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과 非녹색, 정의(定義)하지 않으면 이행도 불가능하다

머니투데이 법무법인(유) 지평 ESG센터(이지혜 변호사 대표집필)  | 2021.02.08 04:29

[2021, ESG 표준화 원년] < 2 >-②

편집자주 | 올해도 ESG는 경영·투자의 핵심이슈를 넘어 규제 등 형태로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머니투데이는 법무법인 지평의 ESG센터와 함께 EU(유럽연합) 등의 규제가 직간접적으로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찰하고 국내 규제 제정 과정에 어떻게 반영될 것인지를 전망하는 기획을 진행합니다.

환경정의 회원들이 2018년 2월2일 오전 서울 강남구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본사 앞에서 폭스바겐의 비윤리적 경영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폭스바겐이 디젤 배출가스 조작, 질소산화물 인간, 원숭이 흡입 실험 등 비윤리적 경영을 하고 있다 주장하며 책임있는 태도와 공식적인 입장발표를 요구했다. 2018.2.2/뉴스1



진짜 녹색, 가짜 녹색


폭스바겐은 2015년 ‘디젤 스캔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후 주가가 폭락했고 수십 조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렸다. 디젤 스캔들은 ‘위장 친환경’(greenwashing)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수많은 기업들이 ‘친환경’, ‘지속가능경영’을 앞다투어 내세우고 있는 오늘날, 제2, 제3의 디젤 스캔들은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위험 앞에 선 투자자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어떤 기업이 진짜 녹색기업인가?” “어떤 활동이 진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인가?”

고민의 해결은 ‘녹색’, ‘지속가능 경제활동’을 잘 정의(定義)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무엇이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인지 정의하는 공신력 있는 기준(택소노미, taxonomy; 분류체계)이 정립돼야 ‘진짜’ 지속가능 경제활동으로 자본의 흐름을 이끌고, 궁극적으로는 지속가능한 경제체제로 전환할 수 있다.



EU 택소노미 규정


택소노미 구축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EU의 택소노미를 살펴보자.
EU는 파리협정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민간자본이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에 투입돼야 한다는 판단 하에, ESG 중 특히 E(환경)에 방점을 둔 분류체계인 EU 택소노미 규정을 만들었다.

EU 택소노미 규정은 6가지 환경목표를 설정하고, 4가지 판단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경우를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으로 정의한다. 환경목표는 ① 기후변화 완화, ② 기후변화 적응, ③ 수자원, 해양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 및 보호, ④ 순환경제로의 전환, ⑤ 오염 방지 및 관리, ⑥ 생물다양성과 생태계 보호 및 복원이다. 판단조건은 ⑴ 하나 이상의 환경목표 달성에 상당한 기여, ⑵ 다른 환경목표에 중대한 피해를 주지 않을 것, ⑶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장치 준수, ⑷ 기술선별기준에 부합할 것 등이다.

EU 택소노미 규정은 환경에 중점을 두고 있으면서도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장치 준수’를 판단조건 중 하나로 도입했다. 이는 'UN 기업과 인권 지침' 등 ‘인권’과 관련된 일정한 국제 규범을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장치로 제시하고 이를 준수할 것을 요구한다.


한편, EU 택소노미 규정은 비재무정보 공시와 상호 연계돼 작용한다. 2022년 1월부터 유럽 비재무정보 보고지침(NFRD)의 적용을 받는 대기업들은 EU 택소노미에 따라 정보를 공개할 의무를 부담한다. 녹색금융상품을 제공하는 금융시장 참가자(투자기관, 금융기관 등) 또한 EU 택소노미 규정을 준수하는 투자자산의 비중을 공개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시장 참여자들은 공시된 자료를 바탕으로 택소노미가 규정하는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을 판별하고 투자 결정을 한다.



EU 택소노미 규정과 우리 기업


EU 내에서 활동하는 국내 기업을 포함해, EU 내 시장 주체는 EU 택소노미 규정을 반영한 정보공개 체계를 수립하고, 사업내용 또는 투자상품의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

대표적으로 걱정과 불만이 큰 업계는 천연가스 발전사업이다. 유럽의 상당수 천연가스 발전소는 현재 상황(유럽 천연가스 발전소의 평균 온실가스 배출량 300∼350gCO₂e/kWh)으로는 EU 택소노미 규정이 정한 엄격한 이산화탄소 배출기준(100gCO₂e/kWh 미만)을 충족할 수 없다. 서둘러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으로 분류될 수 없는 처지이다.

투자업계도 우려가 크다. 현재 시장에 있는 투자상품에 EU 택소노미 규정을 적용하면 어떤 상품도 이를 완벽히 충족할 수 없다. 투자업계는 ‘녹색금융상품’으로 분류하기 위해 마련해 둔 자체적인 기준을 EU 택소노미 규정에 맞게 대폭 개편해야 한다. 그와 같이 해야만 투자자금을 더 유치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EU에 진출하지 않은 국내 기업도 EU 택소노미 규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 정부를 포함해 전 세계가 EU 택소노미 규정에 관심을 갖고 이를 중요한 표준으로 삼고 있으므로, 결국에는 국내외에서 경제활동을 할 때 EU 택소노미 규정을 활용한 각국의 택소노미 규정을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지혜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ESG센터) / 사진제공=법무법인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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