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망해도 사장은 안 망해? 혁신 내모는 경제 교과서

머니투데이 김성은 기자, 임소연 기자 | 2021.01.03 09:32

[기업(氣-UP)하기 좋은 나라]<1-2>

편집자주 | 포스트 코로나 시대 1인당 국민소득 5만달러 국가로 발돋움 하기 위해서는 국부의 근간인 기업의 기운(氣)을 끌어올려(UP)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의 발목을 잡는 불필요한 규제를 줄이고 기업가 정신을 함양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머니투데이는 한국의 기업가들과 기업가 정신의 뿌리 찾기에 나섰다.



정치에 갇힌 경제교과서…'혁신적' 기업가 정신 배울 수 없다



"한 출판사가 발간한 고교 1학년 통합사회 교과서에서 '불평등의 해결과 정의의 실현'이란 단원 첫 페이지를 봅시다. 여기에 '수평저울' 그림이 나와요. 아래로 기울어진 접시엔 커다란 한 명이, 반대편 접시엔 작은 여러 명이 있습니다. 이때 저울을 수평으로 맞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질문해봅시다. 이 질문에 아이들의 대답은 대부분 똑같습니다. 큰 사람의 것을 덜어내 반대편 여러 사람의 것으로 옮기면 된다고 답합니다."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사회과목을 가르치는 교사 A씨의 말이다. A교사는 "가벼운 사람들도 근육을 키우는 노력을 해 수평을 맞추고, 전체 총량도 늘어나면 모두가 위너(승자)가 되지 않겠느냐고 되물으면 학생들은 생각치 못한 해법에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인다"고 밝혔다. 그는 "학생들이 경제에 대해 좀 더 유연한 사고를 가지며 성장하기를 바라지만 현행 교과서는 은연중에 분배의 정의에 치중된 것 같아 사뭇 아쉽다"고 덧붙였다.

◇"정치권 입김서 자유롭지 못한 경제 교육…반기업 정서의 원인"

경제 정책에 있어 성장과 분배 중 어느 하나만이 정답이 될 수 없는데도 교과서 기술 방식은 한쪽으로 '쏠림 현상'을 보여왔다. 특히 어떤 정권에서, 누가 교과서를 만드느냐에 따라 교과서 기술 방식은 많은 영향을 받았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제 교육이 마치 보수 대 진보의 가치를 대변하는 수단으로 여겨지며 중립적 관점에서의 기업가 정신에 대한 교육은 번번이 뒤로 밀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외환위기(IMF) 이후 불거진 반기업 정서도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제대로 된 경제 교육을 못하게 한 주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반기업 정서 해소를 위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같은 재계 단체는 2005년 학계에 의뢰해 초·중·고교 경제 교과서 114종을 분석했다. 당시 조사에서 재계 단체들은 무려 446곳의 교과서 내용 수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시장은 돈이 투표한다는 점에서 경쟁적이고 비인간적이다'는 내용이나 '1960~70년대 경제성장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이룩된 것'이라는 표현은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린 내용으로 꼽힌다. 전경련은 한발 나아가 2008년에는 '차세대 중학교 경제 인정교과서'를 발간한다. 시장경제 원리와 사례를 대폭 보완한 교과서였다. 그러나 이 교과서는 '좌편향 교과서를 바로 잡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움직임과 함께 묶이면서 진보단체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는다.

반대 사례도 있다. 2016년 서울시와 서울시 교육청이 만든 인정교과서 '사회적 경제'에는 '돈보다 사람을 우선하는 경제교육'을 명분으로 내세워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을 다뤘다. 이 교과서는 "대기업이 이익을 더 많이 가져간다"는 식의 내용을 담아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과 조희연 서울교육감의 '코드정책'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 두 사례 모두 거센 정치적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자료사진으로 기사의 직접적인 내용과는 무관/사진=머니투데이DB

◇"정경유착 틀에 갇힌 경제 교육…한국형 '기업가 정신' 필요"

이처럼 한쪽으로 치우친 경제 교과서 내용을 개편하는데 정치적 논쟁이 뒤따르는 이유를 전문가들은 오랜 정경유착의 불신에서 찾는다. 한국의 1960~70년대 고속 성장 명암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논쟁이 끝없이 반복되며 '생산적 논의'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농단 사태는 정경유착 문제로 이어지며 경제 교육을 재차 정치의 덫에 갇히도록 한 사건이다. 이후 재계단체가 학생들과 교사들을 상대로 진행한 시장경제 교육은 "보수정권을 뒷받침하는 산물"로 비약되며 크게 위축됐다.

