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 임하룡의 작품엔 눈이 큰 대상이, 풍자화 작가인 한상윤의 작품은 실오라기 같은 눈을 가진 돼지가 주인공이다. 단출하면서 선이 명확한 화풍이 임하룡의 것이라면, 한 작가의 스타일은 화려하면서 풍성하다.
그냥 봐도 서로 다른 두 화풍의 작가가 박규리라는 아이돌 그룹 출신의 예리한 큐레이터를 만나 접점을 찾았다.
바로 웃음, 해학, 풍자라는 코드다. 40년간 희극 배우로 활동해온 원로 코미디언 임하룡은 어린 시절부터 미술 활동을 이어오다 2018년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지난 10월쯤 제법 모인 작품으로 개인전을 생각하다 장소 문제로 고민해온 임 ‘작가’는 우연히 전시회에서 한 작가와 만났다. 그곳에 나타난 또 한 사람은 이제 막 큐레이터로 조심스러운 행보를 시작하려던 박규리. 첫눈에 두 사람의 공통점을 찾아낸 박규리는 ‘2인전’을 제안했다.
“개인전을 따로 하려니 부담도 되기도 하고, 한 작가 그림을 보면서 나도 좀 젊어지는 기분 느끼고…. 나쁘지 않은데.” 임 작가의 긍정적 신호에 한 작가도 바로 ‘OK’ 사인을 냈다. “해학과 풍자로 가득한 제 작품과 너무 잘 맞아 떨어지는 조합”이라는 게 그 이유.
지난 12일 개막해 내년 1월 23일까지 열리는 ‘임하룡과 한상윤의 그림 파티’ 전은 그렇게 이뤄졌다. 이를 기획한 박규리는 최근 서울 강남구 청담동 피카프로젝트에서 열린 합동 간담회에서 “2인전이 성공리에 이뤄져서 너무 기쁘다”며 “(큐레이터로 나선) 나에게도 멋지고 대단한 일로 여겨져 더 그렇다”고 말했다.
작가들은 이번 전시를 편하게 봐달라고 주문했다. 임 작가는 “‘그림파티’라는 제목에서 파티라고 여기는 관객이 있을 텐데, 그냥 즐거운 마음을 가지라는 의미”라며 “내가 연예인으로서 시선을 받고 시선에 부담을 느끼며 시선을 피하고 싶었던 교감의 모든 순간을 눈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한 작가는 “임하룡 선배의 개그가 눈 속에 고스란히 녹여져 있듯 내 작품 속 돼지도 웃음과 행복을 주는 게 포인트”라며 “서로 같은 맥락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두 작가는 자신들의 작품을 연결해준 박규리를 ‘규레이터’로 부르며 기획과 아이디어, 스타일을 호평했다. 특히 “코로나가 끝나고 해외 전시를 할 경우 ‘규레이터’를 꼭 동반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박규리는 “두 작가가 비슷하거나 다르다고 느꼈다기보다 ‘해학’이라는 키워드에 서로 걸쳐있는 느낌이 들었다”며 “코로나19로 힘든 여정을 겪어야 하는 이들에게 한순간 미소 지을 수 있는, 그런 해학의 순간을 선사하고 싶었다”고 했다.
작가 작품의 해학과 위로는 강렬하거나 의미심장한 선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보고 느끼는 본능의 직관이 뇌와 심장으로 바로 연결되는, 가장 단순한 기쁨으로 다가온다.
임 작가가 그린 작품 ‘말’에서 달리는 ‘말’ 속에 ‘말’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는 해학의 방식은 유치하면서도 그럴듯하다. 한 작가가 대동한 수십 마리 돼지 표정을 보고 행복한 ‘빙그레’를 짓는 일은 이 전시의 목적 자체를 설명한다. 그런 작품이 모두 70여 점이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두 작가 작품에는 거역하기 어려운 슬픔의 흔적이 비친다. 임 작가의 큰 눈망울은 좀 더 깊이 보면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고 한 작가의 돼지는 상처와 아픔을 가리기 위한 포장된 행복일 수 있다는 가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해학과 슬픔은 동전의 양면 같아요. 내 의도와 상관없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희극과 비극이 갈리거든요. 그래서 이것이 ‘해학’이라고 우기진 않을 거예요. 하하.”(임하룡)
“어쩌면 제 자신을 투영한 얘기일 수 있겠네요. 제가 (일본) 유학할 때 아버지 부도나서 힘들었고, 일본에서 아르바이트 7개 하면서 버텼던 그런 날들…. 하지만 전 우울하지 않아요. 제 그림 속에 행복이 그대로 있다고 생각해요.”(한상윤)
박규리가 이번 합동 전시에 큐레이터로 적극적으로 나선 배경은 그의 연인인 송자호 피카프로젝트 공동대표의 제안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미술에 관심이 많았지만, 지난해 감정적으로 상처받고 올해 기획사가 파산하는 등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차에 송 대표의 권유로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된 것이다.
박규리는 “덕분에 한 인간으로서 세상을 많이 배우게 됐고 미술을 통해 위로도 받았다”며 “1분 1초가 귀하다는 마음으로 전시를 준비했으니, ‘그림 파티’를 마음껏 즐겨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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