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 법률만 1100개…"교도소 담장 위 걷는 CEO"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박소연 기자, 세종=박경담 기자 | 2021.01.27 07:31

[중대재해법 고심 깊어지는 재계]



"중대재해처벌법 불확실성 해소 먼저"



"안전관리에 소홀하겠다는 게 아니다. 실효성 없는 법안으로 언제든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내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법적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선 정부와 국회가 보완입법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6일 법무법인 세종과 공동으로 개최한 '바뀐 노동관계법 대응방안 설명회'에서도 중대재해법이 도마에 올랐다. 법적 불확실성을 둘러싼 현장의 혼란이 재계는 물론, 노동현장에서도 터져나온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근로자가 사망하거나 사고를 당했을 때 경영진을 징역형에 처하도록 한 법이다. 법적으로 규정이 모호하고 사업주에게 지나친 책임을 지운다고 반발했지만 국회는 심사 한달만에 법안을 의결했다. 당장 내년부터 50인 이상 기업이 적용 대상이 되면서 기업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대기업·중기·노동현장 모두 "법적 규정 모호"


이날 설명회에서 강연자로 나선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기업의 대응만으로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비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정부가 하루속히 하위법령을 마련해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둘러싼 법적 불확실성을 해소해 기업들이 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무엇보다 국회 차원의 보완입법을 강조했다.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르면 법에 규정된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성실히 실천하더라도 재해가 발생하면 처벌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는 점에서 경영책임자 등이 의무이행을 충분히 했다면 면책하는 조항을 둬야 한다는 얘기다.

김 변호사의 이런 지적은 현장에서도 어느 정도 받아들여진다. 당장 본인의 안전에 누구보다 민감한 현장 근로자들조차 이 법이 과연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해줄 장치인지 고개를 갸웃하는 사례가 적잖다. 노동집약 산업인 조선업이 대표적이다.

해외 선사들은 현장 안전 관리를 완성도 높은 선박과 해양플랜트 건조의 제1조건으로 내세우기 때문에 실적을 위해서라도 안전에 소홀할 수 없다. 한국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업체들은 200여명 안팎의 안전관리부서를 운영하면서 매년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교육을 실시한다. 하지만 안전사고는 멈추지 않는다.

인력이나 자본 여력이 딸리는 중소기업의 상황은 더 급하다. 이날 설명회를 지켜보던 한 중소기업 인사는 "교통사고 처벌 수위를 아무리 높인다고 해도 도로 위 차량 사고를 '제로'로 만들 순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중대재해법이 현장 상황을 모르는 탁상 입법이라는 지적과 함께 보완입법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더불어민주당에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 중대재해의 범위를 일정 기간 사망사고가 반복적으로 일어난 경우로 한정하고 사업주의 의무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도록 보완입법해 달라는 의견을 전한 것도 이런 대목에서다.

◇기업 차원 대비 한계…하위법령 마련 등 보완 절실


정부와 정치권의 보완입법을 마냥 기다릴 수 없는 기업에서는 각자 컴플라이언스 구축에 나서고 있다. 문제는 산업안전 컴플라이언스 구축이 법제도 준수사항 파악과 사업장 특성별 안전리스크 분석, 관리체계 정비, 상황별 대응방안 마련 등 준비할 사항이 많고 시간도 상당히 소요되는 작업이라는 점이다.

김 변호사는 "이런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정부가 하위법령을 제정하기까지 기다리다간 기업들이 실기할 수 있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컴플라이언스 구축에 나서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날 설명회에서는 개정된 노동조합법에 대한 논의도 진행됐다. 해고자와 실업자 노조원의 사업장 출입과 사업장 내 노조활동 허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가 쟁점이 됐다.

김 변호사는 "해고자·실업자의 노조활동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갈등과 다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사전에 '사업장 내 활동규칙'을 마련하는 것이 분쟁을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조언했다.

국회는 지난 연말부터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을 처리한 데 이어 다음달 중 집단소송법·징벌적손해배상제 등의 입법도 마무리할 예정이다.

경제계 관계자는 "최근 국회를 통과한 규제법안의 시행 시기가 한번에 몰려 있기 때문에 기업들의 고민이 어느 때보다 크다"고 말했다.

심재현 기자



"CEO 하려는 사람 없을 것"…보완입법 시급 목소리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심경으로 사업을 하라는 겁니다."

