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아, 핼미는 눈물에 밥을 말았다"…수목장에 놓인 '손편지'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 2021.01.22 16:04

할머니가 손수 지은 '설빔 때때옷'과 '손편지', 정인이 수목장에…"저 별까지 가려면 밤새 지은 천사옷 입고 가야지"

심현옥 할머니께서 정인이 수목장에 두고간 설빔 때때옷과 손편지. '걸어서 저 별까지 가려면 밤새 지은 천사옷 입고 가야지', 그런 마음으로 5일간 만든 옷이라 생각하니 시큰하다./사진=독자님(@osun***) 제공
정인이의 설빔 때때옷

아가야
할머니가 미안해

친할머니
외할머니
엄마 아빠 다
어디들 있는게냐?

한 번도 소리내어 울어보지 못했을
공포 속에 온몸 다디미질을 당했구나

췌장이 터지고
뼈가 부서지도록 아가야
어찌 견디었느냐

미안하구나 미안하구나

푸른하늘 한조각 도려내어
내 손녀 설빔 한 벌 지어줄게!

구름 한줌 떠다가
모자도 만들고

정인이 눈을 닮은 초승달
꽃신 만들어

새벽별 따다가
호롱불 밝혀주리니

손 시려 발 시려
온 몸이 얼었구나

할머니 품에
언 몸 녹으면
따뜻한 죽
한 그릇 먹고 가거라

지리산 호랑이도
새끼를 잃으면
할머니 울음을 울겠지

아가야 아가야
세상이 원망스러워도

뒤돌아 손 한 번

저어주고 가려므나

걸어서 저 별까지 가려면
밤새 지은 할미
천사 옷 입고 가야지

천사들이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제

정인이 왔어요
라고
큰 소리로 외치거라

부서진 몸
몰라볼 수 있으니

또박 또박
정인이라고…

아가야!
너를 보낸 이 핼미는
눈물에 밥을 말았다

2020년 1월 17일 일요일
과천에서 할미가



※ 기자의 말

이 손편지는 심현옥 할머니께서 정인이의 수목장에 두고 가신 걸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5일동안 손수 만드신 옷과 직접 쓰신 편지를 두고 가셨다 합니다.

우연히 독자님(@osou****)께 이 편지를 제보 받고 읽다가 울었습니다.
자그마한 정인이가 할머니 따스한 품에 안긴 모습이 떠올라서요.

정인이가 부디 오래 기억되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제대로 바뀌길 바랍니다.
손편지 내용 외에 다른 글은 방해가 될 것 같아 적지 않았습니다.

심현옥 할머님, 귀한 편지 남겨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정인이를 기억할만한 어떤 이야기든 human@mt.co.kr로 편히 제보주세요.
잊혀지지 않도록 계속 쓰겠습니다.

남형도 기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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