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터지면 마구 쏟아내는 법안…'계산서'는 나몰라라

머니투데이 이원광 기자, 권혜민 기자 | 2021.03.16 05:00

[베일 벗은 '외상 입법']上



[단독]'비용추계' 없이 법만 낸다…올해 '외상입법' 93.6%, 해마다 '급증'


여야가 올해 국민 혈세가 투입되는 법안을 발의하면서도 비용추계서(미첨부사유서 포함)를 내지 않는 ‘외상 입법’이 전체 93.6%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2015년에도 76.5% 수준에 달했는데 6년새 17.1%포인트(p)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용추계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법안 발의 요건을 충족한 후 그 결과를 반영하지 않은 비율도 63.7%에 달했다. 6년 전 수치의 2.3배에 달한다. 여야의 입법 경쟁이 과열되는 가운데 국가재정의 안정적 관리를 도모한다는 비용추계 제도 취지가 무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예산·기금 수반' 법안 421건 중 비용추계서 등 미첨부 93.6%

14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이 확보한 ‘법안 제출 시 비용추계요구서 등 제출현황’ 국회 자료에 따르면 올해초~지난달말 비용추계 대상 법안 421건 중 비용추계서(미첨부사유서 포함)가 첨부되지 않은 건수가 394건(93.6%)으로 집계됐다.

예산 및 기금상 조치를 수반하는 법안을 내면서도 사전에 국회 예산정책처로부터 비용추계서 등을 받아 첨부하는 건수가 극히 드물다는 의미다. 대체로 비용추계요구서를 붙이는 방식으로 형식 요건을 갖추는데 국민 혈세와 비용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같은 기간 비용추계서나 미첨부 사유서가 첨부된 법안은 각각 7건과 20건에 그쳤다.

이같은 ‘외상 입법’ 현상은 해마다 심화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올해 비용추계서나 미첨부사유서 없이 발의된 법안 비율은 93.6%로 2015년 76.5% 대비 17.1%p 증가했다. 2016년 76.3%, 2017년 79.2%, 2018년 80.9%, 2019년 84.5%, 2020년 91.7% 등으로 해마다 증가 추세다.


◇법안 63.7%, 비용추계서 요구해놓고도 '나몰라라'

더 큰 문제는 법안 발의 시 예정처에 비용추계를 요구해놓고도 추후 그 결과를 반영하지 않는 경우다. 국회에 따르면 올해 비용추계요구서를 첨부한 법안 394건 중 법안 심사 과정 등에서 비용추계서 등이 누락된 경우가 63.7%(251건)에 달했다.

법안이 최근 발의돼 아직 비용추계가 완료되지 않은 경우를 고려하더라도 지나치게 높은 수치라는 지적이다. 예산 등에 대한 고민 없이 비용추계요구서를 붙여 법안이 심사 절차 등에 착수하면 사실상 방치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대목이다. 같은 기간 비용추계 요구 후 비용추계서를 첨부한 건수는 25건(6.3%), 미첨부사유서 첨부 건수는 82건(20.8%), 미대상사유서 첨부 건수는 36건(9.1%)에 그쳤다.

이에 이같은 올해 비용추계 미반영률(63.7%)은 최근 7년간 최대치로 나타났다. 2015년 27.6% 대비 2.3배에 달하는 것으로, 2016년 20.2%, 2017년 43.6%, 2018년 47.7%, 2019년 57.6%, 2020년 34.2% 등을 크게 넘어서는 수치다.

◇여야 '입법 경쟁'…비용 고민은 누가

입법에 따른 재정 부담요인을 사전에 점검하고 국가재정의 안정적 관리를 도모한다는 비용추계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여야가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법안을 경쟁적으로 쏟아내면서도 준비 단계에서는 물론 발의 후에도 비용 부분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목소리다.

이는 최근 심화되는 과잉 입법의 원인으로도 꼽힌다. 21대 국회 개원(5월30일) 후 지난달말까지 의원들이 제안한 법안(위원장 대안·정부안 제외)은 모두 7693건으로 파악됐다. 전년 동기 3357건 대비 2.3배에 달한다. 20대 국회 초반(2016년 5월30일~2017년 2월28일) 5149건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많다.


