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존스 홉킨스의 유산

머니투데이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2021.02.16 01:53
 미국 유수의 대학병원들 중 하버드(매사추세츠종합병원)와 쌍벽을 이루는 곳이 존스홉킨스대병원이다. 역대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수도 16명으로 하버드보다 1명 많다.
 
미국 볼티모어에 있는 존스홉킨스병원은 존스 홉킨스(1795~1873년)의 유언에 따라 설립됐다. 홉킨스는 퀘이커교도인 부친이 운영했던 영세 담배농장의 11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3년 동안 초급학교에서 공부한 것이 학력으로는 전부고 12세부터 농장일을 했다. 철도와 금융을 포함한 여러 사업에 성공해서 거부가 된 사람이다. 철도회사 볼티모어오하이오의 오너였다. 볼티모어오하이오는 미국 최초의 철도로 ‘철도의 어머니’로 불린다.
 
홉킨스는 52세에 은퇴해 자선과 사회사업에 주력하면서 78세까지 살았다. 독신이어서 자녀가 없었고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유산 중 700만달러(현재가치 약 1억5000만달러)를 대학과 병원 설립에 반반씩 쓰게 해서 1876년, 1889년에 대학과 병원이 각각 출범했다. 이 기부금 액수는 당시까지 미국 최대였다. 병원 건립에는 205만달러가 쓰였다. 홉킨스의 유산 액수가 의외로 적은 이유는 평생 학교와 도서관, 고아원 건립, 주택개량, 장학사업 등 볼티모어의 이런저런 공공사업에 이미 기부했기 때문이다.
 
홉킨스는 청년 때 사촌 엘리자베스와 사랑에 빠졌는데 사촌 간 혼인을 금기시하는 퀘이커 전통에 따라 결혼하지 못했고 두 사람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홉킨스는 재력이 생긴 후에는 대가족인 친인척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타계하면서는 존스홉킨스대학과 병원 건립 재원, 그리고 엘리자베스가 살 집 한 채를 남겼다. 엘리자베스는 그 집에서 사망할 때까지 거주했다.
 

존스홉킨스의대는 홉킨스 사후 17년에야 설립됐다. 학교 운영에 필요한 재원이 부족했던 것이 늦어진 이유다. 재원은 볼티모어의 재력가 딸들로부터 조달했는데 이들은 지원 조건으로 여학생의 입학 허가를 제시했다. 그래서 존스홉킨스의대는 미국 최초의 남녀공학 의과대학이고 병원에서도 여성의사의 파워가 남다르다고 한다. 이는 설립자의 철학과도 일맥상통한다. 홉킨스는 기업인으로서 평생에 걸쳐 노예를 쓰지 않았고 사업장에서 인종과 성차별을 금기시했던 진보적인 인물이었다. 1989년 미국 정부는 ‘위대한 미국인’의 한 사람으로 존스 홉킨스를 1달러 우표에 새겼다.
 
홉킨스가 대학을 설립한 지 88년 후인 1964년에 한 학생이 존스홉킨스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이름이 마이클 블룸버그다.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존스홉킨스에 진학했던 블룸버그는 대학 시절을 지내면서 180도 다른 사람이 됐다. 탁월한 우등생에 리더십까지 겸비한 스타가 됐다.
 
블룸버그는 학교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졸업 직후인 1965년 학교에 5달러를 기부했다. 하버드경영대학원을 거쳐 블룸버그뉴스를 창업했고 큰 성공을 거뒀다. 뉴욕 시장도 역임했다. 블룸버그재단을 만들어 기부와 사회사업을 시작했다. 2018년 모교에 18억달러를 장학금으로 기부해 존스 홉킨스의 창학 기금보다 20배가 많은 총액 33억달러 기부로 미국 역사상 최대의 교육기관 기부자가 됐다. 블룸버그는 존스홉킨스대 외에도 총기 규제, 기후변화, 비만 예방 등 사업에 모두 64억달러를 기부한 인물이다.
 
존스 홉킨스는 크리스마스이브에 타계해서 세상에 큰 크리스마스 선물을 남겼다고들 했는데 블룸버그라는 더 큰 선물을 남긴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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