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기 “아들 사망보험금 기부하는 날, 인생의 기적 찾아와”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 2021.01.22 05:53

[인터뷰] 12년만에 세상 떠난 아들에게 보내는 에세이 ‘내가 흘린 눈물은 꽃이 되었다’ 펴낸 탤런트 이광기

탤런트 이광기는 12년 전인 2009년 신종플루로 아들 석규 군을 잃었다. 에세이 '내가 흘린 눈물은 꽃이 되었다'는 12년 만에 처음 아들과 아들을 통해 달라진 자신의 인생에 대해 기록한 이야기다. /사진=김휘선 기자

12년 전 신종플루로 아들 석규가 세상을 떠나던 날, 탤런트 이광기는 오열했다. 아내도 “따라가겠다”며 모든 희망의 끈을 놓았다. 장례를 치르고 나선 삶이 더 지옥 같았다. 어디를 지나가도 “저 연예인, 아들 죽었잖아”하는 수군거림을 피할 수 없었다.

절망이라는 세계에 갇혀 모든 게 끝날 줄 알았던 인생에 전환점을 마련한 첫 번째 계기가 아들 사망보험금이었다. 부부는 아들이 자신들을 위해 남긴 생활비를 도저히 건드릴 수 없었다.

이광기는 당시 월드비전 친선대사였던 탤런트 선배 정애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배, 제가 이 귀한 생명 같은 돈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도와주세요.” 그렇게 그의 인생의 첫 번째 기부가 시작됐다.

석규를 잃기 전 이광기의 인생에서 기부나 나눔 같은 가치는 딴 세상 이야기였다. 때론 명품을 걸치며 연예인 삶을 유지했고, 재산 증식 같은 물욕도 생존의 중요 화두로 여겼다. 석규를 보낸 후 그의 삶은 우연과 기적이라는 키워드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12년 만에 석규를 그리워하고 석규를 통해 달라진 인생을 그린 에세이 ‘내가 흘린 눈물은 꽃이 되었다’에는 그런 아빠의 말하지 못한 사연과 절망을 딛고 일어선 희망의 열매들이 알알이 맺혔다.

탤런트 이광기와 아들 석규 군. /사진제공=다연출판사

“책 내자는 제안은 많았지만, 선뜻 얘기 꺼내기가 조심스러웠어요. 그러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신종플루로 아들을 잃은 저처럼 슬픔에서 못 벗어나는 이들을 어떤 식으로든 위로해주고 싶었어요. 아들을 통해 제가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처럼 작은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죠. 무엇보다 석규가 남긴 선물 같은 아들 준서(석규 동생)를 보며 혹시 ‘석규를 잊게 될까’ 두려운 마음도 솔직히 있었어요. 책을 쓰면 고이고이 간직하며 기억 속에 담아둘 수 있을 것 같았죠.”

석규가 떠난 뒤 해가 바뀌고 3개월이 지난 2010년 1월 12일 아이티에 지진이 일어나 30만 명 이상이 죽었다. 먼 타국 이야기처럼 들렸지만, 이광기는 무의식적으로 끌렸다. 그리고 무작정 떠났다.

“그곳 고아원을 방문했는데, 유독 한 아이만 울고 있는 거예요. 세손이라는 이름의 그 아이에게 나이를 물어보니, 석규랑 같은 여덟 살이더라고요. 깜짝 놀라 ‘아저씨가 안아줄게’하고 안았는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참 서로 펑펑 울고 있는 거예요. 그때 느꼈어요. 제가 여기에 온 이유를요. ‘이 아이를 품기 위해 내가 여기에 왔구나’하고요.”

아이티는 그렇게 2년마다 한 번씩 방문하는 제2의 고향이 됐다. 최빈국 아이를 위해 학교도 지었다. 이곳 기부금과 봉사 활동비를 모으기 위해 잃어버린 어릴 때 그림 그리는 취미를 되살렸다.

