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및 한중간 고위급 대화 후 양국이 각각 내놓은 발표에서 시각 차이가 엿보인다. 지난 26일 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정상통화 후 한국과 중국은 각각 다른 내용에 강조점을 두고 발표했고, 하루 후 이뤄진 조 바이든 행정부 첫 한미 외교장관 간 통화에서도 미묘한 시각차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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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정상 통화 후 한중발표 '방점' 달라 ━
"북한이 노동당 8차 대회에서 밝힌 대외적 입장은 미국·한국과 대화의 문을 닫지 않았다는 것으로 본다"는 정상 발언치고 상당히 구체적 내용까지 시 주석 발언으로 발표됐다. 정부가 올해 외교정책의 최우선으로 둔 대북 대화 재개의 가능성 제고에 힘을 싣는 내용들이다. 한국 정부는 바이든 정부와도 '대북전략 조율'을 우선적 의제로 두고 있는데, 이 목표를 위한 메시지가 '시진핑의 입'을 통해 발신됐다고 볼 수도 있다.
중국 발표 내용은 강조점이 확연히 달랐다. 중국 관영 인민일보는 27일자 1면에 한중정상통화 소식을 보도하면서 크게 세 문단 중 마지막 문단을 문 대통령 발언을 직접 인용하는 형식으로 채웠다. 이 ’직접인용 문단‘의 첫 부분이 “문 대통령은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화답했다"는 내용이다.
이어 ”시 주석의 강력한 지도하에 중국은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해 세계 주요국 가운데 유일하게 플러스 경제 성장을 이뤄낸 국가가 됐다, 중국의 국제적 위상과 영향력이 날로 강화되고 있고, 두 번째 100년 분투 목표 달성을 향한 중요한 발걸음을 내디뎠다”는 내용이 문 대통령의 발언으로 소개됐다.
직전 한중 정상통화인 지난해 5월 중국 관영매체 보도와 비교했을 때 문 대통령의 발언을 직접인용한 분량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점도 눈에 띈다. 방역성공·경제성장 등 자국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 정상의 입을 통해 중국 내부에 선전하려는 정치적 필요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남북·북미대화 관련 언급은 없었다. 동시에 한중관계 관련, '중점 분야 협력심화', '국제적 사안 협조강화'라는 모호한 표현을 썼다. 어떤 분야·사안인지 지칭하지 않는 '외교적 수사'로 읽힌다. 민감한 분야에 대해서는 해석의 여지를 남기며 중국이 듣고 싶고 내부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 위주로 통화를 ’활용‘ 했다고 볼 수 있다.
총 40분간의 통화에서 한중 서로가 자국의 우선순위에 따라 메시지를 선택해 배열한 결과, 문화교류·기후· 방역협력 외엔 결과적으로 다른 내용으로 발표가 채워진 것이다. 양갑용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양국 발표 내용이 확연이 다른 건 양국 모두에게 국내 정치가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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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외교장관 통화 후 한미일 3국협력·인태 언급 안 한 韓━
미 국무부는 "블링컨 장관은 미한일 3자협력 지속의 중요성과 북한 비핵화의 필요성 지속, 동맹 강화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약속을 강조했다"며 한미일 3국 협력을 북핵 보다 먼저 언급했다. 이후 블링컨 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강 장관과의 통화를 언급하면서 한미동맹을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지역을 위한 린치핀(핵심축)이라 했다.
한국측 발표엔 미국의 중국 견제 전략을 대표하는 '한미일 3국 협력',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등의 표현이 빠졌다. 미국의 중국 견제 시각을 따라가지 않으려는 의도 내지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동기에서 이뤄진 '생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인태란 공간개념 자체가 중국 견제를 포함하는 만큼, 한국이 이를 언급하지 않은 건 중국을 의식했기 때문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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