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확장] 해외 식탁을 두드리는 북한의 먹거리 디자인

머니투데이 뉴스1 제공  | 2020.12.19 08:06

"Design으로 보는 북한 사회" 제8편-음식과 상업미술

[편집자주][시선의 확장]은 흔히 '북한 업계'에서 잘 다루지 않는 북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그간 주목받지 못한 북한의 과학, 건축, 산업 디자인 관련 흥미로운 관점을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최희선 디자인 박사. (현)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겸임교수.© 뉴스1

(서울=뉴스1) 최희선 디자인 박사/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겸임교수 = 중국, 러시아의 식탁을 두드리는 북한의 야심 찬 먹거리 디자인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과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로 북한의 대외 물자 교류의 문고리는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듯하다. 더욱이 올해 8월 설탕과 술을 상호 교환하려 했던 남북 교역의 시도가 유엔의 대북 제재에 위반되는 것을 확인하면서 먹거리, 마실거리의 물물교환 이야기는 입에 담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1990년대 이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온 심각한 민생의 문제인 식량난은 올해 여름 오랜 폭우로 더욱 걱정스러운데, 북한의 식량 공급의 어려움과 식료·농산품 수출금지 상황에서도 희한하게 북측 먹거리의 교역에 대한 열망은 파란색 신호등을 기다리는 것처럼 예외인 듯하다.

2020년 11월6일 출원한 평양밀가루가공공장의 《룡악산》과 2020년 7월 10일 출원한 선흥식료공장의 《선흥》 국제상표 디자인(좌), 상점 매대에 진열된 선흥식료공장의 식료품들(우) <사진 출처: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조선의 오늘(2020.년 7월10일 자) >© 뉴스1

3년 전인 2017년 8월 북한 해산물의 수출금지에 이어 12월22일 UN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397호가 채택되면서, 금수 품목 6항에 기계류, 전자기기, 목재, 선박과 함께 식료품 및 농산품까지 확대되며 북측의 음식 관련된 상업미술, 공업미술 창작 열풍이 한풀 꺾이지 않을까 예상했었다.

하지만, 국가산업미술전시회의 출품작들이나 2017년 12월 이후 지금까지 수출을 위한 등록·출원한 국제상표들을 보면 음식문화 다양성과 세계화진출을 위한 디자이너들의 활동이 대단히 활발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 2017년 12월 이후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에 국제상표로 등록된 27건의 중 약 74%(20건)가 식료품과 주류와 관련된 제품의 상표로 사용됨을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1998년부터 2020년 하반기까지 북한이 등록·출원한 국제상표들의 연도별 비교표. ※등록·출원한 국제상표 건수(붉은색), 식료품 분야 사용 가능한 상표의 비중(파란색) ?최희선 © 뉴스1

북한은 1974년 WIPO에 가입한 뒤 1980년 특허협력조약(PCT)에 합류하여 2020년 하반기까지 해외에서 사용할 93건의 국제상표(global mark)를 등록해 왔다. 이들 중 2건은 북한의 국가상징인 국기와 국장 디자인이며, 나머지 91건이 식음료 가공품과 주류 상표들이 주를 이루며, 그 외에 수출용 악기, 담배와 스포츠, 웹 싸이트 관련 마크들이 차지하고 있다.

북한의 국제상표들은 한국의 상표들처럼 영문 로고명를 사용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북측은 상호명을 한글로 그대로 쓰고, 영문을 병기하는 경우들을 간혹 볼 수 있다. 북한에서 1998년 1월 14일에 상표법이 채택되었고 처음 만들어진 국제상표는 아쉽게도 B형 간염 바이러스 약물을 포함한 의약품 등을 취급하는 대동강시약회사의 《HEPAVAR》라는 파란색 영문 상표였다. 하지만 이후 평양악기공장의 《Convallaria》와 같은 몇몇 사례들을 제외하고는 수출되는 먹거리 상표들의 대부분은 우리 말 표기로 그대로 상호를 디자인하였다.

