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어떤 세상에 살고 싶은가? 펀드레이저 황신애가 묻고 답했다

머니투데이 윤병훈 뉴미디어본부 전무 | 2021.03.12 10:02

《나는 새해가 되면 유서를 쓴다》를 통해 말하는 유언상속 패러다임의 전환

책표지
준비되지 않은 죽음은 분쟁을 불러온다
1299년, 피렌체 공화국에서 한 사내가 피렌체의 대부호 ‘부오소 도나티’의 유언장을 바꿔치기해 재산을 가로챈 사건이 일어났다. 도나티 가문의 딸 젬마(Gemma)는 시인 단테 알레기에리(Dante Alighieri)의 아내였고, 단테는 유산에 대한 욕심으로 이성을 잃고 가족과 친척끼리 서로 진흙탕 싸움을 벌인 처가의 사건을 자신의 장편 서사시 [신곡]에 등장시켰다. [신곡]의 '지옥'편에서 '유언장 위조'죄로 지옥에 떨어진 사내는 그래서 실존인물이다.

1918년, 600년 전 단테에 의해 지옥에 떨어진 피렌체의 유언장 위조범은 푸치니의 오페라 '자니 스키키'의 주인공 자니 스키키로 다시 소환된다. 애절하고 아름다운 선율로 지금까지도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아리아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O mio Babbino Caro)'는 자니 스키키의 딸 라우레타가 전 재산을 수녀원에 기부한다는 부오소 도나티의 유언장을 위조하게끔 아버지에게 강요하는 내용이다. 라우레타는 약혼자 리누치오가 도나티의 유산을 받아 결혼 비용을 마련해 자기와 결혼할 수 있도록 해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고 아버지에게 '자해 협박'하는 불효녀다. 딸을 물귀신으로 만들 수 없었던 자니 스키키는 죽은 도나티로 행세해 유언 공증인을 속이고 유산 중 큰 돈이 되는 것들을 자기 몫으로 돌리는 유언장 변조에 성공한다.

1976년, 미국판 자니스키키 사건이라 할 몰몬 유언장 스캔들이 세간에 알려진다. 미국의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가 사망하고 3주 뒤, 휴즈의 서명이 있는 유언장이 발견됐는데 몰몬교회와 네바다의 멜빈 던마르라는 사람에게 각각 16분의 1이나 되는 유산을 증여한다는 내용이었다. 유언장에 거명된 멜빈 던마르의 주장에 따르면, 10년 전 쯤 자신이 운영하는 라스베가스 인근 주유소 밖에 지쳐 쓰러져 있던 노인을 도왔는데 노인은 자신이 하워드 휴즈라며 명함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1년 뒤, 누군가가 찾아와 서류봉투를 건네며 몰몬교회 본부로 보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휴즈의 사촌이자 최우선 법정상속자인 윌리엄 러미스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소송을 걸었고, 결국 유언장이 위조됐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유언장 위조범 던마르는 지옥이 아닌 감옥에 떨어졌고, 휴즈의 유산은 전처와 딸과 사촌들이 나눠가졌다.

2020년 6월, 일본의 롯데지주는 '그룹의 후계자를 (차남인)신동빈으로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는 고 신격호 명예회장의 20여 년 전 유언장을 공개했다. 2019년 1월 사망 당시 유언장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망 5개월 후 도쿄 사무실 금고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은 "부친의 생전 의사와 완전히 다른 내용"이라며 유언장 조작 가능성을 제기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달, 일본정부(법무성)는 개인의 유언장을 보관해 주고 본인 사망 시 유언장에 기재된 관련자에게 자동으로 통보해주는 행정서비스를 실시했다. 약 4만 원의 수수료를 내고 유언장을 법무성에 기탁하면 공증은 물론 가정법원에서 유언장의 적법성을 인정받아야 할 필요도 없다. 일본인은 전통적으로 자택의 불단(佛壇) 밑에 유언장을 보관해두는 경우가 많은데, 가족이 해체되고 독거 노인이 늘어나면서 분실이나 훼손되는 사례가 적지 않을 뿐 아니라, 사망 전까지 별거 중이었던 상속인에 의한 위변조 사건도 빈발하고 있었다. 게다가 연고 없는 사망자의 재산을 노린 유언장 위조 사기사건과 재산을 남기고 사망했지만 유언이나 유서가 없어 상속인 간의 소송이 끊임없이 증가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2021년, 한국에서는 유산상속 문화의 패러다임이 변하는 시점이 도래했다. 한국사회의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유산상속에 관한 한 가장 강력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 순장(殉葬)문화가 그 역사상 최고점에 도달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순장은 권력자가 죽었을 때 그 시중을 들던 사람들을 함께 묻는 풍습이다. 고대사회에서는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처첩이나 측근들에게 그들의 사랑과 충성을 애걸할 필요가 없었다. 부호와 권력자는 단지 그들을 순장조로 지명하는 것만으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다. 권력자가 병에 걸리거나 사고로 요절하면 그들도 죽임을 당했기에 권력자의 안녕이 가장 중요했다.