미술 재능을 살려 작품을 만들고 이 뜻에 동조하는 기성 작가들이 작품을 또 준비해 경매 사이트에 내놓고 이 연대를 통해 모인 기금을 기부하거나 신진 작가 양성 사업에 쓴다.


탤런트 이광기가 아이티에서 만난 아이들. 그는 "세상의 아이들을 내 자식처럼 돌보고 섬기겠다"며 2년에 한번꼴로 문화예술을 통해 아이티에 방문, 나눔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진제공=다연출판사

“석규 사망보험금 기부하고선 모든 활동을 쉬었어요. 그러다 보니, 돈 벌 궁리가 막연했죠. 심지어 국세청에서 주는 세금 환급으로 버티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정말 기적처럼 모든 일이 풀리더라고요. 지인 외식업체에서 ‘오픈 사인회’를 해달라고 해서 생계를 유지했고, 방송 예능 프로그램도 하나씩 들어왔어요. 아이티 다녀와서 ‘학교를 지어야겠다’고 결심하고선 작가들 40명이 참여해 모은 기부금이 1억 700만원이었어요. 무언가 기부하고 나눌 때 이 의식을 오랫동안 이어가려면 사명감이 아닌 행복감에 젖어야 한다는 사실도 새로 깨달았죠.”

필리핀에서 세 명의 남자아이를 받는 분만실 봉사활동을 하던 중 이광기에게 커다란 깨달음 하나가 더 다가왔다.

“우리 부부도 다시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을 했는데, 쉽지 않았어요. 필리핀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보니, 그동안 ‘하느님의 자식’이라고 말하던 제가 너무 부끄럽더라고요. 사실 말로만 그렇게 했지, 실은 ‘내 자식만 자식’이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 하는 부끄러움요. 그 이후 제 기도가 바뀌었어요. 나를 위한 것이 아닌 내 주변 사람을 위한 기도로요. 저 아이들을 세상의 아이로 품을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하고 그 아이를 섬기겠다고 다짐했죠.”

그렇게 기적은 또 찾아왔다. 아내에게 임신 소식이 들린 것이다. 그리고 석규가 떠난 지 햇수로 3년 만에, 석규가 가장 좋아하는 ‘눈 오는 날’이자 아이티에 지진이 일어나던 1월 12일에 셋째 준서가 탄생했다.

모든 걸 내려놓을 때 다시 모든 걸 얻을 수 있는 ‘우연의 기적’은 이광기 인생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화두였다. 연극 ‘가시고기’의 배역을 준서를 임신하기 전 필연처럼 맡고 그 출연료 전액을 암 환우에게 기부하는 일련의 과정은 아빠의 숨겨진 긍정 에너지를 마음껏 불어넣으려는 석규의 보이지 않는 선물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들 석규 군을 잃고 12년만에 에세이 '내가 흘린 눈물은 꽃이 되었다'를 펴낸 탤런트 이광기. /사진=김휘선 기자

아이티 봉사활동 이후 그는 사진을 배워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2016년 첫 개인전 ‘삶이 꽃이라면 죽음은 삶의 뿌리다’를 통해 삶(피어나는 꽃)과 죽음(시들은 꽃)이 동시에 놓은 꽃의 양면에서 죽음이 자신이 보는 세계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처음 자각했다.

‘내가 흘린 눈물은 꽃이 되었다’ 역시 눈물은 절망의 상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절망의 눈물을 머금고 자란 꽃은 희망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걸 석규를 통해 깨달은 것이다.

“이제 아들이 있는 하늘을 향해 이렇게 말해요. 석규아, 아빠 잘하고 있지?”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태연한 척했지만, 그의 눈가는 여전히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탤런트 이광기 가족. 12년 전인 2009년 신종플루로 사망한 석규 군(가운데)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가족 사진에 맞춰 넣었다. /사진제공=다연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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