2020년 국가산업미술전시회에서 1등상을 차지한 조선산업미술창작사 소속 유명혁의 <전기가열식 신선로형태도안>(상)과 2019년 국가산업미술전시회의 개성고려인삼술 전시 판넬(하). 아래 그림에서 새로 디자인되어 2016년 4월21일 국제상표로 등록된 개성고려인삼무역회사의 《개성》 마크를 볼 수 있다. 사진 출처: 내나라(2020년11월2일 자), 서광(2019년 4월)© 뉴스1

북한의 국제상표 등록의 연도별 추이를 살펴보면, 절반 이상이 김정은 위원장의 집권 이후 등록된 점도 눈여겨 볼만 한 일이다. 집권 초기보다 2016년 이후 더 증가하였는데 이는 국산상품 개발의 장려와 해외 수출길 모색이라는 전략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특허협력조약(PCT)에 의한 ‎국제상표 지정국 이름에는 매번 중국(CN)이 등장한다. 그다음으로 북한의 식음료 상품들이 수출되는 지역은 러시아, 베트남, 몽고 등 사회주의 체제 배경이 있는 국가들이 대부분이다. 평양지역의 공장, 기업소들의 국제상표 등록 건수는 74건으로 전체의 81.3%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지방으로는 강원도가 그 뒤를 따른다.

북한 식료품의 해외 진출을 위한 디자인계의 리뉴얼 행보

북한의 수출용 식음료 상품들은 한글의 브랜드명과 조선화의 단붓질 기법의 동양적인 선으로 표현된 것이 특징이다. 상표도안은 산업미술 중 상업미술 전공자들이 담당한다. 상업미술은 대체로 다루는 화면이 작고 평면적 묘사 수법이 많이 적용되고, 출판인쇄공정을 거쳐 다량으로 제작되는 특징이 있다(박철룡, 「조선예술」(2007년10월). 과거부터 상업미술 전공 수재들은 평양미술대학에서 배출되어왔는데, 최근에는 2010년 김정일 위원장에 의해서 산업미술학부 설립 지시를 받았다고 알려진 평양출판인쇄대학에서 많은 도안 인재들이 나와 활동하고 있다.

국제상표 등록은 국제기구를 통한 등록일부터 10년간 유효하며, 10년마다 갱신할 수 있다. 북한의 91건의 국제상표 등록건 중 64개 상표들이 사용 유효기간이 남아있다. 평양어린이식료품공장이 2002년 처음 등록한 《꽃망울》 상표도 2012년까지 유효기간이었는데, 4년이 지난 2016년 2월 다시 리뉴얼한 상표로 등록한 사례가 있다.

대동강맥주의 《대동강》, 삼일포특산물공장의 《삼일포》, 금강산국제관광회사의 《금강산》 상표 역시 유효기간이 지나고 다시 도안이 만들어진 사례이다. 또한 북한의 브랜드명 중에는 명승지 지명과 산, 도시 이름 등이 중복 사용되는 경우가 많고, 상표 등록 주최 기관의 명칭이 바뀌는 경우가 잦다.

평양어린이식료품공장의 2002년 5월 6일 등록한 국제상표 《꽃망울》(좌), 2016년 2월 22일 등록한 《꽃망울》 상표(우)<사진 출처: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뉴스1


백두산들쭉술가공공장의 2001년 9월 1일 국제상표 《백두산》(좌), 삼지연들쭉음료공장의 2019년 5월 2일 등록상표 《백두산》(우) <사진 출처: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 뉴스1

남북관계의 호전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시선은 상당히 극단적으로 나뉜다. 북한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 혹은 호의적인 자세로 바라보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지만, 디자이너로서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비정치적인 남북한의 음식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려 모두 배부르게, 따뜻하게, 평화롭게, 안전하게 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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