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고 베끼고 '입법 숫자놀음'…7개월간 7000건 쌓였다

머니투데이 정현수 기자, 김상준 기자, 이원광 기자 | 2021.01.07 06:00

[the300] ['입법공장' 국회의 민낯]



국회의장도 총리도 '브레이크' 걸지만 멈추지 않는 '과다' 경쟁


19대부터 '과잉입법 규제' 제안…의원들 외면 줄줄이 '좌절'…"법안발의 자체 막을 수 없어" 자정 노력 절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해 6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여야 의원들이 21대 국회에서 의원입법에 대한 자체적 규제심사제도가 반드시 도입될 수 있도록 뜻을 모아달라"고 말했다. 이날 시정연설은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를 위해 열렸다. 추경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의원입법 문제가 거론된 것이다.

정 총리는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을 지냈다. 6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누구보다 국회의 상황을 잘 안다. 그런 정 총리가 의원입법의 규제심사제도를 거론한 것은 과잉입법 우려 탓이다. 21대 국회에서는 역대 최악의 입법공장으로 기록된 20대 국회보다도 많은 법안이 발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 본연의 업무가 법을 만드는 것이지만 국회의 입법 시스템을 초과한 과잉입법은 졸속법안을 만든다는 비판을 받는다. 특히 과도하게 발의되는 법안 중 상당수가 규제를 담고 있다. 제대로 된 심사도 받지 않고 발의되는 규제 법안을 제어하자는 게 정 총리의 당부 사항이었다.

21대 국회 국회의장을 맡은 박병석 의장 역시 과잉입법 문제가 주요 관심사다. 박 의장은 지난해 11월26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이 주최한 '2020 대한민국 최우수법률상' 시상식에 참석해 "과잉입법은 경계대상"이라고 말했다. 정치학자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과잉입법 문제를 자주 거론한다.

전직 국회의장 출신의 국무총리도, 현직 국회의장도 과잉입법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국회의 입법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정작 법안을 발의하는 국회의원들은 소극적이다. 의원입법에 제한을 두자는 제안과 지적이 줄곧 나왔지만 그때마다 빛을 보지 못했다.

◇ "스스로 자정하자는 움직임 있었지만"

19대 국회에서는 당시 새누리당의 이한구 의원이 국회법 개정안을 2013년에 내놓았다. 국회에 규제를 신설·강화하는 법안을 제출할 경우 규제사전검토서를 첨부하도록 하고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해당 법안을 심사할 때 규제영향평가를 거치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정부가 규제를 신설할 때 규제영향분석서를 작성하는 것처럼 의원입법 발의에도 같은 제한을 두자는 취지에서다. 이 전 의원은 법안을 발의하면서 "최근 의원발의 법률안이 증가함에 따라 의원발의 법률안이 과도한 규제도입과 규제 수 증가의 원인이라는 비판이 있다"고 밝혔다.

민현주 당시 새누리당 의원도 2015년 국회입법조사처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입법조사처 업무에 법률안 입법영향분석을 추가하는 내용을 담았다. 19대 국회의 국회법과 국회입법조사처법 개정안은 모두 의원들의 과도한 입법행위를 제한하자는 취지였지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는 김종석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2016년 의원입법에 한해 규제영향분석을 제출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을 발의했다. 지상욱 당시 새누리당 의원 역시 같은 해에 규제 신설 법안의 규제영향분석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백재현 전 의원이 2018년 입법조사처의 법률안 입법영향분석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의 국회입법조사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20대 국회에서도 이들 법안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채택되지 않았다.

(서울=뉴스1) 박세연 기자 = 정세균 국무총리가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9회국회(임시회) 제6차 본회의에 참석해 2020년도 제3회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정부의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2020.6.29/뉴스1

◇ "정량평가 자제하자"

21대 국회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은 지난해 8월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의원입법에 한해 규제영향분석을 제출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는 내용이다. 20대 국회 김종석 당시 의원이 제출한 법안도 동일한 내용이다. 법안 제안 이유 문구의 토씨 하나까지 같은 내용이다.

국회의원들 스스로 법안을 발의할 때 규제영향평가나 입법영향분석을 도입하는 등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자는 제안이 나왔지만 매번 입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동료 의원들은 "국회의원들의 자유로운 입법활동을 제한할 수 있다"며 반대하는 입장을 내보였다. 심도 깊은 논의 자체가 불가능했다.

특히 관련 법안의 국회 심사 과정에서는 "국회의원의 입법권을 제한하려고 하는 매우 불순한 시도", "국회가 이런 법을 만드는 것은 웃기는 것", "법제화하는 것은 문제" 등의 다소 거친 반응까지 나왔다.

