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말고식…국회에 英 42배 법안 쏟아지는 이유

머니투데이 김상준 기자 | 2021.01.05 05:34

[the300]['입법공장' 국회의 민낯]<1>-⑤'입안-비용추계-상임위' 심의절차 짧고 형식적…선진국, 입법영향 분석·독립기관서 부작용 검증


‘42배’. 영국 의회 대비 대한민국 국회의 법안 발의 건수 규모다. 주요 선진국 의회보다 ‘손쉬운’ 법안 발의 절차가 ‘아님 말고’ 식 무차별 법안 발의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발의 과정에서 법안 내용에 대한 국회 차원의 검증 역량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미래연구원이 지난해 10월 발간한 ‘더 많은 입법보다 더 중요한 입법이 국회의 미래다’에 따르면 지난 20대 국회가 4년 동안 발의한 총 법안 수는 2만4141건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의원내각제 국가인 영국의 의회가 발의하는 법안 수 572건(4년 평균)의 42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준(準)대통령제 국가(이원집정부제 채택)로 평가받는 프랑스 의회의 4년 평균 발의 법안 수 2043건과 비교해도 12배에 달한다.


이에 따라 국회의원 1인이 4년 동안 검토해야 할 법안 개수도 압도적으로 많다. 국회의원 300명 각각은 4년간 총 80.5건의 법안을 검토해야 한다. 영국의 의원이 4년간 검토해야 하는 법안 개수인 0.88건보다 91배 많은 양이다. 프랑스의 의원(3.5건)보다는 23배, 미국 의원(40.6건)보다는 2배 많다.


국회의 법안 발의 건수가 지나치게 많은 이유로는 간단한 발의 절차가 꼽힌다. ‘입안-입법 예고-규제 심사-법제처 심사-국무회의-대통령 재가’ 등 여러 단계를 거치는 정부 입법과 달리, 의원 입법 절차는 ‘국회 법제실에 법안 입안-비용 추계-국회 상임위원회 검토’ 등 신속하게 진행된다.


물론 의원 입법의 경우도 입안 단계에서 국회 입법조사처에 자문을 구할 수 있고, 공청회나 토론회 등을 열 수 있지만 선택 사항이다. 각 상임위 전문위원실의 법안 검토의 경우에도, 기존 법과 상충 되는지 여부 등 형식적 차원의 점검에 그치는 경우가 잦다.



이에 비해 선진국 의회는 입법 과정 자체가 ‘엄격하게’ 진행된다. ‘입법영향분석’이 대표적이다. 입법영향분석은 법안이 제정될 경우 사회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사전에 분석해 그 결과를 법안에 반영하도록 하는 제도다. 법 조문 등 형식적 측면에 대한 검토보다는 입법 목적에 법안이 부합하는지, 예상되는 부작용은 없는지 등 내용을 검증하는 데 방점이 찍혀있다.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등은 정부 발의 법안 대부분에 대해 입법영향분석을 실시하고 있다. 의회나 의원 개인의 요청에 따라 의원 발의 법안에 대해서도 입법영향분석이 이뤄진다. 예산, 의사결정 등이 독립된 전문기관이 입법영향분석을 전담한다. 정부 입법이든 의원 입법이든 법안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뤄질 수 있는 셈이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회가 입법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봤다. 이 교수는 “정부 입법에서는 각 부처의 연구 인력이 활용되는데 국회는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법안의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입법영향분석을 하는 인력을 확충하는 등 입법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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