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가 로봇이 먼저다 [광화문]

머니투데이 양영권 경제부장 | 2021.01.07 05:00
사진=보스턴다이내믹스 유튜브 캡처

모두가 코로나19로 우울한 와중에 그것들은 흠뻑 흥에 젖어있었다. 스텝을 맞추며 워밍업을 하다가, 팔짝 뛰기도 하고 180도 회전도 하며 줌바 춤을 춘다. 신정 연휴 때 페이스북을 넘기다 발견한 영상이다. 원작은 영화 더티댄싱 삽입곡 ‘Do you love me(나를 사랑하나요)’에 맞춰 제작됐다. 한국에선 누군가 이날치 밴드의 ‘범 내려온다’로 배경음악을 바꿔서 올렸다.

댄서들은 사람이 아니다. 얼마 전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인수해 화제가 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들이다.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와 개를 닮은 사족보행 로봇 ‘스팟’, 바퀴가 달린 자율주행 로봇 ‘핸들’이 노는 모습은 마치 공상과학(SF)영화 장면 같다. 흥부자 로봇들의 깨방정 춤에 발이 들썩여진다. 어느새 감정이입이 된다.

기계의 한계를 또 한번 허문 장면이다. 단순히 재미로만 볼 수 없는 게 기계가 인간의 보완재가 아니라 대체재로서 영역을 더 넓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들이 미래라면 키오스크(무인 단말기)는 현재다. 지하철이나 공항에서 표를 뽑을 때 봤던 게 이번 정부 들어 음식점을 중심으로 늘며 빠르게 인간을 대체한다.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라고는 하지만 그간 정부가 추진한 정책은 이같은 인간 대체를 부추겼다. 소득주도성장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기계의 절대우위를 부각시킨 것이다.

정부는 부인한다. 지난해 말 고용노동부가 주관한 발표회에서 제시한 보고서는 키오스크를 도입한 외식업체의 매출액은 의미있는 수준으로 늘었지만, 고용량은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수준으로 줄었다는 내용을 담았다. 키오스크가 고용파괴와 공포의 대상으로 취급되는 것은 과장이라는 것이다.

이는 소주성 정책의 부정적인 효과를 가리려는 의도가 앞선 분석에 불과하다. 직원이 아닌 키오스크를 두는 것을 ‘표준’으로 만드는 것 자체로 일자리에 위협적이다. 고용 없는 창업의 문턱은 낮아지겠지만, 그만큼 경쟁이 심해지기 때문에 인간을 대체해서 줄인 비용이 고스란히 자영업자의 이익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분배 측면에서도 소주성 정책의 효과는 불투명하다.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는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바탕으로 별도의 자료를 내고 소주성 정책이 본격 추진된 2018년과 2019년 연속 분배가 개선됐다고 주장했다. 역시 정책실패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목적이다.


이 자료를 보더라도 기초연금, 장려금 등 이전소득을 제외한 시장소득을 기준으로 한 각종 소득분배 지표는 2018년 소폭 개선되다 2019년 다시 악화됐다. 그나마 그 시장소득이라는 것도 수조원대 일자리 안정자금과 4대보험료 지원 등이 포함된 것이기 때문에 순수한 시장소득이라고 보기 어렵다.

소주성특위는 이전소득까지 합쳐 가처분 소득을 기준으로 한 분배 지표가 개선됐다고 의미를 뒀는데, 이는 재정을 급격히 악화시켜 우리 경제에 큰 우환을 만들었다. 지속가능하지 않다.

‘사람이 먼저’가 아닌 ‘기계가 먼저’인 결과를 초래하는 정책은 지금도 계속 시도된다. 국회 통과를 앞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대표적이다. 2019년 기준 산업현장 10만명당 산재 사망자는 한국이 4.6명으로, 영국 0.4명, 일본 1.6명보다 한참 많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2010년 9.7명에서 9년 만에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등 상황은 빠르게 나아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최고 수준도 아니다.

한국은 산업재해에 특히 취약한 산업인 제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30%로, 제조업 강국이라 불리는 독일이나 일본보다도 50% 가까이 높다는 사정도 감안해야 한다. 대기업부터 소상공인까지 모두 나서서 우려하는 것을 채 공론화가 되기도 전에 성급히 추진할 이유가 없다.

안전한 산업 환경을 만드는 게 목적이라고 하지만 기업 경영에 불확실성을 높이고, 사람을 고용하는 것을 꺼리게 만들 수 있다. 일자리를 줄여서 그만큼 산업재해도 줄이겠다는 의도는 아닐 것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 로봇들의 춤에 사용된 배경음악 ‘범 내려온다’는 어쩌면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호랑이처럼 무서운 미래를 상징한다. 나는 한치 앞을 내다보려 하지 않고, 나중에 책임질 의향도 없는,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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