국회의원들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사무처는 토론회 등의 방식으로 과잉입법 문제의 대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묘수가 없는 상황이다. 국회사무처는 지난달에도 과잉입법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COVID-19) 재확산의 영향으로 연기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회의원이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하는데 이를 막는 국회는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과잉입법 문제의 뚜렷한 대책은 없다"면서도 "대신 의정활동의 평가지표를 발의 건수 대비 법안 처리 비율로 따지면 법안 발의에 신중해질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정현수 기자



'입법공장' 노동자의 하소연… "자괴감마저 느낀다"


쌓이는 법안, 쌓여가는 피로…근무 기피처된 '국회 상임위'

2019년 마지막 날인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앞 복도에 민생법안 자료들이 쌓여 있다. /사진=뉴스1.

국회에 발의되는 법안이 폭증하면서 상임위원회에 소속된 입법공무원들이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법안 심사 인력이 제한된 만큼, 개별 법안에 투입하는 시간과 노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졸속 심사에 따른 부실 입법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게 입법공무원들의 토로다.

입법조사관 A씨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통화에서 “21대 국회 들어 초반부터 엄청난 양의 법안이 들어왔다”며 “상임위별 상황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과거에 비해 법안 발의가 늘어난 것을 확실히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야근이 일상적”이라며 “회의 일정에 맞춰 시한이 정해진 일들이 있기 때문에 야근을 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 7개월(5월 30일~12월 31일) 동안 제출된 법안은 총 6957건으로 집계됐다. 20대 국회가 같은 기간 4698건 제출한 것과 비교하면 48% 늘었다. 국회미래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추세가 이어지면 4년간 4만건에 육박하는 법안이 제출될 전망이다.

의원들의 법안 심사 과정 전반을 지원하는 게 입법조사관들의 주요 업무다. 이를 위해 법안 검토보고서와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참고할 자료를 작성한다. 법 체계상 적절성을 점검하고, 관련 당사자들의 주장과 의견을 담는다. 법안 반영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자료다.

하지만 법안 폭증으로 개별 자료 작성에 투입하는 역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국회법에 따라 법안이 소관 상임위에 상정되기 48시간 전까지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를 의원들에게 배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임위 회의 직전 입법공무원들의 업무량이 폭증하는 이유다. 검토할 법안이 늘어나면 심사 자료의 질 저하가 야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입법조사관 B씨는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법안인데도 검토할 수 있는 시간이 짧으면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에 의존하게 된다”며 “법안이 필요한 이유들을 중심으로 심사가 이뤄지게 되고, 현장에서 벌어질 부작용에 대해 검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B씨는 “가끔 법안이 통과된 후 ‘왜 이런 부분조차 재대로 검토하지 않았냐’는 민원 전화를 받는다”며 “국회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큰 자괴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현실적으로 법안당 검토기간이 며칠 밖에 안 되는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회 내 상임위 근무 기피 현상도 심해지고 있다. 한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과로로 건강이 나빠지는 입법조사관들도 여럿 나오고 있다”며 “예전에는 서로 상위임에 근무하고 싶어 했는데, 이제는 이를 기피 하는 입법조사관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부터 본격 시행되는 ‘일하는 국회법’은 국회 본연의 업무인 입법 기능에 집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국회법 개정에 따라 매년 2·4·6·8월 열린 임시국회가 3, 5월에도 열린다. 상임위도 매달 2번 이상, 법안심사소위원회는 매달 3번 이상 열어야 한다. 하지만 과다 발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회의가 늘어나도 입법의 질적 개선을 이뤄내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수석전문위원은 “급하게 심사한 법안에선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며 “답이 나오지 않을 때에는 고민할 시간이 필요한데, 과다 발의는 고민 자체를 하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양적으로 경쟁한 모든 제도들을 정리하고, 법안 논의를 공들여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상준 기자



"과잉입법 탓 국회 신뢰도 추락…정당·의원 '입법협업' 필요"


박상훈 국회 미래연구원 거버넌스 그룹장 "필요한' 법안만 '아껴서' 발의해야…국회 '국정기획' 중요"
박상훈 국회 미래연구원 거버넌스그룹장. / 사진제공=미래연구원

“꼭 필요한 법안을 아껴서 발의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비즈니스(사업)이나 인더스트리(산업)처럼 입법을 대하고 ‘한 건 했다’ 하는 것이 문제다.”

박상훈 국회 미래연구원 거버넌스그룹장은 최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인터뷰에서 “21대 국회는 역대 최고의 입법 공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의원들이 양적 성과에 집중하면서 법은 물론 입법자의 권위를 스스로 떨어뜨린다고 지적하면서다.

