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등 검찰개혁과 관련된 정책들은 시장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국민들의 물질적 이익과 관련된 것도 아니다. 이 문제는 경제적 이익보다 각자 추구하는 가치가 더 결정적이고 따라서 개혁의 가치를 주장하는 쪽이 신속히 처리하고 난 후 그 결과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지면 된다. 그런데 현 정부는 정반대로 한다. 신중해야 할 임대차3법(전월세상한제·전월세신고제·계약갱신청구권제)은 전격적으로 밀어붙이고 검찰개혁은 부담스런 정치적 결단을 회피한 채 법적 절차를 밟으며 시간을 끈다. 이런 답답함이 지지율 하락에 반영됐을 것이다.
최근 정치상황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도전들을 상기시킨다. 우선 우리 사회가 경제적 불평등과 상대적 박탈감의 문제를 해소하는 최대 정의의 실질적 민주주의로 나아가지 못하면 공정한 절차를 강조하는 최소 정의의 절차적 민주주의도 쉽게 무너진다는 점이다. 법의 지배라는 이름 아래 정치의 영역을 법이 대신하고 사전에 공공영역에서 토론을 통해 결정되어야 할 주요 사안들이 사후에 소송절차를 밟아 결정되는 정치의 사법화 역시 반정치적 태도를 확산하면서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이처럼 시민들의 분노와 절망이 반정치적 태도로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 최근 연구들은 이념적 양극화가 아닌 정서적 양극화의 위험을 지적한다. 즉 이념에 따른 분포를 보면 오히려 중도가 많은 것으로 나타나 양극화로 보기 힘들지만 우리 사회의 갈등이 심각하다고 인식할수록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반면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정당을 더욱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정서적 양극화를 발견할 수 있다. 정서적 양극화는 상대를 혐오한다는 뜻이고 혐오는 실재하지 않은 상황에 대한 감정이라는 점에서 해소가 쉽지 않다.
상대를 감정적으로 배제하는 정서적 양극화의 궁극적인 위험성은 민주주의의 두 핵심 요소인 ‘다수결’과 ‘소수의 권리 보호’의 작동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에 있다. 즉 시민들이 다수결을 받아들이는 규범적 전제로서 첫째, 다수가 될 가능성이 열려 있는 공정한 경쟁규칙의 존재와 둘째, 다수가 소수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줄 것이라고 믿는 다수와 소수 사이의 신뢰를 든다면 정서적 양극화는 규칙에 대한 불신과 신뢰의 부재를 부추겨 민주주의 작동 자체를 방해한다.
결국 정서적 양극화는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정당이 정부를 구성했을 때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무조건적 불신이 반복적으로 재연될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더 늦기 전에 정쟁이 아닌 정책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경쟁이 이뤄지고 합리적인 유권자 육성을 목표로 한 시민교육이 이뤄지며 적극적 사회통합정책을 통해 사회적 연대 회복이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 시민들은 선거와 대의민주주의가 정치권에 대한 상벌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자신의 선호를 표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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