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지수가 대망의 3000선을 돌파했다. 수년간 넘보지 못했던 벽을 깨면서 한국 증시는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됐다.
경제 호황기가 아닌 코로나19(COVID-19) 시대, 3000선을 맛본 것은 역설적이다. 코로나19로 인한 패닉장세가 동학개미군단을 양성했고 이들이 코스피 3000시대를 열었다. 지난해 3월 코로나19(COVID-19) 대규모 확산으로 코스피가 1400대로 고꾸라졌을 때도, 2000포인트를 회복하고 유례없는 상승세를 기록했을 때도 그 중심엔 개미가 있었다.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증권업계선 국내 주식이 지나치게 고평가 됐다며 조정장이 크게 올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나왔지만 이들의 예측은 크게 빗나갔다. 증시전망을 묻는 질문에 ‘하우스뷰’와 괴리가 지나치게 커졌다며 답변을 피하는 증권사도 상당수다.
초저금리와 막대한 양적완화로 인한 유동성이 시중에 쏟아졌고 약달러 기조가 장기화 되면서 외국인 수급까지 개선됐다. ‘이젠 떨어지겠지…’ 하는 막연한 두려움은 ‘아직도 부족하다’는 갈증으로 바뀌었다.
◇코로나 19의 아이러니 = 코로나19는 과거 메르스나 신종플루와 달리 빠르게 세상을 잠식했다. 전 세계가 봉쇄되면서 글로벌 경기가 초토화될 것이라는 공포가 시작됐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는 더 컸다.
2000~2200선을 오가던 코스피 지수는 3월 공포 심리로 얼어붙으며 급전직하했다. 하루 낙폭 4~5%, 사이드카와 서킷브레이커 등은 일상이었다. 3월19일 장중 코스피 지수가 9% 넘게 빠지며 1439.43을 찍었다.
그러나 극강의 공포 속 ‘위기는 기회’라는 오래된 격언이 시장 분위기를 바꿨다. 2008년과 2011년 금융 위기 때 경험이 바탕이 됐다. 폭락장 뒤 급등장이 온다는 것을 학습한 개인 투자자들이 패닉 장세에 등장했다. 이른바 ‘동학개미’의 등판이다.
이들은 ‘한국이 망하지 않으면 안 망할’ 삼성전자, 현대차 등 대형 우량주에 쌈짓돈을 풀었다. 동학개미가 사랑한 대형 우량주의 증시 내 비중이 컸기에 동학개미 매수세는 곧 주가의 버팀목이 됐다.
동학개미 덕에 4월 코스피 지수는 단숨에 1900선까지 회복했다. 3월 코스피 지수 낙폭이 11.7%인데 4월 상승폭이 11%다. 3~4월 승리를 맛 본 동학개미의 매수세는 이어졌다. 코로나 19 기세가 한풀 꺾이고 시중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증시는 더 힘을 받았다. 6월 2100을 돌파한뒤 7월 2200, 8월 2300, 11월, 2600, 12월 2800으로 지수대를 점차 높여갔다.
특히 ‘내릴 때 사고, 버티면 이긴다’는 학습 효과는 진리가 됐다. 3분기부터 기업 실적까지 뒷받침되자 외국인도 컴백했다. 원화 가치가 하락한 것도 외국인 ‘바이코리아’를 이끌었다.
◇개미는 ‘빨간맛’…지난 3월부터 40조 순매수 = 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들은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된 지난 3월부터 지난 1월5일까지 무려 39조8696억원어치 코스피 주식을 순매수했다. 코스닥(14조2414억원)까지 합치면 54조원을 웃돈다.
반면 코스피시장에서 외국인과 기관투자자는 각각 21조6813억원, 19조9531억원을 순매도했다. 대부분 매도물량을 개미들이 오롯이 받아낸 것이다. 외국인·기관의 막대한 매도물량을 받아낸 개인들은 상승장이 오면 차익실현을 하는 방식을 반복하며 고수익을 이뤄냈다.
개미들의 투자여력은 충분하다 못해 넘쳐 흐른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시 대기자금은 205조원을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지난 4일 기준 △투자자예탁금(68조2873억원) △파생상품 거래에수금(12조1743억원) △RP(환매조건부채권) 잔고(88조234억원) △예탁증권 담보융자(17조6448억원) △신용융자 잔고(19조3522억원) 등 총 205조8348억원에 달했다.
직접적인 증시대기자금으로 꼽히는 투자자예탁금은 70조원을 눈앞에 뒀고 ‘빚투’로 불리는 신용잔고도 20조원에 육박하는 등 모든 수치가 최고점 수준이다. 200조원이 넘는 대기자금은 추가 조정기에 언제든 주식을 매수하기 위한 자금이 뒷받침됐다는 의미로 증시의 추가 상승 가능성을 키운다.
◇‘동학개미 랠리’…금융당국도 눈치보기 = 유례없는 ‘동학개미 랠리’에 증권사도 환호했다. 코로나19로 파생상품 손실이 커져 지난해 1분기는 부진했지만 2·3·4분기는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입김이 세진 동학개미들은 9월 종료가 예정돼 있던 한시적 공매도 금지조치도 연장시켰다. 12월 예정돼 있던 대주주 과세 기준 변경(10억원→3억원)도 유예했다.
동학개미의 활약은 12월은 통상 대주주 양도세 이슈로 하락한다는 관행도 깼다. 금융당국 뿐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감사를 표현할 정도로 개미들은 자본시장의 주축으로 자리매김했다.
개미를 빼고 주식시장을 설명하기 불가능해지면서 금융당국의 시각도 급선회했다. ‘주식시장 안정화’를 내세우며 기관육성에 주력했던 당국이 개인지원으로 방향을 180도 돌린 것이다.
개인 투자자는 ‘위험한’ 주식을 직접 투자하기 어렵다며 펀드와 연금을 통한 간접 투자를 장려해 온 인식도 희미해졌다. 기관육성을 통한 ‘주식시장 안정’ 보다 시장성장의 과실을 개인과 공유해야 한다는 진일보된 관점도 제기된다.
지난 8월 금융위원회는 공매도 금지조치를 6개월 추가연장했을 뿐만 아니라 신용융자 금리인하, 공모주 배정방식 개선, 개인공매도 활성화 등 개미들을 위한 제도개선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