류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의원실에서 (비용추계 요구 후 비용추계서를) 붙일만한 유인이 별로 없다. 법이 제출되고 나면 빨리 처리하는 것에 집중한다”며 “비용추계서가 나오면 상임위나 본회의에서 논의를 위한 인포메이션(정보)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잘 안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예정처에서 나온 추계서가 의원실은 물론 의안과에 자동으로 전달되고 첨부되는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권혜민·이원광 기자


'100조' '40조' '15조'? 쏟아진 손실보상법…비용 추계는 없었다


여야가 '소상공인·자영업자 손실보상법'을 경쟁적으로 쏟아냈지만 법안 시행에 소요되는 비용을 따진 '계산서'는 전무(全無)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영업자의 손실을 보상하기 위해선 막대한 재정 투입이 불가피하지만, 구체적인 지원 방법·내용을 명시하지 않은 상태로 법안이 발의돼 제대로 된 비용추계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회가 나라 곳간에 대한 고민은 없이 이슈 법안 발의를 통한 실적 챙기기에 매달린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 제출된 손실보상 관련 법안 중 비용추계서가 제출된 법안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3월 임시국회의 주요 입법 현안인 '손실보상법'은 집합금지·영업제한 등 코로나19(COVID-19) 방역 조치에 따른 손실을 국가가 보상하도록 하는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소상공인들의 시름이 깊어지자 여야가 지원 필요성에 공감대를 모았고 문재인 대통령도 "당정이 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짧은 시간 안에 이름부터 지원 내용, 규모까지 다양한 법안들이 경쟁적으로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에선 민병덕·이동주·강훈식 의원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 극복을 위한 손실보상 및 상생에 관한 특별법', '코로나19 감염병 피해 소상공인등 구제에 관한 특별법', '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다. 송갑석 의원도 사실상 '여당안'인 '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내놨다. 국민의힘에서도 최승재·홍석준 의원이 '소상공인기본법 개정안',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문제는 각 법안 시행에 필요한 비용을 따진 '계산서'가 없다는 점이다. 국회법은 예산·기금상 조치를 수반하는 법안을 발의할 땐 예상되는 비용에 대한 추계서를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률 입안단계에서부터 국가가 부담할 재정 소요에 대해 사전 분석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국회의원은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가 작성한 비용추계서를 함께 첨부해야 법안 발의가 가능하다.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먼저 예정처에 대한 '비용추계요구서'를 제출해 법안을 발의하고, 상임위원회 심사 전까지 비용추계서를 내면 된다.


현재 계류 중인 6개 법안은 모두 예정처에 비용추계요구서를 제출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예정처는 이들 법안 모두에 대해 '비용추계서 미첨부사유서'를 회신했다. "비용추계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국회 규칙 192호 '의안의 비용추계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의안의 내용이 선언적·권고적 형식으로 규정되는 등 기술적으로 추계가 어려운 경우'엔 비용추계서를 첨부하지 않고 사유서만 제출하면 된다. 해당 법안들은 모두 이 예외 규정을 적용 받았다.

구체적으로 예정처는 민병덕 의원안에 대해선 "현 시점에서 손실 보상의 대상 및 규모를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고, 보상·지원의 구체적인 내용을 대통령령에 위임해 추가재정소요를 합리적으로 추계하기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강훈식 의원안에 대해서도 "지원대상, 금액, 절차 등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해 현시점에서 추가재정소요를 합리적으로 추정하기 곤란하다"고 밝혔다. 법안의 핵심 내용인 손실보상 대상·기준을 시행령에 담기로 해 비용추계를 도저히 할 수 없다는 얘기다.

14조8440억원(강훈식안), 40조4000억원(이동주안), 98조8000억원(민병덕안) 등 의원들이 법안 발의시 자체적으로 계산한 비용을 함께 공개했지만 이 마저도 '주먹구구식'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민병덕 의원은 손실보상 비용 규모를 보상기간 4개월간 매월 24조7000억원으로 계산했는데, 이는 지역별로 집합금지·영업제한 기간이 각기 다른 상황에서 서울과 수도권 지역 행정명령 기간을 일괄 적용했다는 한계가 있다. 영업금지 제한 업종에 실질소득의 90%를 보상하는 안을 제시한 이동주 의원은 산출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다며 보상액을 39조9000억원에서 40조4000억원으로 정정하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재정 소요가 뻔히 예상되는 데도 제대로 된 비용추계가 이뤄지지 않은 법안은 손실보상법 뿐만이 아니다.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 또한 공항 건설을 위해 필요한 부대공사와 재정지원, 조세·부담금 감면 등 재정 투입이 필요한 내용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한정애 민주당 의원,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법안 모두 비용추계 없이 "현 시점에서는 공항 건설공사의 구체적인 규모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내용의 미첨부사유서가 첨부됐다.

국회 내에서도 의원들이 재정건전성에 대한 고민은 뒤로 한 채 이슈 법안을 발의해 주목을 끄는 데에만 몰두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법안에 대한 비용 계산조차 하지 않겠다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며 "300명의 의원들이 모두 손실보상법을 낼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자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권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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