◇ “입법을 상품 생산하듯…정치가 산업인가”

박 그룹장은 21대 국회의 양적 성과에 주목했다. 박 그룹장이 작성한 ‘더 많은 입법이 우리 국회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보고서에 따르면 21대 국회 초기 4개월 발의된 법안은 모두 4144건으로 집계됐다.

같은기간 20대 국회에서 발의됐던 법안 2517건 대비 64.6% 증가한 수치다. 김대중 정부 후반기와 노무현 정부 전반기를 함께 했던 16대 국회에서 발의된 전체 법안(2507건)보다도 많은 수준이다.

박 그룹장은 “경제는 많은 산출과 생산을 통해 사회 구성원을 풍요롭게 하는 데 기여한다. 그러나 정치는 비용을 쓰는 곳”이라며 “갈등을 조정하고 의견 차이를 조율하는 역할”이라고 봤다. 이어 “국회가 공장에서 상품을 생산하듯이 입법하는 것은 정치를 산업 활동처럼 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잉 입법이 준법 질서를 흔든다고도 비판했다. 박 그룹장은 “법을 이렇게 만들어놓으니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권위가 인정이 안되니 법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갈등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2월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 사진제공=뉴시스

◇ 입법·행정 관료들만 ‘덕’ 본다

더 큰 문제는 법의 전유 및 독점 우려라고 했다. 새로운 법들이 생겨나면서 이를 집행할 부처는 물론 물론 물론 각 상임위 법안심사 소위에서 사실상 ‘비토권’을 행사하는 입법·행정 관료 조직 역시 비대해진다는 설명이다.

박 그룹장은 “입법고시를 통해 뽑힌 입법관료들의 검토보고서가 매우 중요하다. 이 보고서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하면 대체로 쟁점이 안된다”며 “행정부 차관들 역시 ‘우리 부처에서 받을 수 없다’는 식의 비토권을 행사한다”고 말했다.

이어 “법안이 많지 않다면 의원들이 충분히 검토하고 연구해 이들의 영향력을 뚫고 입법 취지를 설명하고 설득할텐데 그렇지 못하다”며 “입법·행정 관료의 ‘비토 파워’가 입법에 과도하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라고 봤다.

이헌승 국토교통위원회 소위원장이 12월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위 법안 심사 소위를 주재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시스

◇ 과잉입법, 의원 권위↓…시민 간 적대·증오↑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낮은 신뢰도 역시 과잉 입법이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박 그룹장은 “법안 심의에 충분한 여유를 주지 못하면 질이 떨어지고 의원들의 도덕적 권위가 서지 않는다”며 “언론 비판 등이 부당할 때가 없는 것은 아니나 의원들이 반발해도 좀처럼 통하지 않는 이유”이라고 말했다.

과잉 입법이 사회 갈등을 부추길 우려도 높다고 강조했다. 박 그룹장은 “의원 개개인들이 사사로운 입법 성과에 연연해 법안을 양산하면 정치가 사법화되거나 정치보다 법치가 기승을 부릴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민들은 상대를 법 처벌이나 규제 대상으로 보게 되고 사회를 법으로만 운영하려는 욕구를 심화시켜 (시민 간) 적대나 증오도 커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 정당, 의원입법 책임있게 관여해야…입법 평가방식도 개선 필요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오른쪽)와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12월4일 오후 국회 의장실에서 박병석 의장 주재로 열린 교섭단체 정당대표 회동에서 인사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시스

이에 박 그룹장은 정당이 의원들의 입법 과정에 책임있게 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당이 국정 기획 역량을 기반으로 의원들과 입법 협업에 나서야 한다는 대안이다. 의원들이 특정 정당의 후보로 당선되는만큼 과잉입법과 관련 “지나친 개인의 자율성은 알리바이”가 안된다는 설명이다.

박 그룹장은 “정당이 의원 입법에 관여하려면 국회 기능이 바뀌어야 한다”며 “입법부에서 만들어지거나 적법하다고 인정되는 공공정책이 행정부를 통해 집행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우리는 국정 기획이 청와대에서 이뤄지고 집권당은 때때로 소극적 기능을 한다”며 “공공정책 기획이라는 입법부와 정당의 본래 기능이 살아나야 한다. 이를 위해선 청와대 등의 통법 도구로 스스로 역할을 제한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기술적 대안으로 입법 평가방식 개선도 강조했다. 박 그룹장은 “공천심사 시 양적 기준을 과용해 법안 성과를 평가하는 것을 절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언론과 시민단체에서도 입법량으로 의원들을 줄세우는 것도 개선해야 한다. 법을 우습게 만들게 된다”며 “여전히 자구 등을 고쳐서 법을 내는 의원들이 있는데 전체 입법 기능과 권위를 약화시킨다는 점 등에서 불명예스럽게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원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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