이경상 대한상의 경제조사본부장은 "기업가 정신 자체는 중립적이고 경제 발전의 토대를 강화하는 것이어서 선진국에서는 활발히 논의되는 반면 한국은 여전히 '기득권을 정당화하는 도구'라는 편견을 갖는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 논쟁에 발이 묶여 미래를 향한 긍정적 논의를 언제까지 하지 못해야 하는 건지 아쉽다"고 덧붙였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지금부터라도 기업가 정신에 대한 교육은 꼭 필요하다는 제언들도 들린다.

사단법인 기업가정신학회장을 맡은 이춘우 서울시립대 경영대 교수는 "대부분의 교과서가 기업가 정신 언급 전에 기업 혹은 기업가에 대한 정확한 정의조차 못 내리고 있다"며 "기업의 본질적 기능과 역할보다는 이윤 창출이나 사회적 환원 같은 결과에만 방점을 찍고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기업가란 기술과 아이디어, 도전의식을 갖고 새로운 사업과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인물"이라며 "이윤 추구만이 아니라 창조적 파괴와 혁신을 통해 미래 가치를 만들어내려는 것이 바로 기업가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이 추격 모방형 개발도상국에서 선도형 선진국으로 나아가려면 미래를 예측하고 시장이 필요로 하는 제품을 혁신적으로 개발하려는 한국형 기업가 정신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김성은 기자



잡스부터 록펠러까지…미국은 왜 성공한 기업가를 가르치나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사진 앞에서 팀 쿡 애플 CEO(최고경영자)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AFP

세계적 기업가는 상상할 수 있는 환경에서 탄생한다. 특히 성공한 기업가들의 앞선 경험들을 보고 들으며 그 상상력을 키울 수 있다.

미국은 청소년기부터 교과서를 통해 그러한 상상력을 불어 넣어준다. 성공적인 기업가들이 아이디어를 키우고 사업을 확장하고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는 과정을 상세히 기술한다.

미국 교과서엔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와 금융가 존 피어폰 모건, 석유재벌 존 록펠러 등이 등장한다. 21세기 최고의 기업가로 손 꼽히는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와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도 있다.

미국 버지니아주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로 쓰이는 맥그로힐 출판사의 '미국인의 역사'는 19세기 이후 대표 기업인들의 공과(功過)에 대한 내용을 전체 분량의 2.8% 정도를 할애해 사진과 함께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교과서 '산업부흥기(Industry supremacy)' 장에선 카네기를 비롯해 모건, 록펠러 등이 사업 초기 어떻게 시작했고 부흥시켰는지에 대한 업적이 소개돼 있다.

존 록펠러. /사진=AFP


공과에 대해서도 "기업인들이 불굴의 기업가 정신과 독창적인 아이디어, 추진력 등으로 각 분야 산업을 일으켜 강대국의 기반을 다졌다"면서도 "독점 등의 문제로 경제적·사회적 문제도 일으켰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도 교과서를 통해 성공적인 기업인들을 소개하고 미래의 기업가들에게 상상력을 심어준다.

일본 교과서에는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치 오사카방직 창업자에 대한 소개를 시작으로 미쓰이, 미쓰비시, 스미토모 등 일본 대표기업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일본 고등학교에서 가장 많이 채택한 도쿄서적의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일본사A'에는 '근대 산업발달'이라는 장에서 에이치가 오사카방직을 개업한 내용을 시작으로 일본의 산업화 과정이 자세하게 서술돼 있다.

또 '자본주의의 발전'이라는 장에서는 동양방적, 대일본방적, 가네가후치방적 등 방적회사를 시작으로 미쓰이, 미쓰비시, 스미토모, 야스다 등의 기업을 차례로 소개한다.


임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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