26일 한 재계 관계자는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중대재해처벌법의 보완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CEO(최고경영자)를 하려는 사람이 없어질 거란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 너무 모호하고 포괄적…"정부·국회 나서야"

중대재해처벌법을 두고 재계나 노동계 양쪽에서 불만이 나오는 이유는 실효성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사고를 100% 예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처벌 수위를 높인다고 해서 능사는 아니라는 얘기다. 표현이나 입장 차이는 있지만 노사 모두 사고 예방을 위해 보다 촘촘한 제도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내년 시행을 앞둔 법안은 책임 소재 등이 불명확한 데다 적용 범위가 너무 넓다.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 중단을 위한 경제단체 입장 발표에서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이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반원익 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김영주 한국무역협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영윤 대한전문건설협회 회장,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사진=김휘선 기자

국회에서 법안 심사 도중 '시민재해' 개념을 추가하면서 기업들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법안은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중대산업재해뿐 아니라 시설 이용자가 피해를 볼 수 있는 시민재해도 중대재해에 포함했다. 법무부 소관의 시민재해와 노동부 소관의 산안법, 근로자 보호와 공중의 보호가 뒤범벅되면서 다른 나라에서 유례없는 법안이 탄생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처음엔 산업안전보건법의 특별법 개념으로 생각했는데 가습기 사건과 세월호 참사 얘기가 나오면서 시민재해가 추가됐다"며 "법 체계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시민재해까지 처벌대상으로 포함되면서 기업 입장에선 상당히 포괄적이고 강력한 처벌규정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사업주 의무조항 구체화 필요…안전·보건 법률만 1100여개

법령의 모호성과 관련해선 사업주가 지켜야 할 의무조항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상호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처벌법이 될 이번 법안에서 기업이 정확히 무엇을 지켜야 할지가 모호하다는 것이 재계의 가장 큰 우려"라며 "법령에 제시된 의무조항 4가지 중 2개가 애매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재석 266인, 찬성 164인, 반대 44인, 기권 58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뉴스1

이 팀장은 "일례로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와 관련해 관련 법률만 약 1100개에 이르러 기업이 일일이 파악하기 어렵다"며 "대통령령으로 세부 내용을 정하기로 했지만 기업으로선 마냥 손 놓고 기다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기업 "실제적 위협 느낀다, CEO가 모든 것 책임질 수 없어"

일선 기업들이 느끼는 부담은 상당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경영진들이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선언적 위협이 아닌 실제적 위협을 느끼고 있다"며 "최근 기업들이 안전과 환경 기준을 크게 강화하지만 재해는 100% 막기 어려운 불가항력적인 부분도 있어 우려가 높다"고 말했다.

한 디스플레이 업체 관계자는 "모든걸 CEO가 책임지라는건 과하다"며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업무가 세분화되어있는데 모든 걸 CEO가 어떻게 다 책임지라는 것인가. 책임소재가 너무 광범위하고 CEO가 경영활동에 집중 못해 사업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변호사는 "현재 법안을 구체화하는 시행령이 빠르고 정확히 만들어져야 한다"며 "현재 법안상으론 적용범위가 과도하게 넓어 작은 영세업체들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세월호 사건을 같은 선상에서 처벌할 수 없다"며 "중대재해의 성격에 따라 처벌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소연 기자



중대재해법 경영책임자 의무, 상반기 안에 구체화



정부는 1년 뒤 시행 예정인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상 경영책임자가 지켜야 할 의무를 오는 상반기 안에 구체화할 계획이다. 2024년부터 중대재해법을 적용받는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선 낡은 기계 교체 등 안전투자를 지원한다.

26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대재해법은 이날 공포돼 내년 1월 27일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에 먼저 적용된다. 5인~49인 사업장은 2024년부터 시행된다.

중대재해법은 경영책임자가 안전 투자 등 의무를 다하지 않아 사업장에서 노동자, 시민의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1년 이상 징역 또는 벌금형을 내릴 수 있는 법이다.

경영책임자의 의무는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이행에 관한 조치 △재해 재발방지 대책의 수립 및 이행에 관한 조치 △중앙행정기관 등이 관계 법령에 따라 시정 등을 명한 사항 이행에 관한 조치 △안전·보건 관계 법령상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 등 4가지다.

중대재해법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및 이행에 관한 조치와 안전·보건 관계 법령상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를 대통령령에서 정하도록 했다. 경영계는 경영책임자의 의무 조항을 시급히 구체화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고용부는 산업계, 노동계 의견수렴을 거쳐 올해 상반기 안에 관련 내용을 담은 시행령을 입법예고할 계획이다.

고용부는 아직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상 경영책임자 의무보다 넓히고 업종별·규모별로 차등화하겠다는 원칙만 두고 있는 상태다. 현재 산안법에는 경영책임자가 매년 안전보건관리계획을 수립해 이사회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중대재해법을 도입하면 경영책임자는 회사 내에 안전보건을 챙기는 조직이나 예산을 둬야 한다. 작업장 안전관리 매뉴얼을 제작하거나 환경 유해위험 평가 체계도 구축해야 한다. 현재 경영책임자가 이사회에 제출하는 안전보건관리계획을 얼마나 잘 이행하는지 따져본다는 것이다.

고용부는 5~49인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선 중대재해법 시행에 앞서 안전투자를 지원할 계획이다.

안전투자혁신사업이 대표적이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2009년 6월 30일 위험기계 인증제도 도입 이전에 생산돼 미인증 상태로 운영 중인 이동식 위험기계 교체비용을 지원한다. 이동식 위험기계는 이동식 크레인, 고소작업대, 리프트 등 3종이다. 뿌리산업 위험·노후공정 개선비용의 절반도 지급한다. 올해 관련 예산은 327억원이고 앞으로 3년 동안 총 1조원을 투입한다.

박경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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