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눈치 봤나…반값에 '면죄부' 산 애플

머니투데이 세종=유선일 기자 | 2021.02.04 04:08
[서울=뉴시스]김명원 기자 =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룸에서 애플코리아의 광고비 책임 전가에 대한 동의의결 최종 확정 브리핑을 하고 있다. 동의의결이란 법을 위반한 사업자가 자진시정안을 내놓으면 공정위가 이를 심사하는 제도다. 타당성이 인정되면 위법 여부를 따지지 않고 사건을 종결한다. 애플은 자진 시정안을 마련해 지난해 6월 동의의결을 신청했다. 2021.02.03. kmx1105@newsis.com

애플의 이동통신사 대상 갑질 혐의에 대한 ‘면죄부 값’이 1000억원으로 결정됐다. 일각에서 1800억~2000억원을 주장했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애플이 이행하기로 한 거래 관행 개선, 해외 경쟁당국 제재 수준 등을 고려하면 1000억원은 작은 규모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공정위가 정식 제재 절차를 밟았을 경우 애플이 지불해야 할 과징금, 소송비용 등을 고려하면 이번 조치는 여전히 ‘봐주기’ 논란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수리비 안 떠넘기고, 상생에 1000억 투입”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애플의 아이폰12. 2020.10.30. bjko@newsis.com

공정위는 애플코리아의 동의의결안을 확정했다고 3일 밝혔다. 동의의결은 기업의 자진시정·피해구제를 전제로 위법 여부를 가리지 않고 사건을 신속하게 종결하는 제도다.

애플은 공정위 제재를 피하는 대신 ‘거래질서 개선’과 ‘상생지원’을 추진하기로 했다. ‘거래질서 개선’은 이통사와 거래에서 갑질 논란이 일었던 광고비·수리비 떠넘기기, 일방적 계약 해지, 특허 무상제공 등을 개선하는 것이 골자다.

‘상생지원’은 한국 소비자, 중소기업을 위해 총 1000억원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는 △제조업 연구개발(R&D) 지원센터 설립(400억원)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디벨로퍼(Developer) 아카데미 설립(250억원) △교육 사각지대, 공공시설 디지털 교육 지원(100억원) △아이폰 사용자 수리비용 지원 등(250억원)으로 구성됐다.


1000억, 왜 안늘었나


[서울=뉴시스]김명원 기자 =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룸에서 애플코리아의 광고비 책임 전가에 대한 동의의결 최종 확정 브리핑을 하고 있다. 동의의결이란 법을 위반한 사업자가 자진시정안을 내놓으면 공정위가 이를 심사하는 제도다. 타당성이 인정되면 위법 여부를 따지지 않고 사건을 종결한다. 애플은 자진 시정안을 마련해 지난해 6월 동의의결을 신청했다. 2021.02.03. kmx1105@newsis.com

애플이 상생지원에 투입하기로 한 ‘1000억원’은 지난해 8월 공정위가 이미 발표한 바 있다. 당시 공정위는 동의의결안을 발표한 후 업계·타부처 의견을 수렴해 이번에 최종 결론을 내렸는데, 상생지원 규모는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의견 수렴 과정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규모를 2000억원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은 광고업계가 추정한 ‘광고비 떠넘기기’ 규모가 1800억~2700억원이라며 규모를 최소 800억원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이런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다.

송상민 공정위 시장감시국장은 “영업 비밀이 있어 자세한 금액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거래질서 개선을 통해) 광고기금 조정, 보증수리 촉진비 폐지로 이통사 부담이 완화된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했다. 아울러 “(동일한 애플 사건에서) 대만 경쟁당국은 과징금 8억원을 부과했고, 프랑스 경쟁당국은 650억원 부과를 위한 소송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1000억원은 결코 작은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생지원 ‘규모’가 중요한 이유는 공정거래법 규정 때문이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동의의결에 따른 기업의 시정방안은 ‘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될 경우 예상되는 시정조치, 그 밖의 제재와 균형’을 이뤄야 한다. 공정위가 정식 사건으로 처리했을 때 부과할 과징금·시정명령이 동의의결에 따른 상생지원 등과 ‘비슷한 수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식 사건 처리 시 애플이 감당해야 하는 행정소송 비용까지 고려하면 1000억원은 결코 충분한 수준이 아니고, 결국 공정위가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공정위, 면죄부를 왜 허락했나


(서울=뉴스1) 김진환 기자 =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 애플스토어. 2020.10.30/뉴스1

공정위가 면죄부 지적을 감수하면서 애플의 동의의결 신청을 받아들인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우선, 애플이 미국 기업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미국 기업들은 공정위 조사·심의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강하게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공정위로서도 통상 마찰 가능성에 대비해 해당 부분을 더욱 세심하게 살핀다. 결국 공정위 조사관 차원에서 ‘심의에서 애플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더라도, 규정상 동의의결 요건을 갖췄기 때문에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동의의결 자체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부수법안으로 도입된 제도다.

조성욱 공정위원장은 “동의의결은 원칙상 엄격한 요건, 절차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에 어떤 기업을 봐준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제도”라며 “법 위반 정도가 객관적으로 명백하고, 고발 사건이 될 정도라면 동의의결을 승인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동의의결의 최대 장점인 ‘신속한 피해구제’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가 정식 사건으로 처리해 애플에 과징금을 부과하더라도, 해당 과징금은 국고로 귀속된다. 결과적으로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이통사·소비자는 별도 소송을 거치지 않는 한 구제를 받기가 어렵다.

조 위원장은 “동의의결 승인 후 이행 과정을 잘 살피는 것이 신뢰를 회복하는 방안”이라며 “애플은 회계법인을 이행 감시인으로 정해 반기마다 보고를 하도록 했는데, 이와 관련 더 개선할 방안이 있는지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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