불린다. 영어로도 'cryptocurrency'라는 비슷한 뜻의 말이 주로 쓰인다. 용어의 배경은 시작점에서 찾을 수 있다.

2009년 비트코인의 탄생에 앞서 이를 만든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라는 이름의 사람은 2008년 '비트코인: 개인 대 개인 전자화폐(Electronic Cash) 시스템'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당시 세계는 금융위기를 맞아 중앙은행이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했는데, 이후 위기의 진원지였던 금융회사들은 이를 통해 오히려 큰 수익을 내고 성과급 잔치를 벌였으며 이들의 탐욕과 불공정에 분노한 대중이 '월가 점령시위'를 펼치기도 했다.

나카모토 논문의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개인 대 개인 전자화폐는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직접 전달하는 온라인 결제를 실현한다."

화폐 운영을 독점하는 중앙은행과 거래 과정에 개입하는 금융기관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반영됐다. 기존 금융시스템에 대한 반발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비트코인은 중앙 통제기관 없이 참여자들이 블록체인을 통해 거래를 보증한다.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을 일종의 화폐로 설명했을 뿐 아니라, 2100만개로 정해진 비트코인이 다 채굴된 후엔 채굴자에게 거래수수료로만 보상을 하고 인플레이션은 없을 것이라고 썼다. 돈 찍어내기를 하지 못하니 이로 인한 화폐 가치 하락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비트코인을 통해 중앙 기관의 통제 없이 국경을 넘나드는 자유롭고 평등한 거래를 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지금의 비트코인은 10여년 전 그가 기대한 모습과 같을까.

코로나19 사태 이후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를 비롯해 기관들까지 비트코인을 사는 배경에는 미국이 통화량을(M2 기준) 1년 새 25%나 늘린 상황이 있다. 인플레이션 우려 때문이니 나카모토의 생각과 겹치는 면도 있지만, 이들은 새로운 화폐를 추구했다기보다 물량이 제한된 '디지털 금'에 투자했다고 보는 게 맞다.

무엇보다 가치가 급하게 바뀌는 현재의 비트코인에는 화폐로서 필요한 '가치 안정성'이 빠져 있다. 금융시스템의 통제에서는 벗어났지만 자유로운 거래 이상은 아직 실현되지 못했다. 가치를 보증해줄 근거가 없는 비트코인은 사람들의 마음이 식으면 가치가 추락할 위험도 있다. 나카모토는 비트코인 세계에서 탐욕을 시스템으로 배제하려 했지만 뜻하지 않게 이와 관련한 피해자가 나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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