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면 '수십 건'…'공발 폭탄' 죽어나는 보좌진

머니투데이 이원광 기자, 유효송 기자 | 2021.01.05 05:32

[the300])['입법공장' 국회의 민낯]<1>-③'입법 품앗이' 한숨…검토하기엔 부족한 시간…실적쌓기 상부상조 관행…친분따라 '도장' 찍기도


“의원님들끼리 본회의나 의원총회에서 잠깐 만나 공동발의를 해달라고 하고 나중에 도장 받으러 온다.” - 국민의힘 소속 보좌관 A씨

“종이에서 (전자입법) 시스템으로 형태만 바뀐 것이지 (입법) ‘품앗이’는 변화가 없다.” - 더불어민주당 소속 보좌관 B씨

“법안 개수로 비교하면 (개수가 적을 때) 우리 입장에선 일 안한다는 이미지로 보일 수 있어서 아무래도 신경 쓰는 게 사실이다.” - 국민의힘 소속 비서 C씨

“문제가 생기면 다 우리(보좌진) 책임 아닌가” - 민주당 소속 비서관 D씨

‘입법공장’의 최일선에서 묵묵히 맡은 업무를 해내는 국회 보좌진들의 ‘호소’다. 매일 수십건씩 쌓이는 ‘공발(공동발의 요청) 폭탄’에 한숨이 터져나온다.

면밀히 검토하기도, 외면하기도 어렵다. 여전히 의원 입법을 양적으로 평가하는 현실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결국 입법의 질에 주목하면서도 수긍 가능한 평가 시스템이 묵힌 과제 해결을 위한 유일한 대안이라고 보좌진들은 입을 모은다.



출근하면 '공동발의 요청' 수십건에 '한숨만'


국회 보좌진들은 21대 국회 개원 후 각 의원실별로 매일 약 20~50건의 공동발의 요청 건이 접수됐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21대 국회가 열린 지난해 5월30일부터 같은해말까지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정부 입법 등 제외)은 모두 6463건으로 이같은 공동발의 요청을 거쳐 하루 평균 29.92건의 법안이 발의됐다.

평년에 비해서도 많은 수치다. 불과 4년전인 20대 국회 초반(4258건)과 비교해 2205건 늘었으며 19대 국회 초반(2716건)보다 3747건 늘었다.

통상 팩스와 우편 사서함, 대화형 SNS(사회관계망서비스)가 활용되는데 최근 코로나19 장기화로 전자입법시스템도 활성화되는 추세다. 정성 가득한 설명자료를 첨부한 ‘친전’부터 팩스를 통한 ‘무차별’ 요청까지 방식도 다양하다.

민주당 소속 비서관 E씨는 “아침에 출근하면 팩스에 쌓여있는 법안들을 치우는 게 일”이라며 “다수의 의원실이 이 작업을 담당하는 보좌진을 둘 정도”이라고 말했다.






면밀한 검토도, 외면도 '어렵다'


면밀한 검토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국민의힘 소속 보좌관 A씨는 “개원 초기엔 공동발의 요청이 들어온 법안들을 일일이 들여다보고 궁금증이 있으면 부처에 전화했다”면서 “하루종일 걸리는데 다음날이 되면 또 수십 건의 요청이 들어온다”고 한숨지었다.


이어 “우리 상임위 소관 법안이면 이슈를 챙기고 있으니 알 수 있겠지만 타상임위 법안이면 전후 관계 등을 알기 어렵다”며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데 사실상 제대로 된 검토가 힘들다”고 말했다.

외면하기도 어렵다. 공동발의 요청에 응해야 추후에 부탁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이른바 ‘입법 품앗이’ 행태가 자리잡은 이유다. 특히 의원 간 친소관계를 기반으로 한 ‘톱-다운’ 방식의 공동발의 요청은 이같은 관행을 고착화한다.

민주당 소속 보좌관 B씨는 “매번 그렇게(톱-다운) 해달라는 의원이 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그렇게 해줘야 우리도 찍어줄 것 아닌가”라며 “전자입법시스템을 많이 쓰면서 종이에서 (전자입법) 시스템으로 형태만 바뀐 것이지 입법 품앗이는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공동발의에 신중한 의원실 소속 보좌진들은 향후 타 의원실의 협조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민주당 소속 비서관 F씨는 “개정안 관련 부처나 법제처에 전화를 해서 입장을 물어보고 참고한다”며 “(도장을) 왜 찍어주지 않는지 합리적으로 설명하는데 ‘왜 찍어주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의원도 있다”고 말했다.





'질적 평가' 기준 없이는…


보좌진들은 ‘공발 폭탄’ 행태에 대한 문제 의식에 공감하는 한편 입법의 질을 평가하는 새로운 기준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낸다.

이같은 행태가 발의 법안 수 및 본회의 처리 건수 등 양적 평가에서 비롯된다는 문제 의식이다. 의원 및 보좌진의 소신, 태도 변화에만 기대는 것은 근본적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된다는 설명이다.

국민의힘 소속 비서 C씨는 “여전히 기사에서 1년에 법을 몇 개 발의했는지 비교하고 ‘법을 만드는 곳인데 왜 법을 만들지 않느냐’고 한다”며 “입법권이 있지만 신중하게 접근해서 (법을) 만들어야 하는데 양적 성과가 우선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소속 비서관 D씨는 “‘의원들이 일을 안한다’ ‘봐라, 법이 몇 개 안되지 않나’라고 하니 어떻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나”라며 “양적 평가는 지양하고 정말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법이었는지 분석하고 평가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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