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100℃] 나이키에 '발끈'한 일본…우리는 차별 앞에 당당한가

머니투데이 뉴스1 제공  | 2020.12.12 10:02

北 대표팀 출신 K리거, 정대세·안병준을 바라보는 시선들

[편집자주][북한 100℃]는 대중문화·스포츠·과학·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북한과의 접점을 찾는 코너입니다. 뉴스1 북한팀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관심사와 관점을 가감 없이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지난달 27일 나이키 재팬(NIKE JAPAN)이 공개한 온라인 동영상 광고 속 한 장면. 검정 치마저고리를 입고 가는 재일 조선인 여학생에게 따가운 시선이 쏟아진다. ('나이키 재팬' 유튜브 갈무리)© 뉴스1

(서울=뉴스1) 김정근 기자 = 검정 치마저고리를 입은 여학생이 주위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는다. 재일 조선인 여학생이 여러 학생에게 둘러싸여 왕따를 당한다. 까만 피부의 여학생에게는 '너는 미국인이야, 일본인이야?'라는 메시지가 날아온다.

최근 일본 내에서 논란이 된 '나이키' 광고 내용이다. 세계적인 스포츠용품 제조회사 나이키는 '인종 차별' 반대를 내세우며 축구 선수를 꿈꾸는 여학생들을 응원하고 나섰다. 그런데 일본이 발끈했다.

일본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차별의 주체로 그린 광고가 달갑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인종 차별은 전 세계적인 문제다. 그렇기에 '발끈'하기보단 '반성'의 목소리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과연 무엇이 일본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을까. 나는 논란의 중심에 재일 조선인 차별이 있다고 본다. 일본 입장에서는 역사적으로 숨기고 싶은 일을 다국적 기업이 들춰냈으니 반발이 클 수밖에 없는 듯하다.

이제 시선을 옮겨본다. 우리는 나이키 광고에 열을 내는 일본을 나무란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재일 조선인이 등장하면 그들을 '이방인'의 영역으로 몰아세운다. 북한 사상을 따르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소속 재일 조선인에게는 '북한'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단순히 일본을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닌 차별에 대응하고 싶어서라면, 우리는 먼저 스스로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재일 조선인이며 북한 국가대표 출신인 두 명의 축구선수 정대세, 안병준을 통해 한국 내 재일 조선인에 대한 시선을 고민해 본다.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차별받았던 '인민 루니' 정대세

재일교포 3세 출신으로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과 K리그 등에서 활약했던 정대세 선수. 2015.7.1/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북한 국가대표로 활약한 정대세 선수는 '인민의 루니'라는 별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지난 2013년엔 한국 프로 축구 리그인 K리그에 진출하며 유명세가 더해졌다. 이와 함께 그의 북한 대표팀 경력을 꼬집는 부정적 여론도 한국에 일기 시작했다.

정 선수의 국적 문제는 다소 복잡하다. 재일교포 3세인 그는 아버지의 국적을 이어받아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러나 조총련계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조선학교에 다녔기에 어릴 적부터 북한에 대한 애착을 키워온 과거가 있다.

그는 북한 대표팀을 선택한 배경으로 "조선(북한)이 나를 지켜보고 키워줬다"라고 설명한다. 조선학교에서 받은 민족 교육을 바탕으로 정체성을 확립했고, 자신의 가치를 가장 먼저 인정해 준 국가도 북한이었다고 정 선수는 말한다.

지난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한 정대세 선수는 경기 전 눈물을 흘렸다. 이 모습은 외신을 통해서도 큰 화제가 됐다. 그는 SBS의 <힐링캠프>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일본에서 태어나 북한 국가대표가 되기까지의 고생이 떠오른 탓에 흘린 눈물이었다고 회상했다.

정 선수는 재일 조선인 출신으로 차별과 혐오가 일상화된 삶을 살아왔다. 일본 학생들과 축구를 할 때면 "김치 냄새가 난다"라는 말을 들었던 아픈 기억도 있다. 그가 월드컵에서 흘린 눈물에는 차별을 딛고 일어난 벅참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정대세 선수의 눈물이 북한 체제에 대한 충성심을 표출한 것이라는 비난의 목소리도 있었다. 재일교포의 삶과 아픔을 이해하기보단 북한을 선택했다는 결과만을 공격하기 위한 잘못된 행태가 아니었을까 싶다.