현대의 한국사회는 순장조를 지명하는 대신 가진 재산을 쥐고 있으며(상속을 하지 않음) 보살핌을 보장받는다. 가진 것이 많지 않은 일반 서민들조차도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재산을 상속하지 않아야 한다'는 믿음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내화돼 있다. 미리 상속했다가 자식으로부터 버림받고 궁핍과 고독 속에 죽음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돈으로 가족을 인질로 삼아 노후를 보장받는 것이다. 많이 소유할수록 더 많이 불안해진다는 순리는 내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이다.

우리의 삶이 의지하고 있는 것, 그것이 죽음이다

현대인은 옛 사람들에 비해 더 적게 죽음을 생각한다. 한국인은 더욱 그렇다. 모두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면서 예외 없이 자신은 예외로 둔다.

반드시 죽는다는 진실에 충실해야 삶이 건실해진다. 진실이란 현실의 다른 말이다. 현실을 보다 명확히 볼수록 세상을 살아가는데 보다 나은 준비를 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단지 소수의 사람들만이 삶의 곁에 죽음을 두고 현실을 탐색해 세계에 대한 이해와 진실이 무엇인가를 탐색해가고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생관을 바꾸는 과정은 매우 어렵고 괴로운 일이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 말기에 가서도 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은 낡은 인생관을 확신하며 변화하는 현실(세계)을 무시해 버리려고 한다. 세상과 주위를 조작해서라도 자신의 생각에 맞춰가려고 한다. 인간은 새로운 변화를 희망할 때 불안을 느낀다. 공포 없이 새로운 것을 체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죽는다는 것과 나도 그렇다는 것을 동기화시켜야 한다. 진실(곧, 현실)과 맞지 않는 구태의연한 인생관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내일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현재의 삶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주변 정리에 마음을 쓰게 되고, 가진 것을 누구에게 어떻게 남겨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가진 것을 죽기 직전까지 쥐고 있어야 한다는 낡은 생각을 버리면 전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새롭고 독특한 가능성의 세계가 눈앞에 열린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변화한다.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되면 새로운 종류의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새롭고 색다른 선택을 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할 일은 진실을 내 것으로 만들고 가동시키는 것이다.

저자 황신애(펀드레이저)
펀드레이저(기금모금활동가) 황신애는 1월 출간한 《나는 새해가 되면 유서를 쓴다》에서 “우리의 삶이 의지하고 있는 것, 그것이 죽음이다”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 책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질문이 아닌 하나의 계명(啓明)으로 제시해준다. 그럼으로써 무엇이 삶을 사랑하는 삶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황신애는 아름다운 죽음은 아름다운 삶에서만 이루어진다고 이야기한다.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아쉬움 없이 최선을 다하고 나서 해가 질 때는 내일이 다시 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는 것이다.....부끄러움에 대한 염려는 미처 정리하지 않은 자의 몫이다.(p146)”

황신애는 우리가 죽음의 생각에 깊게 빠져들수록 우리는 더 높게 참다운 삶으로 안내된다고 한다.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이제는 뒤돌아보기를 권한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에게 불행을 남기지 않으려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상속을 잘하려면 무엇을 누구에게 어떻게 남겨야 할지 정해야 하는데, 그걸 고민하지 않는 거죠. 일단 유언장을 써보면 알게 됩니다. 유언장이라는 건 죽음을 전제해야 하니까 현재 시점으로 인생을 한번 정리하게 되거든요.”

윤병훈 머니투데이 뉴미디어본부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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