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나랏빚 되레 늘수도"…국회 경고에 '재정준칙' 무산 위기

머니투데이 세종=유선일 기자 | 2021.02.18 11:21
[서울=뉴시스]이영환 기자 =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공동취재사진) 2021.02.18. photo@newsis.com

정부가 도입을 추진하는 재정준칙이 ‘소극적 재정대응→더딘 경기회복→국가채무비율 상승’이란 악순환을 낳을 수 있다고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기획재정위원회가 경고했다. 정부가 제시한 계산식 대로면 통합재정수지가 흑자일 경우 국가채무비율이 무한정 허용되는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재정준칙 도입에 대해 여야 모두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 논의 때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는 상임위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마저 신중론을 펴면서 입법이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재정정책 묶으면 경기 나빠져 오히려 국가채무비율 높아질 수도”


[세종=뉴시스]강종민 기자 =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10월 5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방안을 발표했다. 2020.10.05. ppkjm@newsis.com
18일 국회와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국회 기재위는 최근 정연호 수석전문위원이 작성한 ‘국가재정법 일부개정법률안 검토보고서’를 소속 의원들에게 배포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재정준칙 도입을 위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이에 대한 기재위 전문위원실 차원의 검토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부 재정준칙은 2025년부터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60% 이하, 통합재정수지 비율을 -3% 이하로 관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법에 근거해 나라빚이 급격하게 불어나는 것을 막는다는 취지다.

기재위는 재정준칙의 재정건전화 실효성 제고 효과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각종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조목조목 지적했다. 우선 재정준칙 도입으로 오히려 국가채무비율이 높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재위는 “인구구조 고령화, 코로나19(COVID-19) 등으로 인한 경기침체에 적극 대응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상황”이라며 “법령에 근거한 재정준칙을 도입하는 것은 변화하는 상황에 따른 국가재정의 유연한 대처를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채무 한도로 인해 국가재정이 적극적 대응을 하지 못할 경우 경기회복을 더디게 하고, 이것이 다시 국가채무비율을 높이는 악순환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기재위는 또 “개정안은 재정수입 증대를 위한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강력한 지출제한을 규정하고 있다”며 “결과적으로 국민복지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지출이 제약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재정준칙 산식도 문제”


기재위는 정부가 제시한 ‘재정준칙 산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국가채무비율과 통합재정수지 가운데 한 지표가 기준치를 초과해도 다른 지표가 보완할 수 있도록 산식을 ‘(국가채무비율/60%) × (통합재정수지 비율/-3%) ≤ 1.0’로 정했다. 예컨대 국가채무비율이 66%로 기준치(60%)를 넘겼더라도 통합재정수지 비율을 -2.7% 이내로 관리해 최종 숫자가 1.0을 넘기지 않았다면 재정준칙을 준수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기재위는 “국가채무비율이 60%보다 낮아지는 경우 오히려 통합재정수지 적자 비율 기준이 완화돼 재정의 확장적 운영이 재정준칙에 의해 허용되는 결과가 발생한다”고 했다. 이어 “예컨대 국가채무비율이 50%인 경우 통합재정수지 적자는 기준점인 3% 적자보다 높은 3.6%까지 허용된다”며 “정부에 확장적 재정정책의 유인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 산식이 통합재정수지 적자를 가정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재위는 “통합재정수지는 불과 몇 년 전인 2017년, 2018년의 경우 각각 1.3%, 1.6%의 흑자를 나타냈다”며 “이처럼 통합재정수지 흑자 발생 시 국가채무비율이 무한정 허용된다”고 밝혔다. 이어 “통합재정수지가 흑자인 경우 결과값이 무조건 음수가 도출돼 국가채무비율에 관계없이 1보다 작은 결과값이 돼 국가채무비율이 무한정 허용되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국제적 통용’을 이유로 재정수지 지표를 관리재정수지가 아닌 통합재정수지로 정한 것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기재위는 “관리재정수지는 당해연도의 재정건전성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기 위한 지표”라며 “통합재정수지보다 적자폭이 크게 나타나기 때문에 국가재정의 건전화를 위한 재정준칙 기준으로는 관리재정수지가 적합하다는 의견이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정부의 재정준칙 산식은 재정수지가 흑자인 경우 국가채무를 무한정 허용하게 되는데, 재정수지 기준지표를 통합재정수지로 하는 경우 사회보장성기금 흑자를 포함함으로써 향후 흑자 발생이 가능할 수 있어 재정준칙을 형해화(형식만 있고 가치·의미가 없게 됨)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재정준칙 입법화, 또 무산되나


기재위가 재정준칙의 각종 문제를 지적하면서 입법화가 또 다시 무산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정처럼 정파색이 옅은 이슈에선 전문위원회의 검토보고서가 국회 상임위 논의 과정에서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더구나 재정준칙은 여야가 모두 반대해온 사안이다. 정부가 재정준칙 도입 시기를 2025년으로 미루긴 했지만, 코로나19 사태에 따라 사회적으로 ‘재정지출 확대’ 요구가 큰 상황에서 정치권이 재정준칙 도입을 찬성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기재부 2차관 출신의 기재위 간사로서 담당 경제재정소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창피하다”며 “국민을 기만하는 재정준칙”이라고 비판했다.

기재위 여당 간사인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재정준칙의 필요성, 취지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지금 도입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재정 상태가 안정적인 상황에서 준칙을 도입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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