또 과거 정대세 선수가 영국 다큐멘터리 방송에서 "김정일을 존경한다"라고 말한 것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K-리그의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뛰던 정대세는 해당 발언으로 인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되기까지 한다.

검찰은 "정 선수의 언행이 대한민국의 존립·안전과 체제를 위협하려 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라며 "정 선수의 특수한 성장 배경도 고려했다"라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과거 검찰이 고려했다는 '특수한 성장 배경'을, 재일 조선인 차별 문제가 불거진 지금 우리가 한 번 더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 북한 국대 출신 첫 MVP 안병준…"그저 한 명의 선수로 봐주길"

올해 K리그2에서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안병준 선수.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 뉴스1

북한 국가대표팀 출신, 안병준 선수는 올해 K리그2에서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언론은 일제히 그에게 최초의 '북한 출신' MVP 타이틀을 붙였다. 하지만 자신을 "북한 선수가 아닌 그저 한 명의 축구선수로 봐줬으면 좋겠다"던 안 선수의 바람이 자꾸만 마음 한 켠에 걸린다.

안 선수는 정대세 선수와 공통점이 많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교포 3세 출신이며 조총련계 조선학교에 다녔다. 두 선수 모두 북한 대표팀 출신의 K리거라는 경력을 갖고 있으며, 일본과 한국에서 차별을 겪은 아픔이 있다.

지난 2019년 수원FC에 입단한 안 선수는 그해 2월 스포츠 전문 매체 '스포츠니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일본에서 겪었던 차별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일본 클럽팀에 갔을 때부터 차별이 있기는 했다"라며 "많이는 아니지만, 일부 사람들은 차별을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차별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라며 "저는 그런 사람들을 상대 안 한다"라고 당찬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국에서 그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건 올 시즌 초반 5경기 연속 득점(6골)을 달성하면서부터다. 높아진 인기와 함께 그를 향한 공격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북한 대표팀에서 뛰었던 경력과 북한 국적을 취득한 점이 일부 네티즌들에게 표적이 된 것이다.

안 선수는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지난 6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악성 댓글과 관련해 "동료들과 매니저가 댓글을 보지 말라고 해서 나도 안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라며 "안 좋은 댓글을 봐도 그냥 그렇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그의 밝은 모습 뒤에는 차별과 혐오에 대한 내성이 느껴진다. "어린 시절부터 일본에서 많은 차별을 당했다. 이제 적응이 된 것 같아서 신경을 안 쓰려고 한다"라는 그의 말이 다행스럽게 만은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 나이키 광고 속 차별받는 재일 조선인…우리에게 요구되는 자세는?


지난해 11월 3일 조선학교 차별철폐를 위한 몽당연필 거리행동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일본 아베정부가 유치원·보육 무상화(유보무상화) 제도에서 외국인학교를 제외시킨 것 등과 관련, 재일 조선학교 차별 철폐를 촉구하고 있다. 2019.11.3/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1947년 일본은 재일 조선인의 국적을 '조선'으로 적게 했다. 이후 일본으로 귀화하지 않거나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재일동포들은 '조선적'으로 남게 됐다. 약 3만 명에 달하는 이들은 일본과 한국 어디서도 보호받지 못한 채 자신의 정체성을 지킨다는 일념으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일본 내에서 차별받는 재일 조선인의 삶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그들이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조총련계 소속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색안경을 끼기 시작한다. 우리 입장에선 한국이 아닌 북한을 '선택'한 사람들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재일 조선인을 편견 없이 바라보기 위해선 그들의 역사와 현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재일동포 1세의 고향은 '남과 북'이 아닌 한반도 그 자체였다. 이러한 정체성은 그들의 자손을 통해 지금도 지켜지고 있다. 또 일본 내 한국학교는 5곳뿐인데 반해 조선학교는 64개에 달하는 현실도 생각해 볼 문제다.

모국이 둘로 갈라져 사이가 좋지 않으니 '어느 편에 설지' 결정하라는 태도는 재일 조선인 사회를 또다시 혼란스럽게 만든다. 오히려 남북으로 나뉘는 상황 속 같은 민족의 아픔을 충분히 공감할 여유가 없었다는 점을 미안해해야 하지 않을까. 나이키가 조명한 재일 조선인 여학생들의 아픔을 이제는 좀 더 들여다보고 보듬어줘야 할 때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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