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2021년, ‘학습 중간층’을 복원해야

머니투데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 2021.01.22 05:10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그늘 없는 성공은 없다. K-방역 역시 마찬가지다. 시민과 의료진, 교사 등 ‘작은 영웅들’의 헌신 덕분에, 1년 가까운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교육은 이어질 수 있었다. 외국과 비교하면, 자랑할만한 성과다. 하지만 그늘도 짙다. ‘학습결손’이 대표적이다.

위기는 평등하지 않다. 어려운 사람에게 더 가혹하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처럼, 지금도 약한 이들이 더 큰 피해를 입는다. 학교에서도 가정형편이 어렵고, 성적이 낮은 학생들이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낯선 위기 속에서 기존 교육복지 안전망은 충분한 역할을 하기 어려웠다. 교실 문이 닫히고, 친환경 무상급식이 제공되지 않게 되자, 교육과 돌봄에 구멍이 생겼다.

가정환경의 격차가 학생의 학업과 건강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교육양극화는 더 심해지고, 기초학력을 갖추지 못한 학생 비율은 늘어나고 있다. 이는 교육과 돌봄에 함께 걸쳐 있는 문제다. 저학년 학생의 기초학력 결핍은 가정 돌봄 수준과 맞물려 있다. 기초학력 결핍과 돌봄 공백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다. 장시간 고단한 노동을 하는 맞벌이 부모를 둔 학생이 텅 빈 집안에 홀로 방치된 채, 가공식품으로 끼니를 때우는 모습을 언제까지 그냥 두고 봐야 하나. 방치된 학생들이 지식과 감성을 충분히 기를 기회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이런 상황이 제대로 조명되지 않는 배경 역시 불평등과 관련이 있다. 집안 환경과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큰 변화를 겪지 않았다. 수능 결과 역시 기존 상위권 학생들은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여론 주도층의 시선이 상위권에 쏠린 탓에 중하위권의 현실은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성적 중위권을 뜻하는 ‘학습중간층’이 얇아지고 있다. 어른들의 소득 및 자산 분포에서 벌어지는 현상이 학생들의 성적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우리 사회 위기의 한 표현이라고 본다.


‘학습중간층’은 다시 두터워져야 한다. 중간 이하 학생들이 충분한 기초학력을 갖추고, 상위권에서 중위권으로 떨어지는 학생 역시 줄어들어야 한다. 하위권에서 중위권으로, 중위권에서 상위권으로 올라가는 학생 역시 늘어나야 한다.

기초학력에 대한 강조가 자칫 시험 점수만 의식한 교육을 옹호하는 것으로 오해될까 두렵다. 학력은 시험을 잘 치는 수단이 아니다. 물론 이런 오해가 여전히 팽배하지만, 결국 넘어서야 한다. 우리가 강조하는 학력은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역량이다. '교육은 희망의 사다리'라는 표현을, 교육이 계층상승의 수단이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는 안 된다. 교육을 수단으로 여기면, 단지 교육을 많이 받았거나 시험 성적이 좋다는 이유만으로도 기득권을 누려야 한다는 태도가 내면화되기 쉽다. 또 교육을 수단으로 여기며 쏟은 비용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에 기득권을 무리하게 옹호하기도 한다. 이런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교육은 성공이 아닌 성장의 길이어야 한다. 학력을 보장하는 목적 역시 시험 점수 때문은 아니어야 한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런 관점에서 기초학력을 보장하고 학력 격차를 줄이려 한다. 올해부터는 기초학력협력교사를 배치한다. 또 중1 자유학년제 기간을 학력 수준을 진단하고 결핍을 보완하는 기회로 활용하기로 했다. 이 밖에도 다양한 정책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 이들 정책의 공통분모는 ‘맞춤형 교육’이다. 사람은 누구나 배우는 속도가 제각각이다. 조금 느리게 배울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배움의 기회마저 사라져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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